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꽃피는 혼종의 시(詩)—막스 발터 스반베리의 초현실주의 세계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22 08:22:38
앙드레 브르통이 경탄한 '북유럽의 초현실주의자'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막스 발터 스반베리(Max Walter Svanberg, 1912~1994)는 20세기 스웨덴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말뫼 출신인 그는 스웨덴 이마지니스트(Imaginist) 그룹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했고, 1945년 스톡홀름의 구메손스 콘스트홀(Gummesons konsthall)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통해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전시 카탈로그를 집필한 작가 아르투르 룬드크비스트(Artur Lundkvist)는 그를 "발명가적인 이미지 시인(inventive image-poet)"으로 칭했고, 이 표현은 이후 스반베리의 예술적 정체성을 압축하는 말로 자리잡았다.
결정적 전환점은 1953년 파리 갈르리 드 바빌론(Galerie de Babylon) 전시에서 찾아왔다. 초현실주의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그의 작품을 직접 발견한 것이다. 브르통은 "내 인생의 위대한 만남 가운데 막스 발터 스반베리의 작품과의 조우를 꼽는다"고 고백하며 깊은 감화를 드러냈다. 이후 1956년 말뫼 갈르리 콜리브리(Galerie Colibri) 전시에서도 브르통과 루이폴 파브르(Louis-Paul Favre)의 글이 카탈로그에 수록되며 국제적 명성이 공고해졌다. 미술사적으로 스반베리는 벨기에의 폴 델보, 체코의 토옌, 덴마크의 빌헬름 프레디, 독일의 막 치머만과 함께 각국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는다.
붉은 우주 속 혼종의 여신—화법과 작품 내용
1962년 작 ‘꽃피는 혼종에 관한 시(Poem om blommande hybrider)’는 과슈(gouache) 기법으로 제작된 103×83cm 크기의 작품이다. 과슈는 불투명 수채로, 유화보다 선명하고 평탄한 발색을 구현하면서도 속건성(速乾性)으로 인해 화가가 층층이 색면을 쌓아 올리는 데 유리하다. 스반베리는 이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섬세한 패턴과 장식적 질감을 만들어냈다.
화면은 강렬한 주홍빛 배경을 기반으로 한다. 배경 자체도 단순한 색면이 아니라 꽃과 기하학적 문양이 촘촘하게 반복되는 장식적 텍스처로 뒤덮여 있어 화면 전체가 진동하듯 생동감을 발산한다. 화면 왼쪽에는 인간과 곤충이 혼합된 듯한 여성적 존재가 서 있다. 나비 또는 잠자리 날개와 유사한 형태가 머리 부근에 펼쳐져 있고, 몸통은 보석과 레이스 장식이 가득한 화려한 청색 의상으로 감싸여 있다. 손가락은 식물의 줄기나 집게 발톱, 애벌레 등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변형되어 있으며, 발은 녹색의 유기적 형태로 마무리된다.
화면 오른쪽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자리한다. 시계 문자판은 우주(宇宙)를 연상시키는 짙은 남색 바탕에 별 모양의 나침반과 눈(目) 형상이 새겨져 있어, 단순한 시간 측정 도구가 아닌 우주적 시간과 무의식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시계 몸체에도 두 개의 원형 눈이 박혀 있어 마치 시계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화면 전반에 걸쳐 에메랄드 녹색과 루비 적색의 보석 장식이 반복되며 화면에 리듬감과 통일성을 부여한다.
'여성 숭배'와 '변신'—스반베리 예술의 철학적 핵심
스반베리의 초현실주의 세계는 여성과 아름다움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그의 작품 속 여성은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니라 물고기, 새, 나비, 식물 등 자연의 다양한 형태와 융합되며 끊임없이 변신(metamorphosis)을 거듭한다. 이 혼종적 존재들은 프로이트와 브르통이 말한 무의식의 욕망과 꿈의 논리를 시각화한 것으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생명력의 원초적 표현이다.
‘꽃피는 혼종에 관한 시’라는 제목 자체가 이 철학을 압축한다. '혼종(hybrid)'은 서로 다른 종(種)이 융합된 존재를 의미하며, 그것이 '꽃피운다'는 것은 그 불가능한 결합이 오히려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운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경계, 시간과 영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시각적 시편(詩篇)이다.
불꽃 같은 붉은 화면이 전하는 감각—감상의 언어
이 그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강렬한 붉은빛이 시각을 압도한다. 그것은 단순한 배경색이 아니라 화면 전체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에너지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혼종 여성의 시선은 옆을 향하고 있어 관람자와 직접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의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거리감이 오히려 신비로운 인력(引力)을 만들어낸다.
괘종시계의 짙은 남색 문자판은 붉은 화면 속에서 마치 우주의 창처럼 차갑게 빛나며 시간의 무한성을 상기시킨다. 촘촘한 패턴으로 가득 찬 화면은 오래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형태와 리듬이 발견되는 시각적 명상의 공간이 된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화려함 속에서 고독하고, 축제적이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고요한 역설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브르통이 말한 "매혹의 의미를 내부로부터 파악하게 해주는"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희소성이 곧 가치
스반베리는 스웨덴 내에서는 이미 국민적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국제 경매 시장에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컬렉터들에게 기회의 영역으로 해석된다.
스웨덴 주요 경매 하우스인 부코발스키(Bukowskis)와 모던 아우션(Moderna Auktioner) 등에서 그의 작품은 꾸준히 거래되어 왔다. 과슈나 종이 작품의 경우 수천에서 수만 유로 수준에서 낙찰되는 경우가 많으나, 본 작품처럼 대형 과슈에 완성도 높은 구성과 명확한 출처(provenance)가 결합된 경우에는 수십만 유로 이상의 평가도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초현실주의 컬렉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 속에서, 브르통이 직접 극찬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를 한층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스반베리의 작품이 크리스티(Christie's)나 소더비(Sotheby's) 같은 대형 국제 경매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다면, 그 가치 재평가 폭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유럽 초현실주의라는 아직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장르의 정점에 있는 화가라는 점에서, 스반베리는 여전히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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