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톰 크루즈 주연의 SF 영화 '오블리비언'(2013)은 화려한 영상미와 반전 가득한 스토리로 호평받았지만, 영화 속에 숨겨진 음악과 예술 작품의 상징성을 아는 관객은 많지 않다. '망각(Oblivion)'이라는 제목처럼 지워진 기억을 되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클래식 음악과 명화가 철학적 메타포로 등장한다.
2077년, 외계 종족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지구. 정찰대원 잭(톰 크루즈)은 파트너 비카(안드레아 라이즈보로)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며 파라다이스 행성 타이탄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하지만 잭은 꿈속에서 계속 만나는 한 여인을 실제로 마주치며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다름 아닌 잭의 아내 줄리아(올가 쿠릴렌코)였다. 진실을 추적하던 잭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은 지구를 점령한 세력에 의해 복제된 존재이고, 복제 전의 잭은 저항군 사령관이었으며 줄리아는 동료이자 아내였다는 것이다.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적의 명령만 따르던 노예에서 깨어난 잭은 거대악 '테트'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난다.
영화는 4K 2D 렌즈로 촬영한 고화질 영상과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케 하는 사색적인 장면 구성으로 SF 장르의 새로운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곳곳에 배치된 음악과 그림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영화의 철학적 주제를 암시하는 핵심 장치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장치는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이다. 진실을 깨달은 잭이 아내 줄리아에게 "우리가 자주 들었던 노래"라며 들려주는 곡이다.
1967년 7월 발매된 이 곡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차트 5위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10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락 발라드의 걸작이다. 프로그레시브 락의 선구자 프로콜 하럼은 바로크 음악의 거장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만들었다.
곡의 기반은 바하 칸타타 BWV 140번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의 첫 주제와 관현악조곡 3번 2악장 'G선상의 아리아'다. 오르간의 웅장함 속에 강렬하면서도 우울한 멜로디가 흐르며, 염세적 허무함이 가득한 이 곡은 영화가 담고 있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불안을 대변한다.
밴드명 'Procol Harum'은 라틴어로 'beyond these things'라는 뜻이다. 망각을 넘어 진실을 찾아가는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두 번째 예술적 장치는 미국 국민 화가 앤드류 와이어스(1917~2009)의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다. 잭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며 거대악 '테트'를 처치하러 떠나기 전 아내 줄리아에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한 여인이 저 멀리 언덕 위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실제 모델은 와이어스의 이웃이었던 크리스티나 올슨으로, 그녀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주저앉은 자세로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을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은 힘들어도 반드시 가야 할 곳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상징한다.
영화 속 잭과 줄리아가 찾고자 하는 '피안'의 세계, 망각 너머의 진실, 복제된 존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려는 여정이 모두 이 그림에 담겨 있다.
'오블리비언'은 음악과 그림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이야기한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1초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 프로콜 하럼의 노래와 와이어스의 그림 속에 녹아 있다.
잭이 사랑했던 노래와 그림은 단지 한 인물의 취향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실존적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오블리비언'은 SF 영화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300년 전 바하의 음악, 70년 전 와이어스의 그림, 50년 전 프로콜 하럼의 노래로 전달된다. 장르와 시대를 초월한 예술의 힘이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다시 한번 'A Whiter Shade of Pale'을 들어보자.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찾아보자. 영화가 던진 질문이 더욱 선명하게 들려올 것이다. 사랑은 망각을 초월하고, 예술은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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