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부활절의 정적을 깨는 러시아의 목소리 — 하이든 '십자가 위의 최후의 일곱 말씀'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8-04 16:42:51

SOMM이 발매한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일곱 말씀'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의 초상이 표지를 장식한 이 CD는 얼핏 흔한 종교음악 앨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이든 후기 걸작의 가장 드라마틱한 버전이 담겨 있다.

영국의 클래식 레이블인 SOMM 레코딩스가 1995년 발매한 '요제프 하이든: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일곱 말씀'은 지휘자 안토니오 데 알메이다가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 러시아 국립 아카데미 합창단과 함께 완성한 합창판(코랄 버전) 녹음이다.

'희귀한 걸작'을 되살리다

이 작품은 원래 1786~1787년 관현악만으로 작곡된 후, 하이든 스스로 현악사중주판(작품51)으로 편곡했고, 1796년에는 궁정 관료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고트프리트 판 스비텐의 권유로 독창·합창·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오라토리오 형태로 최종 완성됐다. 이 세 번째 버전, 즉 '합창판'은 하이든의 최종 결정판임에도 관현악판이나 사중주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연주되고 덜 녹음되는 '희귀한 걸작'으로 남아 있다. 

SOMM 측은 이 녹음을 "확장적이고 극적인 성부가 오케스트라의 강력한 리듬과 흥미롭게 대비를 이루며, 팀파니와 트럼펫의 극적인 폭발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짚었는데, 이는 곧 이 합창판이 지닌 음악적 잠재력이 이 녹음을 통해 온전히 구현됐다는 자평이라 할 수 있다. 서방 레이블이 냉전 종식 직후 러시아의 성악·관현악 자원을 직접 스튜디오에 불러들여 만든 녹음이라는 점에서, 이 음반은 1990년대 중반 동서 음악교류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정통 하이든 스페셜리스트

지휘를 맡은 안토니오 데 알메이다(1928~1997)는 프랑스 국적의 지휘자이자 음악학자로, 1968년부터 H. C. 로빈스 랜던과 함께 '하이든 재단'의 공동 예술감독을 지내며 하이든 교향곡 전곡 녹음을 주도한 이력이 있는 정통 하이든 스페셜리스트다. 그는 199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이 녹음은 바로 그 시기, 즉 그가 러시아 악단과 가장 밀도 높은 협업을 이어가던 무렵에 만들어졌다. 원어 텍스트(독일어)와 러시아 성악가들의 조합이라는 이색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알메이다는 하이든 특유의 절제된 고전적 구조와 후기 낭만적 극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내는 노련한 해석을 들려준다.

솔로이스트로는 소프라노 엘레나 예프세예바, 메조소프라노 마르가리타 마루나, 테너 아르카디 미셴킨, 베이스 보리스 베즈코가 참여했다. 러시아 국립 아카데미 합창단(예술감독 스타니슬라프 구세프)의 성량은 미국의 음악전문지 '아메리칸 레코드 가이드'로부터 특히 호평을 받았는데, 해당지는 "지붕을 뒤흔드는 베이스, 벌꿀처럼 감미로운 테너, 과일 브랜디의 단맛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지닌 여성 성부를 갖춘 진정한 러시아 합창단"이라고 표현하며 이 녹음이 "아르농쿠르반의 훌륭한 경쟁작"이라고 평했다. 슬라브 합창 전통 특유의 무겁고 진한 저음부와, 서구 오케스트라와는 결이 다른 관악 사운드가 만나 독특한 질감을 자아내는 것이 이 녹음의 개성이다.

노년에 접어든 하이든의 종교적 성찰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은 '교향곡의 아버지',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며 고전주의 음악의 형식적 틀 — 소나타 형식, 4악장 교향곡 구조, 현악사중주 편성 — 을 확립한 작곡가다. 그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30년 가까이 봉직하며 안정적인 창작 환경 속에서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다수의 오라토리오, 미사곡을 남겼고, 후일 제자인 베토벤에게 고전주의 어법을 전수하며 빈 고전악파의 연속성을 만들어낸 인물로 평가된다. '최후의 일곱 말씀'은 하이든이 노년에 접어들어 종교적 성찰이 깊어지던 시기, '천지창조'와 같은 대작을 쓰기 직전 단계에서 작곡된 작품으로, 그의 후기 양식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음악사적으로 자리매김한다.

스페인 대성당의 특별한 주문

이 곡의 탄생 배경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1786년, 스페인 카디스의 산타 쿠에바 오라토리오 성당의 한 참사회원이 하이든에게 특별한 의뢰를 했다. 성 금요일 예배 중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마디 말씀을 하나씩 묵상할 수 있도록, 각 말씀 사이에 연주할 느린 악곡 일곱 곡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예배는 완전히 어둠 속에서 진행됐고, 사제가 한 말씀을 낭독하고 짧은 설교를 마치면 무릎을 꿇었으며, 그 사이 하이든의 음악이 흘렀다고 전해진다.

하이든은 이 특이한 형식 — 오직 느린 악장만으로 구성되고, 마지막에 갑작스러운 '지진'의 악장이 뒤따르는 구성 — 에 대해 훗날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였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 작품은 반응이 좋아 하이든 스스로 현악사중주로 편곡했고, 1790년대 들어 성직자 요제프 프리베르트가 이미 만들어둔 성악 버전에 자극받아, 판 스비텐의 도움으로 텍스트를 다듬고 합창과 독창을 더해 최종 오라토리오판을 완성했다.

인간 존재의 마지막 순간을 관조하다

이 작품의 각 악장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남긴 일곱 마디 말을 음악으로 명상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로 시작해 "다 이루었다", 그리고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로 이어지는 구성은 단순한 수난극적 재현이 아니라, 고통과 용서, 절망과 신뢰가 교차하는 인간 실존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느린 관조를 음악적으로 구현한다.

하이든은 각 말씀의 정서적 색채를 조성과 템포, 악기 편성으로 세밀하게 구분했으며, 마지막 곡 '지진'에서는 갑작스러운 포르티시모와 팀파니의 강타로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벌어진 자연의 격변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전곡을 관통하는 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침묵과 여백 속에서 응축된 신앙적 절제미다. 

1995년 발매 이후, 단종되지 않은 채 꾸준히 판매 목록에 실려 있는 것이 이 음반이 가지는 장점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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