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혁명의 불꽃과 광기의 심연 — 조르주 클레랭이 그린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6-29 17:27:56

조르주 클레랭의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열기가 파리 거리를 달구던 그 시절, 검붉은 승마복을 걸치고 군중 앞에 선 한 여성이 있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바스티유의 함성 속으로 뛰어들었던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Théroigne de Méricourt). 그러나 혁명이 그녀에게 돌려준 것은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채찍질과 광기, 그리고 오랜 감금이었다. 시대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살다간 이 여성의 초상을 114년 뒤, 프랑스 화단의 거장 조르주 줄 빅토르 클레랭(Georges Jules Victor Clairin, 1843~1919)이 화폭 위에 불러냈다. 1903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클레랭 예술의 정수를 담은 걸작이며, 혁명과 여성, 광기와 숭고가 교차하는 19세기 말 유럽 정신의 압축판이다.

살롱의 총아에서 시대의 증언자로

조르주 클레랭은 1843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관학 미술의 산실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앙리 레만과 에밀 시뇰의 지도 아래 탄탄한 아카데미즘 훈련을 쌓았고, 졸업 후에는 파리 살롱을 무대로 본격적인 화가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의 이름이 파리 미술계에 처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1871년의 모로코 여행이었다. 동료 화가 앙리 레뇨와 함께 탕헤르의 이국적 풍물 속으로 뛰어든 클레랭은 북아프리카의 빛과 색채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이후 그의 화면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뚜렷한 문양이 새겨졌다. 이슬람 세계의 시장과 궁전, 베두인 전사들과 무희들을 담은 그의 그림들은 프랑스 살롱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클레랭의 이름을 진정으로 불멸에 가깝게 만든 것은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와의 인연이었다. 두 사람은 예술적 동지이자 영혼의 벗으로, 클레랭은 베르나르가 무대에서 맡았던 수많은 역할들을 초상화 연작으로 남겼다. '하멸레트의 오필리아', '페드라', '클레오파트라' 등 베르나르의 무대 위 변신을 기록한 그의 붓은 단순한 초상화가의 그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무대 예술과 시각 문화가 맞닿는 접점을 포착한 역사가의 그것이었다. 클레랭은 또한 아르누보 공예의 거장 르네 라리크와도 절친한 사이로, 벨 에포크 파리의 보헤미안적 예술 세계 한복판에 존재했다.

미술사적으로 클레랭의 위치는 아카데미즘과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상징주의적 서사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부게로나 카바넬처럼 프랑스 관학 미술의 정점에서 군림한 화가들에 비하면 한 단계 아래로 평가되는 것이 통례이지만, 그는 파리 오페라 극장을 비롯한 주요 공공건물의 천장화와 장식 벽화를 다수 제작한 당대 최정상급 장식화가였으며, 양식적 유연성과 감각적 필력에서는 동세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화가였다. 1919년 브르타뉴의 해안 마을 클로아르-카르노에에서 7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살롱의 총아이자 파리 미술계의 핵심 인물로 자리를 지켰다.

혁명의 아마존, 캔버스에 서다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는 수채와 과슈(gouache)를 혼합하여 종이 위에 제작된 작품이다. 유화의 육중한 물성 대신 수채의 투명한 번짐과 과슈의 불투명한 밀도를 교차 운용한 이 기법은, 화면 전체를 현실과 환영 사이 어딘가에 떠 있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을 그리면서도 그녀를 이미 신화의 영역으로 밀어 넣으려는 클레랭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화면의 중심에는 테루아뉴가 선다. 흰 블라우스와 짙은 망토를 걸친 그녀는 한 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시선은 정면을 외면한 채 허공 어딘가를 응시한다. 그 눈빛은 황홀인지 광기인지, 예언인지 망상인지 단정 짓기 어렵다. 머리카락은 폭풍에 휩쓸린 듯 거칠게 헝클어져 있고, 두 팔 주변에는 날카로운 깃털과 뱀 같은 형상들이 엉켜 있어 그녀가 이미 역사적 실존 인물의 경계를 넘어 신화적 존재로 변환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등 뒤에는 또 다른 인물이 프랑스 삼색기를 높이 치켜들고 서 있으며, 화면 상단에는 그 깃발이 폭풍 속에서 격렬하게 펄럭인다.

화면의 좌우와 하단부를 채우는 것은 군중이다. 검은 장포로 전신을 감싼 이들은 개별적인 얼굴을 지우고 그림자처럼 서 있다. 두 팔을 들어 올리거나 고개를 뒤로 젖힌 그들의 자세는 테루아뉴에 대한 환호와 애도,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담고 있다. 군중의 묘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클레랭이 개별 인물 하나하나의 고통과 절규를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했는지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색채는 전체적으로 청회색과 흑색, 짙은 올리브 그린이 지배한다. 이 어두운 색조의 바다 속에서 삼색기의 청·백·적만이 유일한 색점으로 빛을 발하며, 테루아뉴의 흰 블라우스가 화면의 광원처럼 기능한다. 배경은 폭풍우 전야처럼 소용돌이치고, 오른쪽 상단에는 화염과 연기가 뒤엉킨 형상이 혁명의 폭력성을 암시한다. 이 색채 전략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다. 삼색기에만 집중된 색채는 혁명의 이상이 아직 살아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 깃발 아래서 정작 인간들의 얼굴은 어둠 속으로 지워져가고 있음을 역설한다.

조르주 클레랭의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부분)

아마존의 영광과 비극 —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라는 인물

클레랭이 이 작품을 완성한 1903년은, 전해인 1902년 사라 베르나르가 폴 에르비외 작의 동명 연극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를 파리에서 공연하며 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클레랭과 베르나르의 각별한 우정을 고려할 때, 이 그림이 그 연극의 정서적 여운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 본명 안 조제프 테르와뉴(Anne-Josèphe Terwagne, 1762~1817)는 현재의 벨기에 룩셈부르크주 마르쿠르에서 태어난 가수 출신 혁명가다. 1789년 바스티유 함락의 열기 속에 파리로 뛰어든 그녀는 혁명 클럽의 공동창립자로 활동하며 탁월한 웅변 능력으로 군중을 사로잡았고, 붉은 승마복과 기병도를 걸치고 민중 앞에 선 '아마존'의 이미지로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혁명적 열기 속에서 그녀는 여성의 무장권과 참정권을 당당히 주장했다. 그러나 혁명은 그녀의 이상을 배신했다. 남성 혁명가들은 공적 영역을 독점하며 여성을 사적 영역으로 밀어냈고, 왕당파 언론은 그녀를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로 끊임없이 조롱하고 중상했다.

1793년 5월, 국민의회 문 앞에서 자코뱅파 여성들에게 습격당한 그녀는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입었고, 이듬해 정신이상자로 선고되어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다. 1807년부터 생을 마감하는 1817년까지 10년을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보내며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고 전해진다. 혁명의 가장 열렬한 신봉자가 혁명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배신당한 이상, 신화가 된 광기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혁명의 승리를 찬양하는 대신 혁명의 이면과 그 희생자를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데 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이 혁명의 역동성과 숭고함을 기념비적으로 그린 것이라면, 클레랭의 이 작품은 그 이면에 놓인 배신과 소외, 그리고 광기를 직시한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았을 때, 우리는 프랑스혁명이라는 사건이 시각 예술 속에서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기억되어왔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클레랭은 테루아뉴를 영웅으로도 희생자로도 단정 짓지 않는다. 화면 속 그녀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으며, 그 몸짓에는 완전히 꺾이지 않은 의지의 빛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어둠과 그로테스크한 군중의 형상은 그 의지가 결국 삼켜질 운명임을 예고한다. 이 양가성이야말로 이 그림을 단순한 역사화의 범주 너머로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다.

또한 이 작품은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가 여성의 혁명적 역할을 어떻게 신화화하고, 동시에 어떻게 병리화했는가를 증언하는 중요한 문화사적 문서이기도 하다. 여성 혁명가를 광기의 아이콘으로 기억하려 했던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해, 클레랭의 그림은 비록 의식적이지 않을지라도 묵시적인 반문을 던진다. 테루아뉴의 눈빛 속에 담긴 것이 광기인지, 아니면 시대를 앞서 간 자의 고독한 각성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폭풍 속에서 홀로 하늘을 보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처음에는 침묵이 온다. 청회색의 심연을 배경으로 테루아뉴의 흰 옷자락만이 혼자 빛을 발한다. 군중이 있다. 수십 명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철저히 혼자다. 그들의 환호가 그녀에게 닿지 않는 듯, 그녀의 시선은 그들을 향하지 않는다.

들라크루아의 마리안느가 민중을 이끌며 전진하는 여성이라면, 클레랭의 테루아뉴는 민중 한가운데서 홀로 하늘을 응시하는 여성이다. 그 차이는 작지 않다. 전자가 혁명의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는 이미지라면, 후자는 혁명의 에너지가 한 인간을 내부에서부터 소진시키는 순간을 포착한 이미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팔을 감싸는 기묘한 형상들, 소용돌이치는 배경 — 이 모든 요소가 한 인간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잃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것은 숭고하면서도 처절하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 떠오른다. 비극적 결말을 향해 내달리면서도 끝내 장엄함을 버리지 않는 그 음악처럼, 클레랭의 붓은 파멸의 문턱에서도 인간 의지의 마지막 불꽃을 놓치지 않는다.

조르주 클레랭의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부분)

서사화의 계보를 잇다

클레랭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아카데미즘의 충실한 상속자였지만, 동시에 그 경계를 은밀하게 밀어낸 화가였다. 그의 오리엔탈리즘 작품들은 제롬이나 들라크루아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당시 신흥 조류였던 상징주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흡수했다.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에서 그 혼합은 가장 성숙한 형태로 구현된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상징주의적 환영성을 덧입힌 이 그림은, 서사화와 상징화의 경계에서 클레랭이 이룬 독자적 성취를 보여준다.

사라 베르나르 초상화 연작은 근대 유럽 무대 예술과 시각 문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미술사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사례로 자리 잡았다. 그는 무대 위 배우의 순간적인 표정과 의상, 몸짓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공연 예술의 기록과 시각 예술의 창작 사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파리 오페라 극장 등 공공건물의 천장화와 장식 벽화 역시 프랑스 제3공화정 시대의 공공 예술 문화를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참조점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클레랭이 역사적 여성 인물들을 상징주의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화폭에 소환한 작업들은, 19세기 말 여성 표상과 혁명의 기억이 시각 예술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재구성되었는가를 탐구하는 젠더 미술사 연구의 귀중한 텍스트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클레랭은 단순한 살롱 화가의 범주를 넘어, 시대의 내면을 시각화한 증언자로 재평가되어야 할 화가다.

경매 시장의 클레랭 

클레랭의 작품은 현재 전 세계 주요 경매 시장에서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크리스티(Christie's), 본햄스(Bonhams), 아르쿠리알(Artcurial), 소더비(Sotheby's) 등 세계 유수의 경매사들이 그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취급하며, 드루오(Drouot) 등 파리의 중견 경매사들에서도 빈번하게 거래된다.

가격대는 작품의 매체와 크기, 주제의 역사적 중요도에 따라 폭넓게 분포한다. 소형 종이 작업이나 스케치는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반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을 다룬 대형 유화나 사라 베르나르 관련 초상화들은 5만 달러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한다. 2025년 영국 리용&턴불 경매에서는 르네 라리크의 딸 수잔 라리크의 초상화가 약 10만 3,793달러에 낙찰되며 작가의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최근 수년간 시장에 등장한 그의 작품들의 평균 낙찰가는 대략 6,000달러 내외로, 이는 동시대 프랑스 아카데미즘 화가들과 비교해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클레랭은 미술 시장에서 흔히 '세컨드 티어' 아카데미스트로 분류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컬렉터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19세기 프랑스 회화의 정수를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특히 '테루아뉴 드 메리쿠르'처럼 역사적 서사성과 상징주의적 표현이 결합된 작품들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회화에 대한 세계 컬렉터들의 재조명 기류 속에서 장기적인 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혁명의 시대가 낳은 가장 비극적인 여성을 화폭에 담은 이 작품은, 그 역사적·예술적 무게만으로도 이미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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