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별에서 밤의 별로... 세라믹 작가 허성윤, 두 번째 개인전 ‘SpaceX Entertainment’로 돌아오다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9-12 07:17:02
[K라이프저니 | 이주상기자] "저는 인간이 우주로 나가는 걸 굉장히 믿어요. 어떤 사람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세라믹 작가 허성윤(Ruby Huh)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뾰족한 별의 형상 뒤에 거창한 우주론이 숨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담백한 확신으로 답했다. 그에게 별은 신화도 낭만도 아니다. 과학이고 물리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새겨 넣는 형태다.
8월 21일부터 9월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공간형 갤러리에서 열리는 허성윤의 두 번째 개인전 ‘SpaceX Entertainment’는 그렇게, 낭만이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하는 별의 서사다. 10일 작가 허성윤을 공간형에서 만났다.
웃자고 붙인 제목, 웃기지 않은 이야기
전시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정작 작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작가는 잘라 말한다. "제 작품이랑 전시는 스페이스X랑 전혀 관련이 없어요."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몇 해 전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의 갈등이 화제가 되면서 무엇이든 뒤에 '엔터테인먼트'를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졌던 시절, 평소 좋아하던 우주기업 스페이스X에는 정작 '엔터테인먼트'가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재미있는 농담거리였다.
"그냥 재미로 지었어요." 다만 그는 덧붙인다. 제목은 유쾌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글과 주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날카롭고 뾰족한 조형과 즐거운 제목 사이의 낙차, 그것이야말로 허성윤이라는 작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별자리보다 물리학을 믿는 사람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별자리 신화에는 오히려 무심하다는 사실이다. "저는 별자리를 그렇게 읽을 줄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건 그냥 사람이 만든 이야기고, 저는 별자리보다는 과학이나 물리를 믿는 편이에요." 낭만적 우주가 아니라 물리적 우주, 신화가 아니라 구조와 패턴에 대한 믿음이다. 물리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컸기에 가능했다.
이는 공간형 디렉터 김은희가 전시 서문에서 짚은 지점과 정확히 맞닿는다. 허성윤이 다루는 별은 아이가 처음 별을 그릴 때 그리는 다섯 개의 꼭짓점, 그 원형적 형태이되, 신화의 별이 아니라 기하학과 세라믹의 몸을 얻은 하나의 물질로서의 별이다.
영감의 원천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 역시 비슷했다. "저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는 사람한테 배운 것 같아요. 제가 힘들었을 때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언니 오빠라 부르는 이들과 나눈, 건강한 마음가짐에 대한 대화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전시 서문에 담긴 스토아 철학과 니체적 사유—고통이 운명에서 이탈한 길이 아니라 걸어가야 할 지도의 일부일 수 있다는 생각, 운명이란 정해진 목적지가 아니라 선택을 통해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나'라는 생각—은 이 같은 관계 속에서 길어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뾰족하지만 편안한, 손으로 빚은 별
작품의 조형은 날카롭다. 다섯 개, 여섯 개, 일곱 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들이 저마다 다른 크기와 광택으로 뻗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뾰족함이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준다고 말한다. "제 작품이 되게 뾰족하고 샤프해서 친근감이 없을 수도 있는데, 막상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도 동의해요. 그 대비가 흥미로운 것 같아요."
작업 방식은 철저히 수공이다. "저는 몰드를 안 써요. 틀을 만들어서 똑같이 찍어내는 작업은 안 하고, 하나하나 다 손으로 만들어요." 겉면만 흙으로 빚고 속은 비워 공기로 채운다. 무게를 덜기 위한 선택이지만, 형태 안에 여백을 남기는 태도로도 읽힌다.
흙은 미국에서 들여온 두 종류를 쓴다. 알갱이가 있는 흙일수록 뾰족한 별의 형태를 지탱할 힘이 생기고, 반대로 면이 단순한 사각 작업에는 알갱이 없는 매끄러운 흙을 쓴다. 유약도 직접 배합한다. 회화 전공자였던 이력이 색에 대한 예민함으로 고스란히 이어진 결과다. 별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흙이 마르는 시간을 포함해 약 3주가 걸린다.
캔버스가 아니라 형태 그 자체
전시에는 별 연작 '스타더스트(Stardust)' 외에 사각형의 세라믹 연작도 함께 걸린다. 작가는 이를 회화 전공 시절 캔버스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설명한다. "페인팅 할 때 캔버스가 있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캔버스를 종이처럼 다루는데, 저는 입체로 넘어오면서 캔버스가 종이가 아니라 하나의 형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게 가장 단순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인생의 단계마다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사각 형태에 담았다. 연작의 제목 '스터디스 오브 어웨어니스(Studies of Awareness)'는 '의식을 공부한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과 주변을 탐구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세라믹에서 스타일링까지, 색을 다루는 방식
허성윤의 색채 감각은 작업실 밖으로도 뻗어 있다. 그는 최근 스타일리스트로도 활동을 넓히고 있다. 아이돌 출신 인물이나 유명 패션브랜드 모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 등의 의상을 조합하는 작업이다. "친한 사진작가가 제가 옷을 준비하는 걸 보고 스타일리스트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생각도 못 했는데 한번 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확장이지만, 무난함을 거부하고 특이하고 강렬한 것을 좋아한다는 성향은 패션에서도 세라믹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3년의 인연, 그리고 다음 3년
이번 전시는 2022년 공간형의 신진작가 공모 프로그램 ‘형이하의 다이버전스’를 통해 허성윤을 처음 발굴한 이래, 갤러리가 지속적으로 지켜봐 온 작가 지원 과정의 결실이기도 하다. 첫 개인전 이후 그는 프리뷰 성수, 런던의 스타트 아트페어, 사치 갤러리 연계 전시, K옥션, 하나은행 프라이빗 아트페어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 잇따라 참가하며 보폭을 넓혀왔다.
그의 첫 개인전 '하이퍼스페이스 유니버시티'(2022, 성수동 미러드 스피어 갤러리) 이후 3년 반, 회화와 세라믹을 병행하던 그는 이제 세라믹 하나에 집중하며 "제 스타일을 찾았다"고 말한다.
3, 4년 뒤의 자신을 그려달라는 질문에 그는 소박하게 답했다. "그때는 시간이 더 지났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성숙함이랑 경험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묻자 망설임 없이 한 단어가 돌아왔다. "믿음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SpaceX Entertainment’는 오는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공간형 갤러리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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