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이탈리아 출신 미국 모더니즘의 선구자 조셉 스텔라(1877~1946)의 1919년 대작 'Tree of My Life(내 삶의 나무)'가 100여 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는 9월, 영국의 권위 있는 예술 전문 출판사 Thames and Hudson이 펴내는 예술서 'Ark(방주)'의 주요 수록 작품으로 선정되면서다.
퓨처리즘과 신비주의,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숭배가 하나의 화면에서 교차하는 이 거대한 캔버스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한 예술가의 삶 전체가 응축된 시적 우주이자, 자연과 문명, 영성과 물질 사이에서 평생을 방황하고 또 찬미했던 한 인간의 고백이다.
이방인의 붓이 미국 모더니즘을 깨우다
1877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인근의 산촌 무로 루카노에서 태어난 주세페 미켈레 스텔라는 1896년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그의 진짜 운명은 병원이 아닌 화실에 있었다. Art Students League에서 수학한 그는 이름도 미국식인 '조셉 스텔라'로 바꾸며 스스로를 예술가로 단련시켰다.
결정적 전환은 1911년 파리에서 찾아왔다. 이탈리아 미래주의(Futurismo)의 첫 전시와 조우한 스텔라는 예술적 계시를 얻었고, 귀국 후 1913년 역사적인 아모리 쇼(Armory Show)에 출품하며 뉴욕 화단의 중심 인물로 단숨에 부상했다.
미술사학자 샘 헌터는 당시 아모리 쇼에서 가장 강렬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 중 하나로 스텔라의 '코니 아일랜드의 빛의 전투'를 꼽았다. 스텔라는 마르셀 뒤샹, 알베르 글레이즈 등과 깊은 교유를 쌓으며 미국 프리시전이즘(Precisionism)의 핵심 작가로도 자리매김했다.
밀림처럼 가득 찬 캔버스, 생명이 박동하다
1919년 작 'Tree of My Life'는 가로 193cm, 세로 213cm에 달하는 대형 유화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이 화면은 보는 이를 그림 '앞'이 아닌 그림 '안'으로 끌어들인다. 열대 식물과 꽃, 새, 나비, 덩굴이 층층이 뒤엉킨 밀림처럼 캔버스 전면을 가득 채우며, 코발트블루의 하늘과 진홍빛 꽃잎들이 경쟁하듯 공존한다. 화면 아래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꽃 한 송이는 이 정글의 심장처럼 박동하고, 수직의 나무 기둥은 소용돌이 한가운데 고요한 축으로 굳건히 서 있다.
비평가들은 이 화풍을 "바로크적이고 오페라적"이라 표현한다. 미래주의의 역동적 에너지, 상징주의의 신비로운 분위기, 르네상스 제단화의 종교적 장엄함이 한 화면에 기적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스텔라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빛의 처리와 고딕 성당의 수직적 구조를 이 정글 속에 깊숙이 내재시켰다.
자연, 신성, 그리고 영혼의 자서전
이 작품이 탄생한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문명과 기계, '진보'의 이름 아래 자행된 참혹함을 목격한 예술가들이 자연과 영성으로 눈을 돌리던 시절이다. 스텔라 역시 그 물결 속에서 자연 안에서 순수함과 신성한 신비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는 생전에 "나의 모든 작업이 꽃을 그리는 밝고 유쾌한 그림으로 시작하고 끝나기를 바란다"고 남겼다. 삶과 예술을 하나로 통합하려 한 가장 깊은 내면의 고백이었다.
이 작품이 수록되는 예술서 'Ark'는 로버트 맥팔레인이 서문을 쓰고 세라 페리, 헬렌 스케일스 등이 에세이를 기고하는, 자연 세계와 생명의 다양성을 핵심 주제로 삼는 책이다. 스텔라의 그림이 선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매가가 증명한 100년의 가치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시장은 때로 진실을 말한다. 'Tree of My Life'는 1986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220만 달러에 낙찰된 데 이어, 2018년 11월 다시 경매장에 나타나 약 593만 7,500달러(당시 한화 약 80억 원)에 낙찰되며 스텔라 작품의 공개 경매 세계 최고가를 경신했다. 32년 사이에 세 배 가까이 뛴 낙찰가는 그의 예술적 위상이 얼마나 공고해졌는지를 숫자로 보여준다.
현재 스텔라의 작품은 예일대학교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 미국의 주요 기관에 폭넓게 소장돼 있다. 2022~2023년 하이 뮤지엄 오브 아트와 브랜디와인 리버 뮤지엄이 공동 기획한 대형 회고전 'Joseph Stella: Visionary Nature'는 기후 위기와 생태적 각성이 화두가 된 오늘, 100년 전 그가 화폭에 새겨둔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시선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증언했다.
'Tree of My Life'는 아름다운 그림이기 이전에,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삶 앞에서 경이로워했던 한 예술가의 온 생애가 응축된 결정(結晶)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오래된 물음들 앞에서, 이 그림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온몸으로 대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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