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왔다.
'초록물고기'부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까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보편적 인간성을 조명해온 그는, 이번 작품으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동시에 받으며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에 베니스에서 거둔 한국 영화 최초의 성과를 써냈다. 2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가능한 사랑' 기자간담회에서 그를 만났다.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창동 감독은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가능한 사랑'이라는 영화는 사람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게 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랑, 또는 해야만 하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여 년을 되돌아온 이야기
이 작품은 감독에게 오래 묵힌 프로젝트였다. "저는 사실 영화를 쉽게 찍지 못하는 감독입니다. 이 영화와 이 이야기가 나한테 의미가 있느냐, 이 영화가 관객한테 의미가 있나, 그리고 내가 하려고 하는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나, 이 세 가지를 납득하지 못하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다 쓰고도 결국 접고는 했습니다."
그 시작은 십여 년 전 한 대기업의 대규모 집단 해고와 총파업, 그리고 공권력의 강제 진압 사건이었다. "저는 그때 이걸 영화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가 이걸 다시 극영화로 한다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심지어는 극적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게 윤리적인 건지라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에 결국은 덮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노동 문제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본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이야기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영화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결합이 되면서 이게 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답은 배우가 갖고 있다"…연출론이 된 'OK'
이창동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좀처럼 'OK'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번 간담회에서 그 이유를 직접 밝혔다. "저는 제가 답을 갖고 있고 배우한테 그 답을 요구해서, 배우가 제가 생각하는 어떤 목표에 도달했을 때 오케이다, 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제 나름대로의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답은 제가 갖고 있는 게 아니고 배우가 갖고 있고,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태도가 바뀐 것은 '시'를 찍을 무렵이었다. 연로했던 배우 윤정희가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OK라는 소리라도 좀 이제 시원하게 해줘서 도와주어야 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가능한 사랑' 현장에 대해서는 "이번에는 굉장히 편했고요. 네 분(설경구, 전도연, 조인성, 조여정)이 서로가 서로에게 굉장히 좋은 기운을 주고 서로 잘하려고 팀워크를 잘 만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제가 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라며 웃었다.
관음과 연대 사이, 카메라의 윤리를 묻다
영화 속 극 안의 카메라(예지의 다큐멘터리)와 극 밖의 카메라(영화 자체)가 교차하는 구조는 감독 자신의 윤리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파업 현장이나 심리치료 장면을 길게 할애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 영화가 그냥 다큐멘터리를 찍는 그 사람의 시선만 보여주는 게 아니고, 그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하는 예지가 담으려고 하는 내용 자체도 영화에 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전달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창작자의 윤리를 묻는 질문에는 한층 더 깊은 성찰이 이어졌다. "제가 처음에 10여 년 전에 대량 해고 그리고 파업 강제 진압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충격이었고, 이걸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준비를 했다가 접었는데요. 그 접었던 이유가 제가 과연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내가 그들에 얼마나 가까운가, 거기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접었거든요."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라는 인물을 통해 비로소 그 질문을 함께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타인의 삶을 그리는 저 같은 창작자에게는 언제나 본질적인 고민이,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고요. 지금도 그 답을 쉽게 찾지 못한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우(조인성 분)와 예지(조여정 분)가 하층민의 고통을 자신들의 성취로 전유하는 인물로 보이면서도 순간의 연민을 보이는 것이, 착취를 넘어선 사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예지는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드는 저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고요.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이야기 대부분 고통이 담겨져 있죠. 그것이 영화의 재료로 소비하고 마느냐,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을 함께 이야기하고 전달하려고 하느냐 하는 그 경계를 찾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어 자신을 예지에 빗대기도 했다. "영화 감독으로서 어떻게 보면 저도 저분(자본)과 결혼하고 사는 사이인지도 모르죠. 남편의 절대적인 자본의 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저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도 탐욕을 탐하거나 자기 것으로 착취하거나 그러지 않고, 그 속에서 정말로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칼로그에서 시작된 상징들…아이와 호루라기
이 작품은 원래 폴란드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 연작 프로젝트의 일부로 기획이 시작됐다고 한다. 감독은 데칼로그 시리즈의 원작 관계자(각본가)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그 데칼로그 시리즈에 10개의 에피소드에 항상 한 번씩 나오는 그 관찰자 같은 시점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데, 그런 존재를 영화 속에 넣어줬으면 좋겠다." 영화 속에서 이 역할을 맡은 것이 아이 '철'이다.
"철의 시점은 그냥 보통 아이의 시점이라기보다는 약간 초월적인 시선,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약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이로 설정했다." 극 중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호루라기' 소재에 대해서는 다층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직접적으로는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아주 피상적인 단순한 의미일 수도 있겠죠. 미옥 부부(설경구와 전도연 분)가 상우의 삶 자체를 선망하고 질투하는 탐하는 마음도 있을 수 있고, 예지가 고통받는 해고 노동자의 삶 자체를 자신의 영화에 재료로 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한국 토착 자본의 뿌리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언급하면서도, 그는 또 다른 가능성을 덧붙였다. "철이가 호루라기를 불 때 (별장 관리인) 민식이가 물을 뿌리다가 그 소리를 듣는 모습은, 뭔가 그 호루라기는 그들이 서로 소통하는 또는 연대하는 그런 장치일 수도 있겠다. 이건 관객한테 제가 꼭 전달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상상했습니다."
"우리가 넘어설 수 있는 건 결국 자유"
연출 의도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관객들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삶, 노동이든 영화 작업이든 또는 삶의 여러 가지 모습과 감정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자유'입니다. 삶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든지 인간이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자유'에 대한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자본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박탈하더라도, 우리 개개인은 자신만의 자유로움으로 그걸 이겨 나갈 수도 있다, 또는 자기만의 자유로움은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베니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그러나 상은 어떤 결과물일 뿐입니다. 상보다는 이 영화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서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가 베니스 영화제 그 자리였기 때문에, 그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하는 것이 저한테는 훨씬 더 중요했고요. 다행히 이 영화가 그렇게 쉽고, 또 아주 자극적인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이 영화에 던지는 질문들을,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잘 느껴 주시고 거기에 대해서 반응해 주시는 게 눈의 표정이나 저에게 대하는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게 무엇보다 다행이었고 기뻤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한 오정미 작가와의 협업에 대해서도 애정을 드러냈다. "제가 오랫동안 저 자신의 세계, 작품 방식에 몰입되어 있었는데, 그러면서 제 자신이 굳어지는 걸 굉장히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다행히 오정미 작가가, 제가 만나본 여러 사람들 중에도 드물게 저를 두드린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제 시각도 좀 열린 시각을 가질 수 있겠구나 자극을 줬고요. 저한테는 제 스스로 변화하고 싶었던, 꽤 중요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가 이제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저는 기대가 되면서도 또 상당히 설레기도 하는데, 저는 영화가 만들어져서 결국 완성시키는 것은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객들 속에서 이 영화가 좀 더 힘 있고 의미 있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그레이(GRAY), 방가방가! [포토]](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21/p1065571922955900_854_h2.jpg)
![그레이(GRAY), 멋져! [포토]](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21/p1065571872940358_674_h2.jpg)
![그레이(GRAY), 청량해! [포토]](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21/p1065571824140902_470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