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그래미상 받은 텔레만의 마지막 외침 — 소프라노 아만다 포사이드, '이노'로 빚어낸 18세기 비극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6-21 21:01:10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지난 2월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클래시컬 솔로 보컬 앨범' 부문 수상작으로 호명된 것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의 '이노(Ino)'와 오페라 아리아를 담은 음반이었다. 소프라노 아만다 포사이드와 보스턴 얼리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EMF), 음악감독 폴 오데트와 스티븐 스텁스, 오케스트라 감독 로버트 멜리가 함께 만든 이 음반은 2024년 독일 레이블 CPO를 통해 발매됐으며, 2023년 8월 독일 브레멘의 젠데잘 브레멘에서 녹음됐다.
이 음반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잘 알려지지 않은 바로크 레퍼토리를 발굴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18세기 후반 독일 칸타타와 오페라 아리아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시대악기 연주와 정교한 해석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학술적 성취와 예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스턴 얼리뮤직 페스티벌은 이로써 2015년 샤르팡티에의 '지옥으로 내려간 오르페'로 받은 첫 그래미상에 이어 두 번째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북미 최고의 초기 음악(early music) 단체이자 바로크 오페라 제작 기관이라는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해석과 역량
이 음반의 중심에는 소프라노 아만다 포사이드가 있다. 평단은 그녀가 칸타타 속에 응축된 광범위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은빛이면서도 따뜻한 음색과 다채로운 색채감, 선명하고 충만한 고음으로 그려냈다고 평했다. 특히 남편의 광기로부터 도망치는 이노의 공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녀는 섬세한 비브라토와 정교하게 다듬어진 프레이즈의 끝맺음으로 육체적·정서적 탈진을 동시에 전달했으며, 자신을 박해하는 여신 '사투르니아'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에서는 미묘한 리듬의 강세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는 가창력을 선보였다.
보스턴 얼리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멜리의 지휘, 그리고 아치류트의 폴 오데트와 바로크 기타의 스티븐 스텁스가 이끄는 음악감독 체제 아래 포사이드의 강력한 협력자 역할을 해냈다. 음반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두 개의 관현악 모음곡 발췌곡에서는 협주적인 플루트와 바순이 두드러지는 생생한 음향과 탄탄한 균형감이 돋보였으며, 연주자들은 바다 생물들의 축제 장면이나 이노의 절규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추진력에서 무곡의 뿌리를 살린 명료하고 응집력 있는 리듬을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음악사 속 부침을 겪은 거장
작곡가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1681~1767)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과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 후기 바로크의 거장이다. 그는 생전 30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겨 역사상 가장 다작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기록되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바흐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음악가로 평가받았다. 1722년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함부르크 시 당국이 급여를 인상하며 그를 붙잡자 이를 고사했고, 이 자리는 결국 바흐에게 돌아갔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바흐의 둘째 아들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대부이기도 했던 텔레만은 평생 바흐 가문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
그러나 19세기 바흐 부흥 운동 이후, 텔레만의 음악은 "다작이지만 깊이가 없다"는 평가 속에 빠르게 잊혀갔다. 1911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조차 그를 별도 항목으로 다루지 않을 정도였다. 텔레만에 대한 재평가는 20세기 들어 본격화됐으며, 특히 1980~90년대 주제별 작품목록이 정리되면서 그의 방대한 작업이 다시 학계와 연주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날 텔레만은 독일 혼합 양식, 즉 독일·프랑스·이탈리아·폴란드 양식을 아우르는 절충적 어법의 창시자이자,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상징하는 작곡가로 재조명받고 있다.
84세에 쏟아낸 에너지 '이노'
이번 음반의 표제작인 칸타타 '이노'는 텔레만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2년 전인 1765년, 그의 나이 84세에 작곡한 작품이다. 시력이 쇠퇴하고 건강이 악화되던 만년에도 그는 마치 창창한 미래를 앞둔 젊은 작곡가처럼 음악적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칼 빌헬름 람러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화를 소재로 삼았다.
이노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며느리이자 아타마스의 아내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신 헤라(사투르니아)의 분노를 사게 된다. 헤라는 아타마스를 광기에 빠뜨려 두 아들 중 하나를 활로 쏘아 죽이고 나머지 한 명마저 죽이려 하게 만들며, 이에 이노는 남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 결국 모자는 바다의 신으로 변신하게 된다는 결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텔레만은 이 극적인 소재를 반주 레치타티보와 통작 형식의 아리아로 구성하며, 음악과 대본의 결합도를 한층 끌어올린 혁신적 칸타타 형식을 시도했다. 음악학자 스티븐 존의 해설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은 1750~60년대 글루크가 주도한 오페라 개혁과도 맞닿아 있는, 고전주의 양식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포와 모성, 신화의 인간화
'이노'가 단순한 신화적 장식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텔레만의 악보와 람러의 대본, 그리고 연주자들의 섬세한 해석이 결합해 이 환상적인 설정을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드라마로 변모시켰기 때문이다.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며 아들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신을 억압하는 신적 권능에 대한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는 한 인간의 공포가 음악 전반에 흐른다. 하강하는 베이스 선율은 자비를 구하는 이노의 절규를 증폭시키며, 짧은 건조한 레치타티보 한 대목을 극적인 사건으로 전환시킨다.
절망에 빠진 이노가 아들과 함께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화성 진행이 추락과 물속에서의 사투, 그리고 아이를 찾는 몸부림을 안무하듯 그려내며, 이어 반복되는 음형과 풍성한 텍스처는 모자가 물 위에 떠오르고 마침내 구조되는 안도감을 표현한다. 신화 속 초자연적 사건들이 한 어머니의 생존 본능과 공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으로 번역되는 과정, 이것이 바로 이 칸타타가 2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다.
도전적인 레퍼토리의 예술적 의의를 강력하게 보여준 성과
이 음반은 2026년 2월 1일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베스트 클래시컬 솔로 보컬 앨범' 트로피를 안았다. 시상식은 비텔레비전 중계 부문인 프리미어 세리머니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별도 진행됐으며, 배우 대런 크리스가 사회를 맡았다. 포사이드는 그래미 단독 후보에 처음 오른 이번 무대에서 수상의 영예까지 함께 안았다.
포사이드는 수상 소감에서 "가수로서 우리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지만, 나의 음악적 가족인 보스턴 얼리뮤직 페스티벌이 바로 내 뒷마당에 있다는 사실에 큰 행운을 느낀다"며 "바로크 걸작을 재발굴하고 기록하는 이들의 헌신은 미국에서 유일무이하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이번 수상에 대해 "기술적으로 까다롭고 고도로 극적인 칸타타 '이노'를 중심으로, 도전적인 레퍼토리의 예술적 의의를 강력하게 보여준 성과"라고 평했다.
한편 같은 시상식에서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안드리스 넬손스의 지휘로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녹음으로 '베스트 오케스트랄 퍼포먼스'를, 요요마가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를 수상하며 보스턴 클래식 음악계가 이날 시상식의 큰 승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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