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이 반세기 만에 세상 빛을 본 스테레오 명연 — 알베르토 쿠르치 '바이올린 협주곡'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8-19 07:34:40

프랑코 굴리가 연주한 알베르토 쿠르치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영국의 복각 전문 레이블 퍼스트 핸드 레코즈(First Hand Records)가 2017년 발표한 'Alberto Curci: Violin Concertos'는, 이탈리아 작곡가 알베르토 쿠르치(1886-1973)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네 곡을 프랑코 굴리(Franco Gulli)의 독주와 프랑코 카푸아나(Franco Capuana)의 지휘로 담아낸 복각 음반이다.

1963년과 1964년 밀라노의 산텍페미아 대성당에서 녹음된 이 음원들은 원래 모노로만 발매됐거나 미국에서 극히 소량의 카세트로만 스테레오가 나왔을 뿐, 정식 스테레오 CD로는 이 음반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발굴의 의미가 크다.

'복원'

이 음반이 지닌 가장 큰 가치는 '복원'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쿠르치의 네 작품은 모두 그가 직접 설립한 출판사 에디치오니 쿠르치(Edizioni Curci)의 LP로만 발매됐던 음원인데, 처음 두 협주곡은 원반이 모노로만 나왔고 스테레오는 미국의 뮤지컬 헤리티지 소사이어티반에서만 확인됐으며, 3번 협주곡과 '스위트 이탈리아나'는 모노반 외에 극히 희귀한 쿠르치 레코즈의 카세트로만 스테레오 버전이 존재했다.

즉 이 네 곡의 스테레오 버전이 정식 음반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라이너노트에 따르면 음원의 출처와 연주 편성을 추적하는 데도 상당한 조사가 필요했다고 전해진다. 평자들은 이 음반이 거의 잊혀 있던 작곡가를 훌륭한 방식으로 다시 카탈로그에 복귀시켰다고 평가했으며, 실제로 영국 음악전문 사이트 뮤직웹 인터내셔널은 이 음반을 그해의 '올해의 레코딩'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프랑코 굴리의 엄격함과 깊은 이해

독주자 프랑코 굴리는 반세기에 걸쳐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며 이탈리아 현악 스타일의 품격 있는 대사(大使) 역할을 해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평자들은 그의 예술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으로 지적인 엄격함과 깊은 이해가 결합된 태도를 꼽는다. 이 음반에서도 굴리는 쿠르치의 소박한 악상을 결코 지치지 않는 태도로 이끌어가며, 풍부한 온기와 기교로 곡을 채색한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1번 협주곡 '로만틱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서 그가 구사하는 포르타멘토와 포지션 이동은 이 부케 같은 음악이 지닌 향기로운 정취를 한층 도드라지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휘자 프랑코 카푸아나는 이 음악에 완전히 밀착된 감각을 들려주며, '스튜디오 오케스트라'라는 익명으로 표기된 연주단체는 여러 정황상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주축으로 다른 악단 단원과 프리랜서 연주자들이 가세해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주자·교육자·출판인·작곡가의 정체성

알베르토 쿠르치는 1886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음악 출판인이다. 그는 비외탕과 베리오의 제자였던 안젤로 페르니에게 바이올린을 배운 뒤, 베를린에서 요제프 요아힘에게, 프라하에서 오타카르 셰프치크에게 각각 사사하며 당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나폴리로 돌아온 그는 40년에 걸쳐 후학을 양성했고, 격년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창설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음악 출판사 에디치오니 쿠르치를 세워 악보 출판과 중요한 음악 이론서 집필에도 힘을 쏟았다. 즉 쿠르치는 순수한 작곡가라기보다 연주자·교육자·출판인·작곡가의 정체성을 두루 겸비한 20세기 전반 이탈리아 바이올린계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서정적 어법에 충실했던 작곡가

1번 협주곡 '콘체르토 로만티코' 작품 21은 1944년에 출판됐지만, 이 음반의 해설을 쓴 저명한 음악학자 털리 포터는 실제 작곡 시기가 그보다 훨씬 앞섰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힌다. 2번 협주곡 작품 30은 1962년 작으로, 슬라브적 정서가 감도는 후기 낭만주의 어법 위에 집시풍의 기교적인 종악장을 얹은 작품이다.

3번 협주곡 작품 33과 '스위트 이탈리아나 인 스틸레 안티코' 작품 34는 모두 1966년에 출판됐는데, 이 시점은 이미 음악사적으로 급진적인 전위음악이 유럽을 휩쓸던 때였다는 점에서, 쿠르치가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서정적 어법에 충실했던 작곡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네 작품 모두 1963년 7월과 1964년 7월, 밀라노 산텍페미아 대성당에서 녹음됐다.

'노래하는 바이올린'

쿠르치의 음악은 한마디로 '노래하는 바이올린'을 향한 순정한 애정으로 요약된다. 1번 협주곡은 무르익은 낭만성과 함께 진정한 노래하는 서정성에 대한 재능을 드러내는데, 서정적인 필치와 세심한 관악기 삽입구는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연상시키면서도, 느린 악장의 평온한 '장면'은 마스카니를 떠올리게 하는 온기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악장은 나폴리 특유의 춤곡 리듬으로 가득한 매력적인 무곡풍 악장이다.

2번 협주곡은 보다 짙은 서정성과 함께 종악장에 집시풍의 기교적 악구를 담아냈고, 3번 협주곡은 사라사테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종악장으로 마무리된다. '스위트 이탈리아나 인 스틸레 안티코'는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바로크 양식의 모음곡으로, 특히 활기찬 프레스토 종악장에는 크라이슬러의 영향이 감지된다는 평도 있다. 결국 이 네 작품 모두는 첨단의 실험보다는 노래하듯 흐르는 선율미와 이탈리아 특유의 정서적 온기를 우선시했던 작곡가의 음악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매력적인 선율의 작품들

뮤직웹 인터내셔널의 조너선 울프는 이 음반에 대해 상세한 리뷰를 남겼다. 그는 굴리가 쿠르치의 소박한 악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치지 않고 이끌어가는 안내자 역할을 해내며 큰 온기와 기교로 채색한다고 평했다. 지휘자 카푸아나 역시 이 음악과 완전히 밀착된 감각을 들려준다고 짚었으며, 복각 작업에 상당한 조사가 필요했음에도 복원 음질이 매우 훌륭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호평했다.

그는 리뷰를 마무리하며 이 음반이 거의 잊혀 있던 작곡가를 훌륭한 방식으로 다시 카탈로그에 복귀시켰다는 평으로 결론지었다. 음반 유통사 아르키브뮤직 역시 쿠르치의 협주곡들을 두고 민속적 색채가 깃든 매력적인 선율의 작품들이라 소개하며,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 곡들임에도 늘 서정적이고 열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들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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