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2016년,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탄생 450주년을 맞아 프랑스의 명문 클래식 레이블 알파 클래식스(Alpha Classics)가 야심 찬 음반을 세상에 내놓았다. 제목은 ‘I 7 Peccati Capitali’, 즉 '7가지 죄악'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지휘자 레오나르도 가르시아 알라르콘이 이끄는 카펠라 메디테라네아의 연주로 완성된 이 음반은 단순한 기념 음반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독창적인 음악적 사유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마드리갈, 그리고 ‘셀바 모랄레(Selva morale)’를 관통하는 보편적 주제인 '죄와 미덕'에서 출발했다.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에서 공연된 음악극 ‘포페아의 대관식(L'Incoronazione di Poppea)’에서 유모 아르날타가 포페아에게 악덕을 경고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카펠라 메디테라네아는 죄와 미덕을 교차하는 아리아와 마드리갈 앤솔로지를 엮어냈다.
알라르콘은 이 기획의 구조적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각각의 타블로는 선행하는 장면의 빛을 받으며 뒤따르는 장면을 조건 짓는다. 별도의 서사적 연결은 필요 없다." 그에게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알레고리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적 의미의 '카타르시스', 즉 정화의 체험이며 연극의 기원으로 청중을 데려가는 여정이다.
바로크 시대를 연 거장, 몬테베르디의 음악사적 위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던 작곡가다. 그는 당대의 음악 언어를 단순히 계승하지 않았다. 근본부터 변혁시켰다. 1607년 초연된 오페라 ‘오르페오(L'Orfeo)’는 오페라 장르를 예술적 완성도의 경지로 끌어올린 기념비적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서양 음악사에서 '최초의 위대한 오페라'로 일컬어진다.
그의 혁신은 마치 매너리즘 화가의 그것과 닮아 있다. 기존의 음악적 소재를 비틀고 왜곡함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발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그의 '세콘다 프라티카(seconda pratica)'다. 대위법적 규칙보다 인간 감정의 직접적 표현을 음악의 중심에 놓는 이 미학은, 이후 수세기를 지배할 바로크 음악의 근간이 되었다.
몬테베르디는 궁정, 교회, 극장, 아카데미 등 당대의 모든 음악 공간을 위해 작곡했으며, 동시대의 민속 무용과 노래까지 자신의 음악적 우주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만년 대작 ‘포페아의 대관식’은 음악사에서 가장 비도덕적인 오페라 중 하나로 불린다. 악덕이 승리하고 미덕이 패배하는 역설적 서사로 당대 청중을 충격에 빠뜨린 이 작품에서, 몬테베르디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욕망과 권력욕을 음악 드라마의 정면 한가운데 세워두었다.
죄와 미덕의 교차, 14곡의 정교한 배열
이 음반의 수록곡 14곡은 일곱 가지의 죄와 이에 대응하는 미덕들을 교차 배치하는 정교한 구성 원리를 따른다. 희망(La Speranza)으로 문을 열어 낭비(La Prodigalità), 나태(L'Accidia), 시기(L'Invidia), 정결(La Castità), 교만(La Superbia), 탐욕(L'Avarizia), 겸손(L'Umiltà), 탐식(La Gola), 절제(La Temperanza), 정욕(La Lussuria), 자선(La Carità), 분노(L'Ira), 용기(La Fortezza)로 이어지는 이 목록은 단순한 도덕적 분류가 아니다. 몬테베르디가 평생에 걸쳐 탐구했던 인간 감정의 전 스펙트럼을 음악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수록곡의 출처는 몬테베르디 전 작품에 걸쳐 있다. ‘포페아의 대관식’에서 발췌한 아리아들이 욕망·교만·탐욕의 얼굴을 드러내는 한편, ‘율리시스의 귀환(Il Ritorno d'Ulisse in patria)’은 절제와 탐식의 장면을 제공한다. 마드리갈집 제3·4·8권에서 선별한 곡들은 분노·정욕·용기의 감정을 농밀하게 표현하며, 성스러운 마드리갈집 ‘셀바 모랄레 에 스피리투알레(Selva morale e spirituale)’의 ‘O ciechi ciechi’는 겸손의 미덕을 상징하는 영적 성찰로 기능한다. 그리고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발췌한 ‘Orfeo son io’는 자선의 표상으로 전체 흐름에 고귀한 빛을 더한다.
이 기획의 핵심은 각 작품이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의미의 망 속에 재배치된다는 점이다. 알라르콘은 마드리갈, 아리아, 노래하는 레시타티보, 합창을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엮어내며, 줄거리 없는 오페라, 즉 '몬테베르디의 감정 그 자체'를 무대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빛나는 성악진과 앙상블의 유기적 결합
이 음반의 깊이는 솔로이스트 개개인의 개성과 앙상블의 유기적 결합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소프라노 마리아나 플로레스는 ‘Si dolce è'l tormento’에서 17세기 마드리갈 특유의 쓸쓸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오롯이 복원해낸다.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아스프로몬테는 포페아 역을 맡아 관능과 야망이 뒤섞인 이중적 감정을 탁월한 음색으로 빚어내고, 카운터테너 크리스토퍼 로우리의 투명한 고음은 인간의 죄악 앞에 드리운 허무의 그림자를 섬뜩하리만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테너 에밀리아노 곤살레스-토로와 마티아스 비달은 각자의 역할 안에서 극적 표현과 성악적 기교를 균형 있게 선보이며, 베이스 잔루카 부라토의 묵직한 음성은 전체 음향의 하부 구조를 단단히 받쳐낸다.
카펠라 메디테라네아의 기악 반주는 음색의 풍요로움, 섬세한 음정 감각, 채색적 표현력, 양식적 완결성을 고루 갖춘 탁월한 수준을 보여준다. 가르시아 알라르콘은 지휘 외에도 오르간과 스피넷 연주를 직접 담당하며 음악의 내밀한 텍스처를 손수 조율했다. 전체를 명료하고 깔끔하게, 잘 분절된 방식으로 이끄는 그의 음악적 방향성은 특히 성악 앙상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음반의 의미와 유산
이 음반은 2016년 4월, 스위스 쥐라 산맥의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에 자리한 르 상티에 사원(Temple de Le Sentier)에서 녹음되었다. 산중 성전이 품고 있는 고요하고 영적인 공간감은 죄와 미덕이라는 주제와 맞물리며 독특한 음향적 신성함을 자아낸다.
알파 클래식스와 가르시아 알라르콘의 협업의 결실인 이 음반은, 몬테베르디가 남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나의 일관된 철학 아래 재구성함으로써 앤솔로지 음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오페라 아리아와 마드리갈, 종교적 독창곡을 자연스럽게 교직해낸 이 기획은, 몬테베르디의 광대한 세계를 오늘의 청중에게 살아 있는 감동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하나의 해답이다.
죄악의 목록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다. 몬테베르디는 400년 전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켰고, 가르시아 알라르콘과 카펠라 메디테라네아는 그 음악을 다시 오늘의 시각으로 소환해냈다. 이 음반 앞에서 우리는 역사와 현재, 죄와 미덕, 인간과 신성 사이에 울려 퍼지는 영원한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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