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금박과 정교한 세부 묘사로 시대를 초월한 예술세계 구축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소장한 카를로 크리벨리(Carlo Crivelli, 1430-1495년경)의 1468년경 작품 '성모자'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독특한 지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베네치아 출신이면서도 주류 미술계와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완성한 크리벨리는, 이 작품에서 후기 고딕의 장식적 감성과 르네상스의 사실주의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작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금박 장식이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후광과 의복, 그리고 적색 비단 배경을 둘러싼 정교한 금색 액자는 중세 비잔틴 성화의 전통을 계승한다. 크리벨리는 당시 유화 기법이 널리 보급되던 시기에도 끝까지 템페라 기법을 고수했으며, 금박 표면에 펀칭 기법을 사용해 섬세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이는 후원자들이 요구한 보수적 취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의 미적 신념이었다.
크리벨리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은 트롬프뢰유(trompe-l'œil, 착시 기법)의 대담한 활용이다. 그는 패널 위에 석고로 보석, 갑옷, 장식품 등을 실제로 돌출되게 조형한 뒤 금박과 안료로 채색했다. 이러한 기법은 북유럽 르네상스 화가 로히어 판 데르 베이덴의 작품과 비교되곤 하며, 평면 회화와 3차원 조각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시도였다.
작품 속 성모의 의복에 표현된 질감, 특히 붉은색과 검은색 드레스의 브로케이드 직물은 거의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성모의 목걸이에 장식된 보석 역시 실제로 빛을 반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크리벨리는 베네치아에서 비바리니 형제의 공방과 야코벨로 델 피오레 밑에서 수학한 후, 파도바로 이주해 프란체스코 스콰르치오네의 공방에서 작업했다. 스콰르치오네는 고대 유물을 수집하고 제자들에게 선형 원근법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의 또 다른 제자 안드레아 만테냐와 크리벨리는 선명한 윤곽선과 건축적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공유했다.
하지만 크리벨리는 만테냐의 고전주의적 절제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과장된 표현, 창백하고 완벽한 피부, 가늘고 긴 손가락의 우아한 제스처 등 매너리즘적 요소를 선호했다. 작품 속 성모의 얼굴은 마치 밀랍이나 도자기처럼 평면적이면서도 명상적이고 꿈꾸는 듯한 표정을 띠고 있어, 고딕 예술의 종교적 강렬함을 담아낸다.
크리벨리의 예술은 르네상스의 합리주의보다 고딕의 종교적 열정에 더 가까웠다. 그가 선택한 금박 배경, 위계적이고 평면적인 구도, 장식적 과잉은 15세기 후반의 관점에서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실제로 조르조 바사리는 1550년과 1568년판 '미술가 열전'에서 크리벨리를 완전히 배제했으며, 그는 사후 빠르게 망각되었다.
그러나 그의 보수적 형식 안에는 놀라운 혁신이 숨어 있었다. 공간과 원근법에 대한 실험, 실물처럼 정밀한 정물 묘사, 과일 등 일상적 사물을 성스러운 장면에 배치하는 독특한 상징 체계는 20세기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킬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비평가 수전 손택은 그의 작품을 '캠프(Camp) 미학의 전형'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크리벨리는 생전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490년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마르케 지역에서 30점 이상의 대형 제단화를 제작하며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서명에는 항상 "CAROLUS CRIVELLUS VENETUS(베네치아의 카를로 크리벨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자신의 베네치아 출신 정체성을 강조했다.
19세기 라파엘 전파 화가들, 특히 에드워드 번-존스가 그의 작품에 주목하면서 크리벨리는 재발견되었다. 영국 국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최근에는 2015년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미국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2022년 영국 아이콘 갤러리 전시를 통해 '이탈리아 회화의 대안적 역사'를 제시하는 작가로 재평가받고 있다.
크리벨리는 직접적인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 동생 비토리오 크리벨리와 제자 피에트로 알레만노가 그의 양식을 이어갔지만, 16세기 베네치아 화파의 주류는 조반니 벨리니와 티치아노로 이어지는 색채주의였다. 크리벨리의 선형적이고 장식적인 화풍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시대착오성이 오늘날 크리벨리를 매력적인 작가로 만든다. 그는 르네상스의 합리성과 고딕의 신비성, 평면과 입체,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다. '성모자'는 이러한 크리벨리 예술의 핵심을 응축한 작품으로, 15세기 이탈리아 미술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증언한다.
화려한 금박 뒤에 숨겨진 정교한 관찰력, 신성한 주제 속에 배치된 일상의 사물들, 평면적 구도 안에서 폭발하는 입체감. 크리벨리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단순히 경배의 대상이 아닌, 회화 자체의 본질을 사유하게 만드는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는 회화가 무엇인지, 무엇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 르네상스의 진정한 실험가였다.
한편 게시한 작품을 비롯해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소장한 65점의 작품이 지난 11월 5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유럽의 명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꼭 봐야할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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