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인류 문명의 불평등은 어디서 비롯됐나"... 제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역사학계 패러다임 전환 이끌다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1-30 16:57:21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이여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풀리처상 수상작으로 전 세계 학계와 대중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가 출간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필수 교양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UCLA 지리학과 교수이자 생리학자인 다이아몬드는 이 저서에서 "왜 어떤 민족은 다른 민족을 정복했고,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는 인종적 우월성이나 문화적 차이가 아닌, 지리적·환경적 요인이 인류 문명 발전의 결정적 변수였음을 방대한 증거를 통해 입증한다.

환경결정론으로 풀어낸 문명의 수수께끼

다이아몬드는 약 1만3000년 전 농경의 시작이 인류 역사의 분기점이었다고 분석한다. 유라시아 대륙은 밀, 보리 같은 재배 가능한 야생 곡물과 말, 소, 돼지 등 가축화 가능한 대형 포유류가 풍부했다. 반면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물학적 조건에 놓여 있었다.

농경과 목축이 가능했던 지역은 식량 잉여를 바탕으로 인구 증가, 전문 직업의 분화,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금속 제련 기술이 탄생했고(쇠), 밀집된 인구와 가축 사육 환경에서 전염병에 대한 면역이 형성됐으며(균), 궁극적으로 우수한 무기 체계가 개발됐다(총).

이러한 기술적·생물학적 우위는 15세기 이후 유럽의 대항해시대와 식민지 확장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가 불과 168명의 병력으로 잉카 제국을 무너뜨린 사건은 총기, 철제 무기, 말, 그리고 원주민에게 치명적이었던 천연두라는 '균'의 복합적 작용이었다는 것이 다이아몬드의 설명이다.

학문적 가치와 논쟁

'총, 균, 쇠'는 출간 즉시 학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1998년 풀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역사학, 인류학, 지리학, 생물학을 아우르는 통섭적 접근으로 학문 간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이아몬드의 환경결정론은 인종주의적 역사관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유럽 문명의 우위가 백인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지리적 행운의 결과였음을 강조한다. 이는 식민주의 시대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교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다이아몬드가 인간의 주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한다.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개인과 집단의 선택, 창의성, 저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또한 지나치게 거시적인 접근이 지역별 특수성과 복잡성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총, 균, 쇠'가 제시하는 통찰은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에도 유효하다. 기후변화, 팬데믹, 자원 불평등 같은 21세기 과제들은 모두 환경과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다이아몬드의 '균' 이론을 현대적으로 재확인시켰다. 고밀도 도시화, 국제 교역망, 인간-동물 접촉 증가는 새로운 전염병의 온상이 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역사 속 천연두와 말라리아로 설명했던 메커니즘이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는 환경 변화가 문명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고 강조한다. 가뭄으로 멸망한 마야 문명, 삼림 고갈로 쇠퇴한 이스터 섬의 사례는 환경 파괴가 초래할 미래에 대한 경고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 위기는 식량 생산, 물 자원, 거주 가능 지역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총, 균, 쇠'를 낳을 수 있다.

미래 사회 전망: 새로운 불평등의 탄생

다이아몬드의 분석틀을 현재에 적용하면 우려스러운 미래가 보인다. 과거 지리적 조건이 문명의 격차를 만들었다면, 미래에는 기술 접근성과 기후 적응력이 새로운 불평등의 축이 될 것이다.

첫째, '디지털 총'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기술을 선점한 국가와 기업은 압도적 우위를 점할 것이다. 과거 철제 무기와 화약이 그랬듯, 첨단 기술은 경제적·군사적 지배력의 원천이 된다. 기술 격차는 국가 간, 계층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둘째, '기후 균'이라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병 확산, 식량 위기, 물 부족은 특정 지역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적도 지역과 저지대 국가들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반면, 온대 지역의 선진국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환경 불평등을 고착화한다.

셋째, '자원 쇠'의 재편이 일어난다. 과거 철과 석탄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다면, 미래에는 리튬, 코발트, 희토류 같은 전략 자원이 핵심이다. 이들 자원의 편재성은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을 야기하고, 자원 보유국과 기술 선진국 간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과제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결정론을 숙명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의 또 다른 저작 '문명의 붕괴'에서 강조했듯, 인간은 환경의 도전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도,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미래 사회는 국제 협력, 기술의 민주적 분배, 환경 보전이라는 선택지 앞에 서 있다.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고, 백신과 의료 기술을 공평하게 나누며,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선택이다. '총, 균, 쇠'가 과거의 불평등을 환경으로 설명했다면, 미래의 평등은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가야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 경로를 과학적으로 해부하고, 현재의 불평등을 이해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나침반이다. 출간 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책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환경과 기술, 그리고 선택의 문제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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