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대혁명의 상처... 마르티니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한 레퀴엠', 역사적 진혼곡의 재발견!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0-04 13:59:57

18세기 프랑스 왕실의 비극을 담은 잊혀진 걸작, 230년 만에 작곡가의 고향 교회에서 부활 음반의 표지로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무덤 사진을 사용했다. 사진 | 크리스토포루스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독일의 음반 레이블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가 2016년에 제작한 장 폴 에지드 마르티니(Jean Paul Egide Martini, 1741-1816)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한 레퀴엠'은 세계 최초로 녹음된 역사적 기록이다. 

이 음반은 2016년 7월 23일 작곡가의 고향인 독일 프라이슈타트의 발파르츠교회 마리아 힐프(Wallfahrtskirche Maria Hilf)에서 녹음되었다. 1816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200년 넘게 잊혀져 있던 작품을 되살려냈다.
 
마르티니의 레퀴엠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된 작품이다. 1793년 처형된 두 왕은 1815년 왕정복고 이후 성 드니 대성당에 안장되었고, 1816년 1월 21일 루이 16세의 기일에 맞춰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이 역사적 추도식을 위해 마르티니는 생애 마지막 대작인 이 레퀴엠을 작곡했다. 당시 75세의 고령이었던 마르티니는 이 작품을 완성한 지 불과 몇 달 후 세상을 떠났다. 마르티니의 레퀴엠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음악가가 왕실에 바친 마지막 헌사이자, 프랑스 혁명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왕정복고 시대의 역사적 증언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마르티니의 레퀴엠과 함께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의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 '심연'이라는 뜻)'를 수록했다. 1787년 빈에서 작곡된 글룩의 이 작품 역시 세계 최초 음반이다.

두 작품의 조합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글룩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음악 교사였으며, 오스트리아 황녀였던 그녀가 프랑스 왕비가 된 후에도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글룩과 마르티니, 두 작곡가 모두 마리 앙투아네트와 인연이 있었고, 이들의 작품을 함께 묶은 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이번 녹음을 이끈 볼프강 리델바우흐(Wolfgang Riedelbauch)는 시대악기 앙상블 '라 반다(La Banda)'와 페스티벌코어 무지카 프랑코니아(Festivalchor Musica Franconia)를 지휘하며 18세기 음향을 충실히 재현했다.

성악 솔리스트로는 소프라노 코린나 슈라이터(Corinna Schreiter), 테너 마르틴 플라츠(Martin Platz), 베이스 마르쿠스 지몬(Markus Simon)이 참여했다. 특히 작곡가의 고향 교회에서 녹음을 진행한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프라이슈타트는 마르티니가 태어난 곳으로, 그의 음악이 2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셈이다.

시대악기 연주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작품이 태어난 시대의 음향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라 반다는 18세기 오케스트라의 편성과 연주 관습을 따르며, 당시 청중들이 들었을 소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장 폴 에지드 마르티니는 독일 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마르티니 일 테데스코(독일인 마르티니)'로 불렸다. 그는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로망스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종교음악, 특히 이 레퀴엠은 오랫동안 망각되어 있었다.

세계 최초 음반 발매는 마르티니를 단순히 가곡 작곡가가 아닌, 대규모 종교음악의 대가로 재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66분에 달하는 이 레퀴엠은 그의 음악적 역량과 극적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총 연주시간 73분 46초에 달하는 이 음반은 단순한 음반 발매를 넘어 음악사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다.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 이 음반은 프랑스 혁명기 음악 연구자들은 물론, 레퀴엠 장르에 관심 있는 모든 애호가들에게 필수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단두대에서 사라진 왕과 왕비를 위한 진혼곡이라는 극적인 역사적 배경은 이 음악에 특별한 무게를 더한다.

잊혀진 걸작의 발굴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번 마르티니 레퀴엠의 세계 최초 음반은 음악사의 숨겨진 보석들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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