[2027 S/S 서울패션위크] 바다에 내려앉은 몸, 까이에(CAHIERS)가 그린 '조이지 않는 글래머'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9-05 04:04:16
[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4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에서 열린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CAHIERS) 컬렉션은 무대 배경부터 남달랐다.
거대한 배경을 담은 바다와 하늘의 영상이 런웨이 전체를 감싸는 사이, 모델들은 그 하늘과 바다가 창조하는 다양한 옷을 걸치고 등장했다. 자두빛이 도는 버건디, 먼지 낀 로즈, 라일락, 아이보리, 그리고 이따금 등장하는 블랙까지. 채도를 낮춘 파스텔 톤이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며 하나의 이어지는 풍경처럼 흘러갔다. 개별 룩이 튀기보다 색과 색 사이의 경계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방식은, 옷이 아니라 하루의 시간대를 입힌다는 인상을 줬다.
조이지 않아도 우아하다…볼륨과 여백의 재발견
이번 시즌 실루엣의 공통된 화두는 '풀어냄'이었다. 허리를 강하게 조이는 대신 헐렁한 새시 벨트로 느슨하게 감싸 여성스러운 곡선을 은근히 드러내는 랩 원피스, 오버사이즈 재킷 속에 러플 톱과 통 넓은 팬츠를 겹친 룩, 크롭 톱과 하이웨이스트 쇼츠가 만들어내는 캐주얼한 비율까지 - 몸을 압박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움직임 속에서 볼륨을 완성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시폰과 크링클 소재의 겹겹이 쌓인 러플 드레스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표정을 지었고, 크로셰로 짠 프린지 백과 대담한 컬러 스톤 귀걸이는 여기에 수공예적 질감을 더했다. 브라톱 위에 헐렁하게 걸친 재킷, 속이 비치는 시스루 레이어링 등 노출과 은폐를 오가는 연출 역시 눈에 띄었는데, 이는 단순히 과감함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준다'는 절제된 관능에 가까웠다.
반복되는 헥사곤 버클, 브랜드가 남기는 서명
여러 룩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육각형 모양의 버클은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영리한 장치였다. 벨트, 스커트 여밈, 수영복 브라톱 중심까지 각기 다른 아이템에 반복 사용된 이 헥사곤 버클은 화려한 실루엣들 사이에서 시선을 붙잡는 동시에, 컬렉션 전체를 하나의 브랜드 언어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트렌드에 따라 실루엣과 소재는 매 시즌 달라지더라도, 이런 시그니처 디테일 하나가 각인되면 소비자는 그것만으로 브랜드를 알아본다 - 하이엔드 여성복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교한 각인 전략인 셈이다.
몸을 존중하는 우아함, 김아영이 지켜온 태도
까이에를 이끄는 김아영 디자이너는 파리와 뉴욕, 상하이 등지의 무대에서 꾸뛰르적 디테일과 우아한 실루엣을 앞세워 온 인물이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방점은 '구조'보다 '해방'에 찍혀 있었다. 몸을 틀에 맞추는 대신 가벼운 소재와 여유로운 재단으로 몸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게 만든 것이다.
정교하게 짜인 패턴 위에 실크와 시폰 같은 가벼운 소재를 얹어 완성도와 편안함을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는, 결국 '우아함은 조임이 아니라 여백에서 나온다'는 브랜드의 오랜 믿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증명한 결과였다.
화려한 볼륨과 낭만적인 색채 아래에는 몸의 자유를 우선하는 실용적 감각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는 까이에가 왜 국내를 넘어 해외 바이어들에게도 꾸준히 설득력을 얻어온 브랜드인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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