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밤이 되어야만 보이는 것들···칼-헤닝 페데르센이 그린 무의식의 지도 — 이성이 잠든 자리에서 피어난 신화, 탄생일에 되짚는 '별의 말'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9-24 00:42:02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9월 23일, 덴마크가 낳은 화가 칼-헤닝 페데르센(1913~2007)의 탄생을 기억하며, 그의 작품 '도시 위의 별의 말'(1953)을 다시 들여다본다.
20세기 중반 유럽 전위예술의 한 축이었던 코브라(CoBrA) 운동의 주역이었던 그는, 논리와 규범 이전의 감각으로 돌아가려 한 화가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북유럽의 샤갈'이라 불렀지만, 그의 그림은 누군가를 닮았다기보다 차라리 누구도 닮지 않은 쪽에 가까웠다.
배우지 않은 손이 더 정직하다
페데르센은 정식 미술교육의 문턱을 거의 밟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린아이의 낙서, 민간의 설화, 원시 부족의 조형물에서 미술의 원형을 질문했다. 1948년, 코펜하겐과 브뤼셀과 암스테르담의 젊은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코브라 그룹에 창립 멤버로 참여하면서, 그는 서구 회화가 오랫동안 지켜온 '잘 그린다'는 규범 자체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성보다 본능을, 완성보다 즉흥을, 재현보다 상징을 택한 이 그룹 안에서 페데르센은 자신만의 신화적 언어를 벼려냈다.
형태가 무너지는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
'도시 위의 별의 말'을 이루는 것은 정교한 데생이 아니라 얼룩과 점, 반복되는 선의 축적이다. 검고 흰 반점으로 뒤덮인 짐승은 말인 듯 새인 듯, 혹은 둘 다 아닌 제3의 존재로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푸른 밤을 배경으로 가시 돋친 별 하나가 폭발하듯 타오르고, 화면 아래로는 붉은 불씨들이 마을의 지붕과 첨탑처럼 늘어서 있다. 형상을 또렷이 규정하지 않은 채 색과 선을 겹겹이 쌓아 올린 이 방식은, 손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계획된 그림이라기보다, 그려지는 동안 스스로 태어난 그림에 가깝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의 무게
이 작품이 태어난 1953년은 코브라라는 이름의 실험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직후였지만, 그 정신은 페데르센 개인의 화폭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별과 태양과 짐승은 그의 그림에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존재들인데, 이는 특정한 설화를 그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원초적 우주를 옮겨 적기 위함이었다. 설명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하나의 삽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스스로 빚어낸 세계관에 가깝다.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의 자리
이 그림 앞에 서면,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 하나가 어딘가에서 튀어나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짐승은 낯설고 기이하지만 결코 두렵지 않다. 오히려 홀로 어둠을 헤치고 달려가는 그 실루엣에는 어딘가 외로움과 다정함이 동시에 배어 있다. 별이 터지듯 빛나는 그 순간, 땅 위의 불꽃과 하늘의 폭발이 하나로 이어지며, 보는 이는 잠시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어떤 틈을 통과하게 된다.
규칙 이전의 감각을 되살린 사람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페데르센과 코브라 그룹의 태도는, 이후 유럽과 미국의 전후 회화에 조용하지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정제된 기교보다 즉흥과 본능을 앞세운 이들의 시도는, 지금까지도 '날것 그대로의 표현'을 추구하는 화가들에게 하나의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페데르센 자신은 이후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크관 대표작가로 선정되었고, 코펜하겐대학교 물리학연구소의 대형 모자이크 벽화와 리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연작 등을 통해 캔버스 밖 공간으로까지 자신의 신화를 확장시켰다.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의 값
경매장에서 페데르센의 작품은 소품 판화부터 대형 유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가격대에서 거래된다. 종이 위 판화나 소품은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에 거래되는 반면, 코브라 시기의 크레용·수채 작업이나 대형 유화는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덴마크 현지 경매에서는 그의 회화 한 점이 100만 크로네(한화 약 2억 1천만 원)를 훌쩍 넘는 가격에 낙찰되며 작가 개인의 기록을 새로 쓴 바 있고, 국제 경매시장에서도 작품 규모와 매체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코브라 운동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미술사적 위상은,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시장 가치를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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