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비극을 껴안은 붉은 벽 — 벤 샨의 회화가 그려낸 광부의 아내들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7-06 14:40:51

벤 샨의 '광부의 아내들'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캔버스 전체를 붉게 뒤덮은 벽돌담 앞에 한 여인이 서 있다.

그녀의 두 손은 무언가를 감싸 안은 듯 모아져 있고, 시선은 화면 밖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이 강렬한 이미지의 주인공은 미국 화가 벤 샨(Ben Shahn, 1898~1969)이며, 작품은 1948년경 완성된 '광부의 아내들'이다.

작품은 1947년 일리노이주 센트레일리아 탄광 폭발(111명 사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참사가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그림은 애초 한 기업의 의뢰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으나, 샨은 이를 단순한 삽화가 아닌 독립된 회화 연작으로 확장시켜 총 네 점의 유화와 백여 점에 달하는 드로잉을 남겼다.

리투아니아 이민자에서 미국 사실주의의 얼굴로

벤 샨은 1898년 지금의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혁명 활동 혐의로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은 뒤, 가족은 여덜 살의 그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브루클린에 정착했다.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석판 인쇄 기술을 배웠던 그는, 이후 뉴욕대학교에서 잠시 생물학을 공부하다 결국 미술의 길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뉴욕 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디자인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익힌 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모더니즘 화풍을 접했지만, 그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사회 참여적 사실주의로 재구성했다.

그의 이름을 화단에 알린 것은 1930년대 초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소재로 한 연작이었다. 이 작업을 계기로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서사적으로 형상화하는 사회적 사실주의 계열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뉴딜 정책 아래 연방 정부가 후원한 다수의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민자의 고난과 노동자의 투쟁, 공동체적 재건이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뤘고, 그 안에는 유대 전통과 미국 정치사에 대한 시각적 암시가 곳곳에 배치되었다. 1947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당시 기준 최연소로 개인 회고전을 열며 화단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손으로 쌓은 벽돌, 감정으로 그린 인체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형적 특징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붉은 벽돌담이다. 벽 자체는 평면적이고 장식성이 배제된 형태로 처리되었지만, 샨은 그 안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개별적으로 그려 넣었다. 이는 마치 벽을 쌓아 올리는 노동의 과정 자체를 화면 위에 재현한 듯한 효과를 낸다.

인물 묘사 역시 사실적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 형상은 존재하지만 그 형태는 왜곡되고 단순화되어 있으며, 짙고 거친 선으로 옷의 질감과 몸의 윤곽을 암시한다. 전면에 배치된 여성은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면, 그 뒤편의 노년 여성과 아이는 한 단계 작은 스케일로, 그리고 문틀 너머로 걸어가는 두 남성의 형상은 극히 작게 그려져 있다. 이 크기의 위계는 고립과 단절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로 읽힌다.

화면 왼편 위쪽, 빨랫줄에 걸린 낡은 외투 한 벌은 이제 주인이 돌아오지 않을 광부의 옷이다. 전면의 여성은 방금 사고 소식을 전달받은 듯한 표정으로, 격정적으로 울부짖지 않으면서도 충격과 마비된 감정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녀 뒤로 아이를 안고 있는 노년의 여성은 이 슬픔이 처음이 아님을, 그리고 다음 세대 역시 같은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암시한다.

참사 이후의 얼굴을 기록하다

이 그림이 지니는 힘은 폭발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에 남겨진 이들의 삶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작가는 재난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한 여성의 정지된 표정과 그 주변의 정적 속에 산업재해가 남긴 무게를 압축해 넣었다. 안전과 비용, 효율 사이에서 여전히 균형점을 찾지 못하는 오늘날의 산업 현장을 떠올리면,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게 다가온다.

정지된 슬픔이 남기는 여운

이 그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감각은 소리 없는 정적이다. 여인은 소리쳐 울지 않지만, 그 억눌린 감정은 오히려 더 크게 관람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녀의 눈이 화면 밖 관람자를 향해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는 어느 순간 이 비극의 방관자가 아니라 목격자로 전환된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벽돌의 색채는 애도보다는 억눌린 분노와 고통의 정서로 다가오며, 그 위에 무심히 걸린 텅 빈 외투 한 벌은 상실을 가장 구체적인 형상으로 응축해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형상 회화의 계보를 이어가다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화단을 휩쓸던 시기에도 샨은 인물과 서사를 포기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지켜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이후 정치적 메시지를 화면에 담아낸 형상 작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으며, 흑인 민권 운동이나 반전 운동,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과 맞닿은 여러 예술가들 역시 그의 긴 작업 인생에서 시각적·철학적 뿌리를 발견한다고 평가된다. 대중매체의 그래픽 작업과 순수 회화를 오가며 그 경계를 허문 그의 태도는, 오늘날 일러스트레이션과 순수미술 사이를 넘나드는 다수의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참조점으로 남아 있다.

시장에서 만나는 벤 샨

1948년 한 시사주간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예술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 이 작가는, 오늘날에도 미술 시장에서 꾸준히 거래되는 인물이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연평균 오십여 점이 경매에 나오고 있으며, 낙찰률은 삼십 퍼센트대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회화 작품의 경우 최근 십여 년간 평균 낙찰가는 2만 달러 안팎이었고, 역대 최고가는 회화 부문에서 약 26만 달러, 종이 작업 부문에서는 15만 달러 선까지 형성된 바 있다.

이러한 고가는 대개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대표작 계열에서 나타나며, 판화나 소묘와 같은 상대적으로 대량 제작된 작업물은 수백에서 수천 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흔하다. 미술관급 소장 가치와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대가 공존한다는 점이, 그의 작품이 여전히 폭넓은 컬렉터층의 관심을 끄는 배경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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