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21세기의 날개를 단 천 년의 기도... 'Three Wings — Plainsong, Reimagined'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4-25 05:01:29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음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시대가 만들어낸 음악과,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 후자는 드물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귀는 더욱 드물다.
2017년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 세상에 나온 음반 'Three Wings — Plainsong, Reimagined'는 그 드문 일을 해냈다. 14세기 수도원의 돌벽 사이에서 수백 년을 숨 쉬어온 플레인송(Plainsong) — 단선율, 무박자, 라틴어로 구성된 중세 전례 성가 — 이 21세기 전자음향이라는 새 몸을 입고 다시 공기를 가른다. 이것을 복원이라 부르기엔 너무 살아있고, 창작이라 부르기엔 너무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 부활이다.
앨범의 탄생 — 세 번의 녹음, 하나의 여정
이 음반이 존재하기까지는 하나의 인연이 있었다. 2014년, 윈체스터 칼리지(Winchester College)의 채플 뮤직 디렉터 맬컴 아처(Malcolm Archer)가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자신이 이끄는 소년 합창단 퀴리스터스(Quiristers)의 소리를 더 넓은 세계에 전하고 싶다는 것. 그가 찾아간 사람은 영국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데이비드 롤 페리(David Lol Perry)였다. 제안은 간결했다. 전통적으로 아카펠라로만 불려온 플레인송에 현대적 편곡을 더하고, 그것을 소년들의 목소리로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14세기에 지어진 칼리지 채플의 음향은 독특하고 까다로웠다. 수백 년 된 돌벽이 만들어내는 잔향은 아름답지만 통제하기 어려웠고, 녹음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는 그 공간의 물리적 조건과 끊임없이 협상해야 했다. 첫 녹음 세션은 2015년 3월, 학생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고요한 날에 진행되었다. 같은 해 10월 두 번째 세션이 이어졌고, 마지막 세션은 2017년 2월에 열렸다.
3년의 시간 동안 소년들의 목소리는 변했다. 변성기가 찾아온 단원들은 합창단을 떠났고,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했다. 페리는 이 여정을 두고 '완만한 자기 발견의 롤러코스터'라고 회고했다. 그 롤러코스터의 흔적이 음반의 결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페리가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역설적으로 기술이었다. 샘플 기반의 진부한 디지털 사운드, 기계적으로 정량화된 리듬, 선율을 압도하는 전자음향 — 이런 함정들을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그는 수백 년 된 멜로디가 중심에 서도록 음향의 모든 레이어를 그 아래에 두었다. 전자음향은 배경이 아니라 공기였다. 선율이 숨 쉬는 공간.
세 개의 날개 — 제목이 품은 신학과 시
앨범의 제목 'Three Wings(세 개의 날개)'는 단순한 시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12세기 수녀원장이자 신비가였던 성 힐데가르트 폰 빙엔(St. Hildegard of Bingen)의 플레인송 'O Virtus Sapientiae'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힐데가르트는 구약성서에서 인격화된 존재인 '신성한 지혜(Sapientia)'를 세 개의 날개를 가진 형상으로 묘사했다. 하나는 높이 치솟고, 또 하나는 땅 위에서 수고하며, 세 번째는 어디에나 날아다닌다. 높이, 낮음, 그리고 편재(遍在). 이 세 가지 차원은 이 음반이 지향하는 음악적 공간이기도 하다. 소년들의 목소리는 높이 오르고, 저음의 전자음향은 땅에 발을 딛고, 그 울림은 어디에나 퍼진다. 제목 하나가 이미 완벽한 악보다.
음악사 속의 플레인송 — 모든 서양 음악의 뿌리
플레인송은 서양 음악 전통에서 가장 오래된 뿌리다. 단선율, 자유로운 박자, 라틴어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성가는 중세 수도원에서 하루 여덟 번의 기도 시간마다 노래되었다. 그것은 악보 이전의 음악이었고, 작곡가 이전의 음악이었으며, 개인 이전의 음악이었다. 수 세대의 수도사들이 다듬고 전승해온 집단적 음악 기억.
플레인송이 음악사에서 갖는 의미는 단순한 역사적 선례를 넘어선다. 그것은 폴리포니의 모태였고, 르네상스 모테트의 씨앗이었으며, 바로크 오라토리오의 토대였다. 서양 음악의 모든 발전은 이 단순한 단선율로 소급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한 명의 작곡가가 아닌 인류의 신앙 공동체 전체를 크레디트에 올려야 마땅하다.
데이비드 롤 페리 — 도시를 떠나 수도원으로 간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롤 페리의 이력은 이 음반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맥락이다. 그는 1980년대 4AD 레이블 소속 밴드 Anna Livia의 기타리스트로 음악에 입문했다. 이후 런던 시티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2013년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음악으로 완전히 귀환했다. 조셉 메릭('엘리펀트 맨')의 삶을 다룬 연극 음악, BBC 라디오 4에 방송된 기악 앨범 'Han'이 그 이후의 작업들이다.
그는 종교 음악의 전문가도, 중세학 학자도 아니었다. 그 거리가 오히려 이 음반을 가능하게 했다. 플레인송을 처음 마주한 외부인의 경이로움이 편곡 곳곳에 배어 있다. 경건한 예배의 언어를 일상의 청각으로 번역하는 그의 시도는 신선하고 진솔하며, 때로는 무모할 만큼 순수하다. 그 순수함이 오히려 수백 년 된 선율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닿는다.
'Three Wings'는 영국 차트에 진입하며 워너의 주목할 만한 성과로 기록되었다. 영화와 TV를 위한 음악을 주로 작업하는 그에게, 이 음반은 단순한 앨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하나의 전환점이었고, 고백이었으며, 발견이었다.
맬컴 아처와 윈체스터 칼리지 퀴리스터스 — 625년의 전통
윈체스터 칼리지는 1382년 윌리엄 오브 와이컴(William of Wykeham) 주교에 의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의 헌장에는 12세 미만의 소년 16명이 채플에서 노래하도록 명시되어 있었으며, 이 소년들을 '퀴리스터(Quirister)'라 불렀다. '합창단원'을 뜻하는 가장 오래된 영어 표현 중 하나다. 그리고 6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전통은 끊기지 않았다.
이 음반의 합창 지도를 맡은 맬컴 아처(Malcolm Archer, 1952년생)는 영국 교회 음악계의 가장 권위 있는 이름 중 하나다. 노리치, 브리스톨, 웰스 대성당을 거쳐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의 오르가니스트 겸 음악 디렉터를 역임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0세 생일 기념 예배 음악을 지휘하는 등 영국 국가 행사의 음악을 책임진 인물이다. 2007년 윈체스터 칼리지에 부임하여 2017년까지 퀴리스터스를 이끌었으며, 이 음반은 그의 재임 마지막 해에 세상에 나왔다.
퀴리스터스는 영국 BBC 라디오 3, 라디오 4, 클래식 FM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바티칸·러시아·미국·이탈리아 등 해외 공연을 활발히 펼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소년 합창단이다. BBC '올해의 합창단원(Young Chorister of the Year)'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린 것은 그들의 수준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아처의 손 아래서 훈련된 소년들의 목소리는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 연약하고도 명징한 울림을 가진다. 소년 합창의 목소리는 어른의 목소리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 아직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부르는 노래의 순수함. 그것이 천 년 된 기도문과 만났을 때, 시대를 초월한 어떤 울림이 탄생한다.
기도가 노래가 된 자리
17곡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중세 전례 음악의 핵심 레퍼토리를 망라한다.
음반은 'Salve Virgo Virginum'(동정녀들의 여왕이여, 인사하나이다)으로 문을 연다. 이어지는 'Flos Regalis Virginalis', 'Ave Maris Stella'(바다의 별이여), 'Peperit Virgo'(동정녀가 낳으셨다), 'Laudemus Virginem'(동정녀를 찬미하세) 등은 마리아 찬가의 전통을 따르는 곡들로, 수 세기에 걸쳐 수도원의 새벽과 저녁을 채워온 선율들이다.
'Puer Natus Est Nobis'(우리에게 아이가 태어났도다)는 성탄의 기쁨을 노래하는 7분짜리 대작으로 음반의 정서적 중심을 이룬다. 단순한 기쁨의 선언에서 시작해 점층적으로 쌓이는 음향의 레이어는, 탄생이라는 사건이 품은 신비와 경이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
미사 통상문 'Missa de Angelis' 시리즈 — 'Kyrie Eleison'(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Sanctus'(거룩하시도다), 'Agnus Dei'(하느님의 어린 양) — 는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신에게 건네온 가장 오래된 간청들이다. 이 단순한 말들이 소년의 목소리와 전자음향이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울릴 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경계가 녹아내린다.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Uterus Hodie Virginis Floruit'(오늘 동정녀의 태중에서 꽃이 피었다)는 탄생의 신비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음반 전체에 원형(圓形)의 구조를 부여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기도처럼, 음악은 끝나지 않고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이 음반이 말하려 한 것
이 음반의 핵심 질문은 간결하다. 오래된 아름다움은 낡는가?
페리의 대답은 분명하다. 낡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언어가 필요할 뿐이다. 그는 플레인송의 선율 구조와 가사의 서사를 단 한 음절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대의 귀가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음향의 문을 만들었다. 전자음향은 장식이 아니라 초대장이다. "이 소리는 너와 무관한 먼 과거의 것이 아니다"라는 속삭임.
이 음반은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플레인송과 합창 음악의 오랜 애호가에게는 새로운 청취 경험을, 앰비언트 음악 팬에게는 영적 깊이를, 클래식의 문외한에게는 가장 낮은 문턱으로 열린 입구를 제공한다. 신앙인에게는 경건한 묵상의 공간을, 무신론자에게는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노래해왔는가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을 건넨다.
표지의 날개 — 추락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음반의 커버 이미지는 단번에 시선을 붙든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종이처럼 가벼운 추상적 새 한 마리가 회색빛 안개 속에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어떤 새도 아니다. 새의 '관념'에 더 가깝다. 형태가 있으되 무게가 없고, 날되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존재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 보았던 신성한 지혜의 형상을 시각 언어로 번역한 것처럼 보인다.
세 개의 날개. 하늘을 향하는 것, 땅에 닿는 것, 어디에나 있는 것. 과거(14세기의 플레인송)와 현재(21세기의 전자음향)와 초월(목소리가 닿는 어딘가)이 한 장의 음악 안에 공존한다. 그 공존이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 이 음반이 이룬 가장 조용하고 가장 위대한 성취다.
천 년 동안 인간은 같은 말을 노래해왔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거룩하시도다. 우리에게 아이가 태어났도다. 시대는 바뀌고 악기는 변했지만, 그 말들이 담은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이 음반은 그 사실을 증명하는 65분 34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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