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자비(慈悲)'의 무게—부그로가 평생 간직한 신앙의 고백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22 09:04:10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 Adolphe Bouguereau, 1825~1905)는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즘 회화의 절대적 정점에 선 화가다. 라로셸 출신인 그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한 후 1850년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수상하며 화단에 공식 입문했다. 이후 반세기에 걸쳐 파리 살롱에 거의 매년 출품하며 총 826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고, 생전에 이미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미술사적으로 부그로는 양면적 위치를 점한다. 살아있는 동안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고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앙받았으나, 20세기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이 주류가 되면서 ‘지나치게 달콤하고 감상적인 통속화가’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현재는 그의 탁월한 기술적 완성도와 인간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르누아르, 마티스 같은 인상파 화가들조차 그의 데생 능력만큼은 경외했다고 전해진다.
살롱의 총아가 왜 종교화를?—신앙과 고통이 만난 자리
부그로 하면 흔히 관능적이고 이상화된 여성 누드, 천진한 어린이, 목가적 농촌 풍경이 떠오른다. 그의 상업적 성공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대중 친화적 소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의 전체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종교화가 결코 주변적인 장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성모 마리아, 그리스도, 성인들을 주제로 한 대작들을 꾸준히 제작했다.
특히 1897년에 완성된 ‘자비(Compassion)’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부그로는 이 작품을 단 한 번도 팔지 않았다. 생전에 수많은 작품을 제작해 판매했지만, 이 그림만은 자신의 아틀리에에 평생 간직하다 사망했고, 이후 후손들이 2009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했다. 화가가 어떤 작품을 끝까지 곁에 두었는가는 그의 내면세계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증거다.
실제로 부그로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네 명의 자녀 중 셋을 잃었고,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반복된 상실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고통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주제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만들었다. ‘자비’는 단순한 종교 도상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신앙 고백이자 삶의 증언이었던 것이다.
완벽한 육체, 무한한 고통
‘자비’는 부그로 특유의 아카데믹 리얼리즘이 종교적 주제와 만나 정점에 달한 작품이다. 화면은 세로로 긴 구도 속에 두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육체는 부그로가 평생 연마한 인체 묘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창백하고 이상화된 피부, 근육과 힘줄의 정밀한 표현,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의 사실적 묘사가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그의 몸에 머리를 기댄 채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진 인물은 성서 속 구레네 시몬을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더 보편적인 '모든 인간'을 상징한다. 그의 눈은 감겨 있고, 표정에는 고통과 평화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 손등에 떨어지는 세부 묘사는 신성과 인간의 접촉, 희생의 이전(移轉)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시각화한 것이다. 십자가 상단에는 그리스어, 라틴어, 아람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적힌 명패가 붙어 있어 역사적 사실성을 더한다.
배경은 부그로의 관례와 달리 이상화된 자연이 아닌 황량한 불모지다. 이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 인간의 영적 황폐함을 상징하는 선택으로, 화면 전체에 구원 이전과 이후의 대비를 암시한다. 회색과 청회색이 주조를 이루는 하늘 배경은 사건의 엄숙함을 한층 강화한다.
신과 인간이 닿는 순간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제목 그대로 '자비(compassion)'다. 라틴어 어원 'compassio'는 '함께 고통받음'을 의미한다. 화면 속 남자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단순히 증인으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안으로 들어가 함께 짊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행위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이 작품이 전하는 신학적 메시지다.
부그로는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가 세속화와 반교권주의 물결에 휩쓸리던 시대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개인적 비극과 사회적 흐름 속에서 신앙을 붙드는 행위로서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다. 그가 이 작품을 끝까지 팔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해석을 더욱 강화한다.
무릎이 꺾이는 감각—감상의 언어
이 그림 앞에서는 처음에 압도감이 온다. 실제 크기에 가까운 두 인물의 육체적 리얼리티가 관람자를 작품 속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다른 감각이 따라온다. 십자가에 매달린 자와 그 발치에 기댄 자 사이의 침묵 같은 것. 말이 필요 없는 연대, 설명되지 않는 위로.
그리스도의 표정은 고통 속에서도 무언가를 받아들인 자의 것이고, 발치의 남자는 눈을 감은 채 그 침묵 안으로 들어가 있다. 보는 이는 자신이 그 남자의 자리에 서 있음을 깨닫는 순간, 그림이 단순한 종교적 도상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된다. 부그로가 이 작품을 팔지 않고 평생 곁에 두었던 이유가 바로 이 감각에 있었을 것이다.
재평가와 시장
부그로는 20세기 중반까지 미술 시장에서도 저평가되었으나, 1980년대 이후 아카데믹 리얼리즘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경매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현재 그는 19세기 프랑스 회화 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고가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주요 작품들은 수백만 달러에 낙찰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형 종교화나 완성도 높은 여성 인물화의 경우 1,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사례도 있다. 다만 ‘자비’는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으로서 공공 컬렉션에 귀속되어 있어 경매 시장에 나올 수 없다. 만약 이 작품이 시장에 등장한다면—그럴 가능성은 없지만—부그로의 개인 신앙이 담긴 유일한 비판매작이라는 역사적 맥락만으로도 시장 최고가를 경신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오르세 미술관 영구 소장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의 가치를 가장 명확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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