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하세 '피라모와 티스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선사하는 불멸의 사랑!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0-08 17:49:57

18세기 오페라 세리아의 정점,  모차르트가 감탄한 걸작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현대에 되살리다 피라모와 티스베의 음반 표지. 표지에 사용된 그림은 18세기 프랑스 화가 클로드 고테로의 '피라모와 티스베'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올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반 레이블 하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에서 출시된 요한 아돌프 하세(Johann Adolf Hasse, 1699-1783)의 '피라모와 티스베(Piramo e Tisbe)'는 18세기 오페라 세리아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21세기에 부활시킨 역사적 음반이다.
 
1768년 비엔나에서 초연된 '피라모와 티스베'는 하세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 중 하나로, 당시 12세였던 모차르트가 이 공연을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마르코 콜텔리니(Marco Coltellini, 1724-1777)의 대본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2부로 구성된 '인테르메초 트라지코(Intermezzo tragico)', 즉 비극적 막간극이다.

바빌론을 배경으로 한 피라모와 티스베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된 신화다. 하세는 이 고대 신화를 18세기 오페라 세리아의 형식 속에서 재해석하며, 금지된 사랑과 극단적 열정, 그리고 비상하는 서정성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하세는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오페라 세리아의 규칙을 과감히 깨뜨렸다. 정형화된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교대 구조를 넘어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새로운 음악적 구성을 시도했다. 이러한 혁신성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하세가 생애 말년에 도달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은 하세가 이탈리아에서 익힌 벨칸토 양식과 독일적 음악 전통을 융합한 결과물로, 모차르트가 감탄할 만큼 '경이로운 근대성'을 지니고 있었다.
 
녹음을 이끈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Akademie fur Alte Musik Berlin)는 1982년 창단 이래 바로크와 고전 시대 음악의 원전 연주에서 세계적 명성을 쌓아온 단체다. 콘서트마스터 베른하르트 포르크(Bernhard Forck)의 지휘 아래, 악단은 18세기 연주법과 음향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해석을 들려준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는 특히 독일어권 레퍼토리뿐 아니라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 분야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이번 음반은 그들의 음악적 역량이 절정에 이른 시점에서 탄생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독창자로는 독일 소프라노 아네트 프리치(Anett Fritsch)가 피라모 역을, 이탈리아 소프라노 로베르타 마멜리(Roberta Mameli)가 티스베 역을 맡아 두 주인공의 비극적 사랑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국 테너 제레미 오븐든(Jeremy Ovenden)은 일 파드레(아버지) 역을 맡아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세 성악가 모두 바로크 오페라 분야의 최정상급 아티스트들로, 18세기 벨칸토 창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교와 감정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낸다.
 
작품은 부모의 반대로 인해 비밀리에 만나야 하는 피라모와 티스베의 사랑을 그린다. 두 연인은 담을 사이에 두고 살며, 밤의 어둠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오해와 비극이 겹치며, 결국 두 사람은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한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불멸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다. 

하세는 이 고대 신화에 18세기적 감수성을 불어넣어, 절제된 형식 속에서 폭발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했다. 금지된 사랑의 달콤함과 고통, 오해로 인한 절망, 그리고 죽음 앞에서의 숭고함이 음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음반은 총 연주 시간 1시간 42분으로, 2장의 CD에 나뉘어 수록되었다.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해설서가 포함되어 있어,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음악적 특징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녹음은 2025년 네덜란드에서 진행되었다. 하르모니아 문디의 엄격한 음질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다. 레이블은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가 이 작품을 생생한 색채와 모든 생동감으로 되살렸다"며, "모차르트가 감탄한 경이로운 근대성을 현대 청중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8세기 중반 유럽 오페라계를 지배했던 하세는 생전에는 헨델, 글루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이었으나, 19세기 이후 그의 작품들은 음악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번 음반은 그러한 잊혀진 걸작을 현대에 되살림으로써, 18세기 오페라 세리아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한다. 특히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곡에 영향을 준 하세의 음악 언어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음반의 출시는 단순히 한 작품의 복원을 넘어, 18세기 오페라 전통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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