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크리스티안 카나비히의 멜로드라마 '엘렉트라', 다시 무대에 오른 '잊혀진 만하임의 목소리'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7-17 20:28:06

프리더 베르니우스가 지휘를 맡은 크리스티안 카나비히의 멜로드라마 '엘렉트라'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2020년 독일의 핸슬러 클래식이 발매한 크리스티안 카나비히의 '엘렉트라'는 단순한 '희귀 레퍼토리 발굴'을 넘어선다.

18세기 후반 독일어권에서 융성했던 '멜로드라마(Melodram)'라는 독특한 무대 장르의 실체를 온전한 형태로 복원해 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멜로드라마는 노래가 아니라 말(대사)과 관현악이 교대하거나 겹쳐지며 진행되는 혼종 양식으로, 프랑스에서 장자크 루소와 그의 벗 오라스 콰녜의 손에서 태동한 뒤 1770년대 독일어권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얻었다. 

당시 독일어는 노래하기에 무겁고 부적합한 언어라는 편견 때문에 자국어 오페라가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사를 노래로 부르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멜로드라마는 이 난제를 우회하는 실용적 해법이 되어주었다. 만하임 궁정악단의 핵심 인물이었던 카나비히가 이 신생 장르에 뛰어들어 남긴 결과물이 바로 1781년작 '엘렉트라'이며, 대본은 만하임 극장 감독이었던 볼프강 헤리베르트 폰 달베르크가 맡았다. 이번 음반은 남서독일방송(SWR)과의 공동 제작으로 완성되어 방송용 아카이브로서의 안정성까지 갖췄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프리더 베르니우스, 합창·고음악 분야의 대표 지휘자

지휘를 맡은 프리더 베르니우스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거점으로 반세기 가까이 활동해 온 합창·고음악 분야의 대표적 지휘자다. 1968년 슈투트가르트 실내합창단을 창단한 이래 죄트 신자츠, 콜른 무지카 피아타 등 유수의 앙상블과 함께 쉬츠, 젤렌카 등 바로크 레퍼토리에서부터 낭만 시대 합창 교향악까지 폭넓게 다뤄왔으며, 그 성과로 네덜란드의 에디슨상과 프랑스의 디아파종 도르를 수상한 이력이 있다.

2002년부터는 시대악기 단체인 슈투트가르트 호프카펠레의 음악감독을 맡아 왔는데, 이 악단과 함께 요한 고틀리프 나우만, 유스틴 하인리히 크네히트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주의 작곡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 음반화해 온 이력이 이번 '엘렉트라' 녹음과도 맥을 같이한다. 낭독자 역의 이자벨 레드펀을 비롯해 베른트 슈미트, 클레망스 불루 등 배역진과 슈투트가르트 실내합창단 여성 파트가 함께한 이번 녹음은, 대사와 관현악이 순간순간 긴밀하게 맞물려야 하는 멜로드라마 특유의 어려움 — 말의 억양과 악구의 호흡을 일치시키는 섬세한 타이밍 감각 — 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카나비히

크리스티안 카나비히(1731~1798)는 '만하임 악파'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요한 슈타미츠 문하에서 수학한 뒤 만하임 궁정악단의 악장을 거쳐 카를 테오도어 선제후 궁정의 기악 음악 총감독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생전에 작곡가로서보다 오히려 오케스트라를 조련하는 뛰어난 훈련가로 더 큰 명성을 얻었으며, 실제로 만하임 악단이 유럽에서 가장 정교하고 다이내믹한 관현악단이라는 평판을 얻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작품 목록의 중심은 교향곡과 실내악, 발레 모음곡이었고, 무대음악은 그의 창작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드문 영역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엘렉트라'는 카나비히의 이력에서 이례적인 위치를 점한다 — 평생 순수 기악 작곡가이자 오케스트라 실무자로 활동했던 그가 당대 최신 유행이던 극음악 장르에 손을 댄 유일한 사례에 가깝기 때문이다. 만하임 악파는 다이내믹의 점층적 사용(이른바 '만하임 크레셴도'), 극적인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으로 훗날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으며, 카나비히는 그 흐름의 한가운데 있던 실무자였다.

그리스 비극의 멜로드라마

멜로드라마 장르 자체의 기원은 1770년 리옹에서 초연된 루소와 콰녜의 '피그말리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게오르크 안톤 벤다가 이 장르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자로 떠오르면서 독일어권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모차르트조차 벤다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와 ;메데아'에 깊이 매료되어 자신의 '타모스, 이집트의 왕'과 '차이데'의 모델로 삼았을 정도였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부수음악 역시 긴 멜로드라마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계보의 연장선에서 카나비히의 '엘렉트라'가 놓인다. 만하임 궁정극장의 실질적 책임자였던 폰 달베르크가 그리스 비극의 아트레우스 가문 비극 —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엘렉트라의 이야기 — 을 대본으로 써 내려갔고, 궁정악단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던 카나비히가 곡을 붙인 것은 자연스러운 조합이었다.

다섯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관현악과 정교하게 맞물리며 진행되는데, 이는 순수 기악에 능했던 카나비히가 무대 언어 위에 자신의 오케스트레이션 감각을 시험해 본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대사의 사실감과 관현악의 정서적 해설

'엘렉트라'의 음악은 대본의 세부 묘사를 놀라울 만큼 충실하게 따라간다. 다섯 장면은 각기 다른 극적 국면 — 서주의 장중함, 행진과 애가가 교차하는 첫 장면, 신전을 배경으로 한 장엄한 클라이맥스, 그리고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마지막 장면 — 을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거나 장면 전환에 따른 분위기 변화를 즉각적으로 포착해 내는 묘사적 기법이 두드러진다.

당김음 리듬, 반음계적 진행, 극단적인 다이내믹 대비 등 카나비히 특유의 표현 어휘가 총동원되어, 등장인물의 심리적 동요와 복수심, 슬픔을 관현악만으로 실감 나게 형상화한다. 결국 이 작품이 겨냥한 것은 노래로는 담아내기 힘든 대사의 사실감과, 그 대사를 감싸는 관현악의 정서적 해설을 동시에 살리는 것이었다 — 당대 독일어권 청중이 자국어로 느끼고 싶어했던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노래가 아닌 '말해지는 음악'으로 구현해 낸 셈이다.

카나비히에 대한 재평가

이번 음반은 발매 이후 유럽 클래식 매체들로부터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음원 플랫폼 코부즈(Qobuz)는 이 작품이 그리스 비극에서 소재를 취한 아트레우스 가문 이야기를 멜로드라마라는 혼종 장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짚으며, 카나비히의 음악이 대본의 세부까지 놓치지 않는 묘사력을 지녔다고 평했다. 

카나비히의 교향곡 녹음들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보여 온 그라모폰(Gramophone) 역시 그를 슈타미츠 문하에서 성장한 만하임 악파의 핵심 인물로 조명해 온 전례가 있어, '엘렉트라'의 발매는 그간 교향곡 중심으로만 다뤄지던 카나비히 재평가 작업에 무대음악이라는 새로운 축을 더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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