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500년 전 한 쌍의 연인이 주고받았던 사랑의 약속이 영국 워릭셔 들판 흙 속에서 되살아났다. 주인공은 영국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군주 헨리 8세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이자 24년간 곁을 지킨 아라곤의 캐서린이다.
대영박물관이 17일 공개한 '튜더 하트'는 단순한 금 펜던트가 아니다. 젊은 왕과 스페인 공주의 뜨거운 사랑, 정치적 동맹, 그리고 결국 비극으로 끝난 로맨스가 24캐럿 금에 새겨진 역사의 증거다.
펜던트 중앙에는 헨리를 뜻하는 'H'와 캐서린을 의미하는 'K'가 롬바르드 문자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그 아래 펼쳐진 현수막에는 고대 프랑스어로 'TOUSIORS(투시오르)', 즉 '항상, 영원히'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이것은 헨리가 캐서린에게 보낸 러브레터입니다." 대영박물관의 르네상스 유럽 큐레이터 레이첼 킹 박사는 설명한다.
"1509년 18세의 젊은 왕으로 즉위한 헨리는 6년 연상의 캐서린과 결혼하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습니다. 이 펜던트는 그 약속이 진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물증입니다."
펜던트 양쪽에는 튜더 왕조를 상징하는 붉은 장미와 캐서린의 가문을 나타내는 석류가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두 왕가의 결합, 두 사람의 사랑이 하나로 엮인 상징이다.
역사는 헨리 8세를 6명의 아내를 둔 '바람둥이 왕'으로 기억하지만, 정작 그가 가장 오래 함께한 여성은 첫 번째 왕비 캐서린이었다. 1509년부터 1533년까지 24년간 이어진 두 사람의 결혼은 헨리의 여섯 번 결혼 중 가장 길었다.
"캐서린은 단순한 왕비가 아니었습니다." 대영박물관 관장 니콜라스 컬리넌 박사는 강조한다. "그녀는 헨리의 정치적 동반자였고, 왕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 섭정을 맡아 나라를 통치한 유능한 통치자였습니다. 1513년 헨리가 프랑스 원정을 떠났을 때, 캐서린은 스코틀랜드의 침공을 막아내기까지 했죠."
박물관 측 연구에 따르면 이 펜던트는 1518년 10월 열린 성대한 토너먼트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헨리는 궁정의 화려함을 과시하기 위해 런던 금세공인들에게 '이벤트용' 보석을 자주 주문했다. 이 하트 펜던트 역시 그런 행사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영원을 약속한 사랑에도 종말은 찾아왔다. 남자 후계자를 얻지 못한 헨리는 1533년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앤 불린과 재혼했다. 로마 교황청이 이혼을 불허하자, 헨리는 아예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창설하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헨리와 캐서린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킹 박사는 안타까워한다. "두 사람의 결별 이후 대부분의 증거물이 의도적으로 파괴되거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펜던트는 더욱 귀중합니다. 이것은 헨리 8세의 '악명' 이전,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절의 증거니까요."
배우 데미안 루이스는 캠페인 지지 메시지에서 "이 하트는 캐서린과 그녀의 딸 메리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역사에서 종종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성들의 목소리입니다"라고 말했다.
2019년, 한 금속탐지기 사용자가 워릭셔 들판에서 이 펜던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자신이 500년 된 왕실 로맨스의 증인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견자는 1996년 보물법에 따라 즉시 이를 신고했고,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 튜더 시대 왕실 유물로 확인됐다.
현재 대영박물관은 이 펜던트를 개인 수집가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350만 파운드(약 60억원) 모금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줄리아 라우징 트러스트가 50만 파운드를 기부하며 시작에 힘을 보탰고, 2026년 4월까지 목표액을 달성해야 한다. 기간 동안 모금액을 확보하지 않으면 영국 유물법에 따라 경매에 올려진다.
"이것은 단순히 옛 보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컬리넌 관장은 역설한다.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 그들이 나눈 약속,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튜더 하트'는 2026년 4월까지 대영박물관 2호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500년 전 "영원히"라는 약속이 새겨진 이 금빛 하트가 과연 영국 국민의 품으로 영원히 돌아올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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