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선 사이, 존재의 덧없음을 새기다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기하학은 영원을 꿈꾸죠. 무한의 세계이니까요. 타일 위에 새겨진 직선들은 인간이 세계에 부과한 질서의 증거입니다. 정확하고 냉정한 이 선들은 공간을 나누고, 평면을 구획하며, 혼돈에 맞서 구조를 세웁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이후 2천 년, 우리는 여전히 선을 긋습니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혹은 이해할 수 없음을 감추기 위해.
흐릿한 형상이 타일 위를 가로지릅니다. 명확했던 선들은 이제 유령 같은 실루엣과 뒤섞입니다. 형체들의 윤곽은 초점을 잃고 흔들리며, 존재는 부재의 가장자리에서 진동하죠. 이것은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그림자일까요, 아니면 하이데거가 탐구한 현존재의 흔적일까요.
타일의 선은 말합니다. "나는 영원하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는 내가 지나가는 무대일 뿐이다." 두 진술 사이에서 진실이 흔들립니다.
교차점마다 사건이 일어나죠.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곳, 빛과 어둠이 겨루는 곳, 물질과 비물질이 키스하는 곳. 각각의 교차점은 우주의 축소판입니다. 질서와 혼돈, 필연과 우연, 영원과 순간이 한 점에서 충돌합니다.
고정된 선들은 공간화된 시간이고, 흐릿한 그림자는 순수한 시간의 흐름입니다. 셔터는 이 두 시간성이 교차하는 찰나를 포착했습니다. 초점이 흐릿한 그림자는 우연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원래 이렇게 불확정적이기 때문이죠. 사르트르가 말했듯, 존재는 본질에 선행합니다. 이 그림자는 아직 정의되지 않은 채 공간을 떠돕니다.
흑백의 세계는 본질을 드러냅니다. 색채라는 장식이 제거된 자리에서, 우리는 형태와 그림자, 빛과 어둠이라는 근원적 대립만을 봅니다. 이것은 현상학적 환원일 수 있죠. 모든 부차적인 것을 괄호 안에 넣고, 순수한 지각의 구조만을 남겨둔 세계입니다.
음악에서 대위법은 독립된 선율들이 동시에 진행하며 조화를 이루는 기법이죠. 사진은 시각적 대위법이랄 수 있죠. 타일의 수직선, 수평선, 그리고 그림자의 유기적 곡선이 각자의 리듬으로 진행하며 하나의 구성을 완성합니다.
각 선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집니다. 굵은 선은 베이스처럼 무게를 지탱하고, 가느다란 선은 소프라노처럼 공간을 가로지릅니다. 그림자는 즉흥 연주처럼 예측 불가능하게 개입하죠. 바흐의 푸가처럼, 이 모든 선들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놀라운 조화를 이루기도 합니다.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기도 하죠. 그림자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일 수 있죠. 빛의 각도가 변하고, 인간이 지나가고, 하루는 저물어갑니다.
타일만이 남지만, 타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 후 이 타일도 닳고 깨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이 진정 실재하는가? 선인가, 그림자인가, 아니면 둘 사이의 관계인가?
불교의 공(空) 사상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선도 환상이고 그림자도 환상이다. 진실은 그 둘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정의한다는 상호의존성에 있다라고.
우리는 이 사진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봅니다. 누구나 한때는 이런 그림자였을 겁니다. 누군가의 바닥을 가로지르며, 순간적으로 존재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러나 사진은 그 덧없음을 기록합니다. 예술은 바로 이것이죠.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순간에 영원을 부여하며, 그림자에게 실체의 무게를 선사하는 것.
교차하는 선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흐릿한 형상은 묻습니다. "나는 여기 있는가?" 그리고 빛과 그림자, 선과 평면, 질서와 혼돈이 함께 대답합니다. "너는 지나간다. 그러므로 너는 존재한다."
이것이 사진이 포착한 존재론적 진실입니다. 우리는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영원한 구조와 덧없는 흐름, 물질적 세계와 비물질적 의식, 있음과 없음 사이. 그리고 바로 그 긴장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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