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보물 '농경문청동기'는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제례용품으로, 한반도 고대 농경 사회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다.
제례 의식용 청동기, 풍요와 수확 기원하는 기물
농경문청동기는 의례용 청동기로 제작됐다. 청동기 표면에 세밀하게 새겨진 농경 장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적·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건물 형태를 본뜬 이 청동기는 제사 의식에서 사용되며 농경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농사의 성공과 수확의 풍요를 신에게 기원하는 제례 도구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세로 무늬 띠를 기준으로 좌우 공간이 나뉘어져 있으며, 각 면에는 농사 과정과 의례 장면이 체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고리가 달리지 않은 왼쪽 면에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농사 전 과정이 순차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 해 농사 과정 생생히 기록, 청동기시대 생활상 증언
청동기 표면에 새겨진 장면들은 당시 농경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 위에 긴 깃털을 꽂고 밭을 일구는 사람, 쟁기를 치켜든 사람,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는 사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봄철 파종을 위한 땅 고르기 작업부터 시작해 여름철 농사 관리, 가을철 수확과 저장에 이르는 한 해 농사의 전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담아낸 것이다.
특히 머리에 깃털을 꽂은 모습은 농경 의례를 주관하는 제사장이나 부족장의 모습으로 해석되며, 벌거벗은 채로 일하는 모습은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행위였을 가능성이 높다.
미술사적 가치: 청동기시대 조형 예술의 정수
농경문청동기는 한국 고대 금속 공예와 조형 예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청동 주조 기술과 부조 표현 기법이 매우 정교하며, 제한된 공간 안에 복잡한 서사를 효과적으로 배치한 구성력이 탁월하다.
특히 건물 형태를 입체적으로 구현하고 그 표면에 인물과 농기구, 동물을 세밀하게 표현한 기술은 당시 청동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한다. 녹청으로 뒤덮인 표면은 2000년 이상의 세월이 만들어낸 시간의 흔적으로, 고대 청동기 특유의 심미적 가치를 더한다.
중앙의 세로 무늬 띠와 양쪽 면의 균형 잡힌 구성은 당시 장인들이 단순히 기능적인 제례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기원전 4-3세기 한반도, 농경 중심 사회로 전환
이 청동기가 제작된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는 한반도에서 청동기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농경문청동기에 표현된 장면들은 당시 사회가 농사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계절에 따른 농사 일정이 공동체 생활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제사장이나 부족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농경 의례를 주관하는 모습은 종교와 정치, 경제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원시 공동체 사회의 특징을 드러낸다.
대전 지역 출토, 중부 지방 청동기 문화권 입증
이 청동기는 대전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며, 충청 지역이 청동기시대 중요한 문화권이었음을 입증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이 유물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비록 일부가 손상되고 부식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전체 형태와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농경문청동기는 단순한 고대 유물을 넘어 2300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믿음, 예술 감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사의 증인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며 풍요를 기원했던 고대인들의 간절함이 청동 표면에 녹아들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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