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의 CPO 레이블이 펴낸 '안톤 라이하: 관악 5중주 전곡'은 알베르트-슈바이처-퀸텟이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녹음한 10장의 음반을 한데 모은 박스 세트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라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음색이 한 무대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 장르의 시조로 꼽히는 작곡가의 작품을 빠짐없이 담아냈다는 점에서, 음반사적으로도 연주사적으로도 무게가 가벼운 기획이 아니다.
10장에 걸친 안톤 라이하 관악 5중주 전곡 녹음은 단순히 방대한 레퍼토리를 모았다는 사실만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한 단체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다섯 명의 연주자로 일관된 음악적 시선을 유지하며 완성했다는 점에서, 이 박스 세트는 연주 기록으로서도 독자적인 성취를 보여준다.
전곡을 완주한 연주적 성과
방대한 분량의 동일 편성 레퍼토리를 한 단체가 완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곡마다 요구되는 호흡과 색채가 조금씩 달라지는데도 끝까지 같은 다섯 사람이 같은 미감을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성취다. 알베르트-슈바이처-퀸텟은 1986년 첫 녹음에서 보여준 단정하고 절제된 어법을, 1989년 마지막 권에 이르기까지 크게 흔들림 없이 지켜냈다.
동시에 후반부로 갈수록 악구를 주고받는 호흡이 한층 자연스러워지고,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앙상블 감각이 더 섬세해지는 변화도 감지된다. 이는 단순한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낯설고 정리되지 않은 레퍼토리를 다루는 단체가 시간을 통해 그 음악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음색의 균형감
라이하의 5중주는 어느 한 악기가 주역을 독점하지 않고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돌아가며 선율을 맡는 구조를 즐겨 쓴다. 이 단체의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바로 이 균형을 지켜내는 능력에 있다. 호른이 다른 네 목관에 비해 음량과 음색에서 도드라지기 쉬운 편성임에도, 질케 슈라크의 호른은 필요한 순간에만 또렷하게 떠오르고 나머지 시간에는 화성을 받치는 데 집중한다.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오가는 크리스티아네 디미겐의 연주 역시 같은 사람이 연주한다는 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두 악기의 성격을 분명히 구분해 다룬다. 다섯 명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입체감, 즉 누구도 튀지 않으면서도 누구도 묻히지 않는 균형감이 이 녹음의 가장 들을 만한 가치라 할 수 있다.
개별 연주자의 기량이 드러나는 지점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도 각 연주자의 기량이 또렷하게 부각되는 순간들이 있다. 빠른 패시지에서 플루트가 가볍게 음을 굴리듯 처리하는 구간, 바순이 의외로 가벼운 스타카토로 유머러스한 악구를 던지는 대목, 클라리넷이 저음에서 갑자기 따뜻한 색채로 전환되는 순간들은 라이하가 각 악기의 기교적 한계를 시험하며 써넣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구간에서 연주자들은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음악적 농담이나 대화처럼 가볍게 던지고 받는데, 이 절제된 태도가 오히려 곡이 가진 위트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감상의 포인트
처음 이 전곡을 접하는 청자라면 전체를 순서대로 따라가기보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악장 구성이 뚜렷한 작품 한두 곡을 먼저 골라 들어보는 편이 좋다. 30분 안팍의 비중 있는 5중주들은 각 악장마다 악기 간 역할이 바뀌는 과정을 비교적 선명하게 들을 수 있어 입문에 적합하다. 이후 단악장으로 구성된 소품들을 함께 들으면, 같은 작곡가가 큰 형식과 짧은 형식에서 각각 어떤 표현을 택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생긴다.
또한 한 곡 안에서 같은 악구가 악기를 바꿔가며 반복될 때 음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의식적으로 좇아가면, 라이하가 이 편성을 위해 고안한 대화체 어법과 이 단체가 그 어법을 얼마나 충실히 살려내는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박스 세트를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기다리기보다 다섯 목소리가 주고받는 미세한 균형의 변화를 따라가는 데에 있다.
음반의 가치와 의미
관악 5중주라는 편성은 현악 4중주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고, 그만큼 레퍼토리도 좁다. 이 편성을 사실상 창시하고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라이하이며, 그가 남긴 스물네 곡 이상의 5중주는 이 악기 조합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이룬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오랫동안 베토벤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파리 음악원 교수라는 각주 정도로만 취급되어 왔다.
전곡 녹음은 단편적으로만 소개되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들려줌으로써, 관악 앙상블 레퍼토리의 빈 자리를 채우고 한 작곡가의 전모를 처음으로 온전히 조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10장 11시간이 넘는 분량을 한 단체가 일관된 해석으로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박스 세트를 단순한 음원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학술적 기록물에 가깝게 만든다.
알베르트-슈바이처-퀸텟의 해석
1978년 결성된 알베르트-슈바이처-퀸텟은 플루트의 앙겔라 테츨라프, 오보에의 크리스티아네 디미겐, 클라리넷의 디무트 슈나이더, 바순의 에카르트 휘프너, 호른의 질케 슈라크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연주는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다섯 악기가 균형 있게 주고받는 대화의 질감을 살리는 데 무게를 둔다.
라이하의 음악은 어느 한 악기가 일방적으로 선율을 주도하기보다 각 성부가 번갈아 솔리스트로 떠오르는 구조를 즐겨 쓰는데, 이 단체는 그 교차 지점을 매끄럽게 넘기면서도 각 악기의 개성을 흐리지 않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한 연주자가 오가며 소화하는 음반 내 구성 역시, 단원들이 갖춘 다기능적 기량을 짐작하게 한다. 전곡을 4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점은 이 레퍼토리에 대한 단체의 지속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를 거듭하며 쌓인 앙상블의 호흡은 더 깊어졌다.
관악 5중주의 아버지
안톤 라이하는 1770년 프라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들 손에서 자란 뒤, 음악가였던 숙부 요제프 라이하를 따라 본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그는 같은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주자였던 동갑내기 베토벤과 평생에 걸친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함부르크와 빈을 거쳐 나폴레옹 전쟁 이후 파리에 정착한 라이하는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며 리스트, 베를리오즈, 구노, 프랑크 등 19세기 프랑스 음악을 이끈 거의 모든 작곡가를 길러냈다.
그는 작곡 이론가로서도 다성 박자나 복조성에 가까운 실험적 발상을 제자들에게 전수한 선구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이름이 가장 뚜렷하게 남은 자리는 관악 5중주라는 장르 그 자체다. 하이든이 현악 4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듯, 라이하는 관악 5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며, 이 편성을 후대에 물려준 작곡가로서 음악사에 고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새로운 장르의 소개와 성공
라이하는 회고록에서 당시 목관 악기를 위한 좋은 음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를 작곡가들이 각 악기의 주법을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1811년 파리에서 처음 다섯 악기를 위한 작품을 시도했을 때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폐기했지만, 곧 요령을 터득해 여섯 곡으로 묶은 첫 5중주집을 완성했고 이는 유럽 전역에서 연주되며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 성공에 힘입어 열여덟 곡을 추가로 작곡해 총 스물네 곡에 이르렀다고 직접 기록했으며, 이 작품들이 유럽 전체에 반향을 일으켰다고 회고했다. 한 연주자 출신 작곡가가 자신이 직접 다루던 플루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악기의 한계를 시험하고 보완해 가며 장르 하나를 만들어낸 과정 자체가, 이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흥미로운 배경담이라 할 수 있다.
실내악적 공동체, 그리고 관악기의 표현 가능성
라이하의 5중주는 형식적으로는 고전주의의 균형을 따르지만, 그 안에는 각 악기를 단순한 화성 채움이 아니라 독립된 화자로 다루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플루트 주자였던 그는 목관 악기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선율선과 즉흥적인 대화체 어법을 적극적으로 살려, 한 악기가 질문을 던지면 다른 악기가 답하듯 받아치는 구성을 즐겨 썼다.
동시에 다성 박자나 변칙적인 리듬, 집시 음악의 미세한 음정 변화에 대한 관심처럼 그가 이론가로서 품었던 실험적 사고도 단악장 아다지오 같은 소품 속에 슬며시 스며들어 있다. 결국 그의 5중주들이 그리고자 한 세계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음색이 위계 없이 어우러지는 실내악적 공동체, 그리고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던 관악기의 표현 가능성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현악사중주가 아직 귀에 익숙하지 않고, 다양한 관악기의 특색을 음미하고 싶고, 치밀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원하는 청자라면 꼭 들어야 할 음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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