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창가의 장미—발튀스(Balthus)가 포착한 영원한 오후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22 08:47:52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발튀스(Balthus)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20세기 미술사에서 독립된 장(章)이 성립된다. 본명 발타자르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Balthasar Klossowski de Rola), 1908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폴란드 귀족 혈통의 화가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하며 릴케, 피카소, 드랭 등과 교류하는 특별한 유년을 보냈다. 릴케는 어린 발튀스의 재능에 감탄해 그가 열한 살에 그린 고양이 그림에 시를 붙여 책으로 출판해줄 정도였다.
그는 어떤 사조에도 속하기를 거부했다. 추상미술이 미술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홀로 구상회화의 길을 고집하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푸생, 쿠르베의 전통을 현대에 되살렸다. 스스로를 ‘20세기의 이방인’이라 칭했던 그는 1961년부터 1977년까지 로마 빌라 메디치의 원장을 역임하며 유럽 문화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피카소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화가’라 불렀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1956년 그에게 대규모 회고전을 헌정했다. 2001년 스위스 로시니에르에서 93세로 별세한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은 화가였다.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기하학
1958년 작 ‘창가의 장미 꽃다발(The Bouquet of Roses on the Window)’은 발튀스가 프랑스 모르방(Morvan) 지역의 샤시(Chassy) 성에 머물던 시기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시기 그는 인물화에서 벗어나 풍경과 정물이 결합된 창가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그 연작의 정점으로 꼽힌다.
구성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하다. 화면은 열린 창문 프레임으로 경계 지어지며, 오른쪽에는 덧문(shutters)의 기하학적 수직선이 리듬감 있게 반복된다. 창가 선반 위에는 소박한 테라코타 빛 물주전자에 분홍빛 장미 두 송이와 주황색 야생화가 꽂혀 있다. 꽃다발은 화면의 하단 중앙에 위치해 전체 구도의 닻 역할을 하며, 배경의 광활한 풍경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그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배경의 샤시 계곡 풍경은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사선 패턴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 사선들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화면에 강렬한 조형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구조적 장치다. 원경의 구릉지는 청회색과 녹색이 층층이 쌓여 부드럽게 처리된 반면, 중경의 밭과 나무들은 거친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질감을 살렸다. 색조는 전체적으로 분홍, 갈색, 녹색, 청색이 조화를 이루며 따뜻하면서도 절제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튀스 특유의 점묘에 가까운 붓질이 풍경 전체에 진동하는 빛의 입자를 만들어내며, 이는 세잔의 구조적 접근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명징한 빛을 동시에 계승한다.
순간 속의 영원
이 작품은 발튀스의 회화 세계에서 여러 이유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선 그가 논란의 여지없이 순수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구현한 드문 사례라는 점이다. 발튀스는 청소년을 소재로 한 도발적인 작품들로 인해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끊임없이 논쟁의 중심에 섰다. 반면 이 창가 풍경 연작은 그의 탁월한 회화 기량과 시적 감수성이 아무런 논란 없이 순수하게 빛나는 작품들로, 컬렉터들과 평단 모두에게 고르게 사랑받는다.
구성적으로도 이 작품은 서양 미술사의 오랜 전통인 '창가 정물(window still life)' 장르를 발튀스 방식으로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티스가 남프랑스의 창가를 장식적 색채로 채웠다면, 발튀스는 더 내면화된 시선으로 창 너머의 세계와 창가의 사물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꽃병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소재와 광활한 자연 풍경이라는 가장 거대한 소재의 결합 속에서, 그는 미시와 거시, 실내와 실외, 덧없음과 영원함 사이의 긴장을 빛으로 중재한다.
오래된 오후의 냄새
이 그림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어딘가 멀리 있는 기억 같은 감각이 스며든다. 장미는 활짝 피었지만 곧 질 것을 알고 있고, 햇빛은 충만하지만 기울고 있는 오후의 것이며, 풍경은 고요하지만 바람이 있었음을 증거하는 그림자들이 길게 뻗어 있다. 모든 것이 최고의 순간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순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쓸쓸함을 품고 있다.
창틀과 덧문이 만드는 수직의 질서는 이 감정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게 붙잡아 준다. 발튀스의 절제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감정을 충동질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그곳에 있게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그 감정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마치 좋은 시가 감정을 서술하지 않고 독자 내면에서 감정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처럼.
수백억 원을 오가는 발튀스의 매력
발튀스는 생전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화가 중 한 명이었고, 사후 그의 작품 가치는 더욱 견고해졌다.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등 주요 경매 하우스에서 그의 작품은 항상 최상위 로트(lot)를 차지한다.
대표적으로 그의 인물화 ‘La Patience’는 2018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약 1,860만 달러(한화 약 250억 원)에 낙찰되며 개인 최고가를 경신했다. 인물화가 아닌 풍경 및 정물 계열 작품들도 수백만 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며, 특히 샤시 시절의 창가 풍경 연작은 그 완성도와 희소성으로 인해 컬렉터들의 집중적인 경쟁 대상이 된다. ‘창가의 장미 꽃다발’은 같은 계열의 작품 중 구성과 완성도에서 단연 상위에 속하며, 현재 시장 흐름을 고려하면 수백만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의 평가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미술 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발튀스는 논란을 안고 있는 화가이지만, 바로 그 복잡성이 그를 단순한 아름다움의 생산자가 아닌 20세기 회화사의 불가결한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창가의 장미‘는 그 복잡한 거장이 남긴 가장 순수하고 평화로운 증언이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