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망각의 심연에서 귀환한 바로크의 빛 - 조프루아의 합창과 오르간 음악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4-07 08:23:12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낙소스(Naxos) 레이블이 펴낸 장-니콜라 조프루아(Jean-Nicolas Geoffroy, 1633?~1694)의 음반 ‘합창과 오르간을 위한 음악(Music for Choir and Organ)’은 고음악 부흥의 역사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출생지조차 불명으로 기록된 채 1694년 3월 페르피냥에서 생을 마감한 이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의 유일한 성악·기악 음반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97년의 일이다.
오르간 연주자 겸 지휘자 에르베 니케(Herve Niquet)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Le Concert Spirituel)이 함께한 이 녹음은, 오랫동안 역사의 그림자 속에 묻혀 있던 한 천재의 음악을 현대 청중 앞에 처음으로 소환한 선구적 작업이다.
역사 속에 숨겨진 바로크의 거장
조프루아는 프랑스의 하프시코디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 작곡가로, 니콜라 르베그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며 파리의 생-니콜라-뒤-샤르도네 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다. 이후 페르피냥 대성당 오르간을 맡았고, 오르간 제조 분야의 전문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를 음악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올리는 것은 하프시코드 작품들이다. 그의 하프시코드 작품집은 프랑수아 쿠프랭, 장-프랑수아 당드리외와 함께 바로크 시대 프랑스 음악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존하는 단 하나의 필사본에는 255개의 소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17세기 말 유럽 음악 중 모든 장조와 단조를 체계적으로 탐구한 유일한 작품집이라는 점에서 독보적 의의를 지닌다. 바흐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으로 24조성을 정복하기 수십 년 전, 조프루아는 이미 같은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오르간 악파의 정통 계보에서 그는 루이 쿠프랭, 니콜라 기고, 니콜라 르베그와 같은 선배 세대와 프랑수아 쿠프랭, 니콜라 드 그리니를 잇는 중간 세대에 위치한다.
에르베 니케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해석
에르베 니케는 하프시코드·오르간·피아노·성악·작곡·합창 지휘에 이르는 폭넓은 수련을 쌓은 보기 드문 음악가다. 1980년 파리 국립오페라의 합창 지휘자로 임명된 데 이어, 1985년에는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레자르 플로리상에 테너 가수로 합류하며 고음악 해석의 깊이를 더했다. 1987년 그가 창단한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베르사유 궁정에서 연주된 프랑스 음악의 부흥을 목표로 설립된 고음악 앙상블로,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 장-밥티스트 륄리, 앙드레 캄프라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에 집중해왔으며 2020년 릴리안 베탕쿠르 합창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 음악계에서 최고 수준의 바로크 앙상블로 인정받고 있다.
이 음반에서 니케는 오르간을 직접 연주하며 지휘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조프루아의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1995년 10월 부르고뉴의 쇠르 교회(1699년 줄리앙 트리부오 제작 오르간 사용)와 파리 노트르담 뒤리방 교회라는 두 역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진 녹음은, 작곡가가 살았던 시대인 음향 환경을 최대한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수록곡이 담은 신앙과 시대의 목소리
이 음반은 크게 두 영역으로 구성된다. 전반부는 '메멘토 도미네 다비드', '레지나 첼리 라에타레', '아베 레지나 첼로룸', '마니피카트'와 같은 성악 종교 음악, 그리고 '이중 축일을 위한 미사'의 키리에·글로리아·봉헌송·상투스·아뉴스 데이까지 루이 14세 치하 프랑스 가톨릭 전례의 핵심 레퍼토리를 망라한다. 후반부는 알르망드·미뉴에트·샤콘느·에느 드 베르제르·카나리·뮈제트 등 하프시코드와 비올 앙상블을 위한 기악 소품들이 이어진다.
전례 음악에서 조프루아는 17세기 프랑스 궁정 모테트의 장엄함과 섬세한 대위법적 정교함을 결합하며 신앙의 언어를 음악으로 번역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기악 소품들은당시 살롱 문화와 귀족 사회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우아함과 민첩한 리듬감이 공존한다. 마지막 수록곡 '클라브생과 비올을 위한 대화'는 두 음색이 서로 물음을 던지고 응답하는 구조로, 인간과 신, 또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내밀한 대화를 연상시킨다.
복원의 의미와 음반의 유산
조프루아의 음악이 품은 가장 큰 비밀은 '왜 잊혔는가'가 아니라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이다. 니케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이 음반은 단순한 복원 작업을 넘어, 바로크 음악이 얼마나 풍요로운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하나의 선언이다. 니케 자신이 프랑스의 위대한 모테트를 부활시키고자 앙상블을 창단했다고 밝힌 것처럼, 이 녹음은 역사의 그늘에 묻힌 음악에 빛을 되돌리려는 집요한 열정의 결실이다.
낙소스라는 대중적 레이블을 통해 발매됨으로써 조프루아의 음악은 전문 연구자를 넘어 폭넓은 청중에게 가닿을 수 있었다. 이 음반을 통해 우리는 루이 14세 시대 베르사유의 향기와, 페르피냥 대성당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돌벽 사이로 퍼지던 그 오래된 오후를 아직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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