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로코코의 유희(Flirt im Rokoko), 에디트 마티스와 베노 쿠셰가 펼치는 18세기 독일 세속가곡의 향연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4-24 04:22:17

Flirt im Rokoko(로코코의 유희) 고요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음반이란 때로 타임캡슐이다. 1961년 12월, 독일 귀터스로의 스튜디오에서 포착된 이 소리들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2005년 96kHz/24비트의 정밀한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Deutsche Harmonia Mundi가 남기고, Sony BMG가 복원한 이 음반 'Flirt im Rokoko(로코코의 유희)', 하지만 이마저도 폐기된 채, 이제는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다.

이 음반은 단순한 복각물이 아니다. 그것은 18세기 유럽이 스스로에게 허락했던 가장 솔직한 고백, 즉 "우리는 웃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는 선언의 음향적 기록이다.

수록된 19곡은 대부분 짧고 기지(機智)넘치는 소품들로, 총 재생시간이 38분 46초에 불과하다. 어떤 곡은 48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음악적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헨델이나 바흐의 웅장한 서사가 주류를 이루던 바로크 음악사에서, 이처럼 세속적이고 해학적인 독일 가곡들을 한데 모아 조명한 기획 자체가 이미 학문적·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이 음반은 '고상한 바로크'라는 통념 뒤에 숨어 있던 유쾌하고 인간적인 18세기의 민낯을 드러낸다.

18세기로 회귀한 솔로이스트와 연주자

이 음반의 핵심은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Edith Mathis)와 베이스바리톤 베노 쿠셰(Benno Kusche)의 대화다.

에디트 마티스는 스위스 태생의 소프라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과 협연하며 20세기 후반 독일권 성악계를 대표했던 인물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날렵하며, 과도한 비브라토 없이 텍스트의 뉘앙스를 정밀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음반에서 마티스는 로코코 특유의 경쾌함과 약간의 도발적 뉘앙스를 절제된 우아함으로 소화해내며, 노래가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베노 쿠셰는 뮌헨 국립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일의 베이스바리톤으로, 해학과 풍자에 탁월한 역량을 지닌 성악가였다. 그의 낮고 따뜻한 음색은 남성의 허영과 연애 실패를 풍자하는 곡들에서 특히 빛을 발하며, 마티스의 소프라노와 만났을 때 두 성부는 18세기 살롱의 남녀 문답을 무대 위에 재현하듯 생동감 있게 맞부딪힌다.

하프시코드 연주를 맡은 프리츠 노이마이어(Fritz Neumeyer)는 당시 독일 고음악 부흥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과거 악기 복원과 연주 실천에 깊이 관여했던 학자형 연주자였다. 그의 반주는 결코 배경에 머물지 않고, 마치 세 번째 대화 상대처럼 곡 사이사이를 풍요롭게 채운다. 첼로의 라인홀트 요하네스 부흘(Reinhold Johannes Buhl)은 통주저음(basso continuo)의 근간을 묵직하게 지탱하며 전체 음악의 중심을 잡는다.

'세속의 정직함'에 응답했던 작곡가들

이 음반에 등장하는 작곡가들은 대부분 바흐나 헨델의 그늘에 가려 역사 교과서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이들 각각은 18세기 독일 음악의 다양성과 풍요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은 이 음반에서 가장 많은 곡을 수록한 작곡가다. 생전에 바흐보다 훨씬 유명했던 텔레만은 다작과 유연한 양식 적응력으로 유명했으며,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양식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의 세속 가곡들은 도시 시민계층의 취향을 정확히 겨냥한 오락 음악의 정수였다.

요한 필립 크리거(Johann Philipp Krieger, 1649–1725)는 바이로이트와 할레에서 활동한 작곡가로, 독일 가곡 양식의 정착에 기여했으며 이탈리아 성악 기법을 독일 텍스트에 효과적으로 융합시켰다.

카를 하인리히 그라운(Karl Heinrich Graun, 1703–1759)은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정 악장으로,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를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지로 만든 인물이다. 그의 곡이 이처럼 가벼운 세속 소품 모음집에 포함된 것은, 웅장한 궁정 음악 뒤편에 존재했던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요한 발렌틴 라트게버(Johann Valentin Rathgeber, 1682–1750)는 프란체스코회 수사이자 작곡가로, 'Ohren-vergnügendes und Gemüth-ergötzendes Tafelconfect'(1733–46)이라는 제목의 음악 선집으로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성직자가 이런 세속적이고 유쾌한 음악을 썼다는 점은 그 자체로 시대의 역설을 보여준다.

스페론테스(Sperontes, 본명 Johann Sigismund Scholze, 1705–1750)는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한 아마추어 음악 편집자로, 'Singende Muse an der Pleiße'(1736)라는 가요집을 편찬하여 독일 대중가곡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의 곡들은 당시 유행 기악 선율에 독일어 가사를 붙인 것이 많아, 당대 ‘팝 음악’에 해당한다.

빌럼 더 페스흐(Willem de Fesch, 1687–1757)는 네덜란드 태생으로 런던에서 주로 활동한 작곡가로, 이 음반에서 유일한 비독일권 인물이다. 그의 수록곡 'Tu fai la superbetta'는 이탈리아어 텍스트를 사용하는 점에서도 음반 안에서 이채로운 존재감을 발휘한다.

장바티스트 드 부세(Jean-Baptiste de Bousset, 1662–1725)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이 음반에서 프랑스적 감수성을 더한다. 특히 루소는 철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Le Devin du village)'를 작곡하고 음악 이론을 집필한 진지한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의 'Echo'가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민중의 솔직함을 대변한 노래

이 음반의 제목 'Flirt im Rokoko'가 암시하듯, 수록곡들은 대부분 남녀 사이의 연애, 유혹, 속임수, 그리고 그에 따른 해학적 결말을 소재로 한다. 이러한 주제는 18세기 유럽 살롱 문화와 직결된다.

시작을 알리는 'Die Kunst des Küssens(키스의 기술)'은 안드레아스 하머슈미트의 작품으로, 17세기 중반부터 이 장르의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하머슈미트는 본래 종교음악 작곡가로 명성이 높았으나, 그의 세속 가곡들은 당시 독일 시민 계층의 일상적 향락과 감성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크리거의 'Im Dunkeln ist gut munkeln(어둠 속에서 속닥이기 좋다)'은 제목부터가 18세기식 이중 언어 유희의 전형이다. 'munkeln(속삭이다)'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대에 성적 뉘앙스를 내포했으며, 이런 언어 유희는 검열을 피하면서도 청중과 교감하는 바로크 시대 세속 예술의 전략이었다.

텔레만의 'Geld(돈)'는 불과 48초짜리 소품이지만, ’사랑보다 돈이 낫다‘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 당대 물질 만능주의적 세태를 풍자한다. 이 짧은 곡은 오히려 그 간결함 때문에 18세기 도시인의 냉소적 세계관을 더욱 날카롭게 전달한다.

스페론테스의 'Blaustrumpflied'는 '파란 스타킹'을 노래하는데, 이는 당시 지식인 여성을 비꼬는 영국발 'Bluestocking' 개념이 독일까지 전파된 흔적으로, 음악이 사회 풍자의 매체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루소의 'Echo'는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그리스 신화의 에코와 나르키소스 이야기를 환기시킨다. 계몽주의 철학자가 신화적 소재를 통해 인간의 자기도취와 그로 인한 소통 불가를 암시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 앞선 18곡의 유희적 세계에 철학적 여운을 남긴다.

음반의 정신

이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독일어 'heiter-frivol', 즉 '명랑하고 경박한'이라는 두 개의 형용사에 집약된다. 이 노래들은 삶의 진지한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사랑의 우스꽝스러움, 욕망의 솔직함, 인간 관계의 허점을 웃음으로 직면하도록 초대한다.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세속 가곡은 종교개혁 이후 시민 계층이 성장하면서 교회와 궁정 밖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탄생했다. 이 곡들은 학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었고, 가정에서 하프시코드 반주에 맞춰 함께 부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즉, 음악의 민주화가 바로 이 장르 안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던 셈이다.

남녀의 기 싸움, 돈과 사랑 사이의 갈등, 외모와 지성 사이의 아이러니 — 이 모든 주제는 시대를 초월한다. 이 음반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신선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와토의 그림과 음악

이 음반의 전면 커버는 프랑스 화가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 1684–1721)의 그림이다.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그녀에게 구애하는 듯한 남성의 모습이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붓터치로 묘사된 이 장면은, 와토가 창시한 'fête galante(우아한 축제)' 장르의 전형적 구도다.

와토의 그림과 이 음반의 음악 사이에는 단순한 시각적 유사성을 넘어 깊은 정신적 공명이 존재한다. 와토의 캔버스 속 인물들은 언제나 숲이나 정원이라는 이상화된 공간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연애 유희에 몰두한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고, 일상이 아니라 향연이다. 이 음반의 노래들 역시 같은 세계를 음향으로 구현한다.

와토가 활동한 시기(1700년대 초)는 이 음반에 수록된 텔레만, 크리거, 라트게버 등이 가장 활발하게 작품을 쓰던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파리에서 와토가 '시테르 섬으로의 순례(Pèlerinage à l'île de Cythère)'를 그릴 무렵, 함부르크에서 텔레만은 이와 같은 노래들로 시민들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림과 음악은 국경을 달리하면서도 같은 시대 정신, 즉 이성(理性)의 시대 안에서 감성과 유희를 향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표현하고 있었다.

와토 특유의 우수 어린 분위기 — 잔치가 끝나갈 무렵의 달콤씁쓸한 정서 — 는 이 음반의 마지막 곡 루소의 'Echo'가 남기는 여운과도 닮아있다. 유희는 끝나고, 메아리만이 남는다. 그 메아리가 아름다웠기에, 우리는 여전히 이 음반에 귀를 기울인다.

"로코코는 무질서한 시대의 우아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고집했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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