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강렬함! 바로크의 격정을 입은 목소리 — 델핀 갈루의 'Agitata'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8-17 12:02:16

바스티유 오페라의 스타 콘트랄토, 잊힌 바로크 성악곡의 지도를 다시 그리다 델핀 갈루(Delphine Galou)의 'Agitata'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프랑스 콘트랄토 델핀 갈루(Delphine Galou)가 오타비오 단토네(Ottavio Dantone)가 이끄는 이탈리아 고음악 앙상블 아카데미아 비잔티나(Accademia Bizantina)와 함께 2017년 알파 클래식스(Alpha Classics)를 통해 발표한 음반 'Agitata'는, 오페라 무대에서 이미 정평이 나 있던 한 성악가가 처음으로 내놓은 독집 리사이틀 앨범이라는 점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표지에는 스터드 장식 라이더 재킷을 입은 갈루가 등장해 '바로크'라는 장르에 흔히 따라붙는 고답적 이미지를 정면으로 배반하는데, 이는 앨범이 담고 있는 음악의 격렬한 감정선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선택이다.

'잊힌 거장'의 재조명

'Agitata'는 단순한 아리아 모음집이 아니다. 음반은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오라토리오·모테트·칸타타 같은 종교 성악 장르가 당대 오페라의 화려한 극적 어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흡수했는지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증언한다.

비발디, 조멜리, 포르포라, 칼다라, 스트라델라, 토렐리 등 이름은 익숙하되 종교곡 레퍼토리는 여전히 그늘에 가려 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고, 그 상당수가 세계 최초 녹음으로 기록됐다. 특히 조멜리의 오라토리오 '베툴리아 리베라타' 중 아리아 '프리지오니에르 케 파 리토르노'와 브레비의 모테트 'O spiritus angelici' 등은 이 음반을 통해 처음으로 음반화됐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최근 몇 년간 바로크 오페라가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가면서 칼다라, 조멜리, 포르포라 같은 '잊힌 거장'들이 완전판 오페라 녹음이나 성악가 개인 리사이틀 음반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데, 이 음반은 그 흐름을 오페라가 아닌 종교음악 쪽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정확함과 높은 밀도

오타비오 단토네가 하프시코드 연주와 지휘를 겸하며 이끄는 아카데미아 비잔티나는 이탈리아 라벤나를 근거지로 한 정격연주 앙상블로, 명료한 리듬감과 극적 대비를 앞세운 연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음반에서도 현악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자에 머물지 않고 갈루의 노래와 팽팽한 긴장을 주고받으며 극적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한 이탈리아어 평자는 음반의 첫 트랙이 록 음반과 같은 추진력으로 출발점을 박차고 나간다고 묘사하며, 콘체르토 그로소 악장에서 단토네의 하프시코드가 마치 일렉트릭 기타처럼 들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의 중심은 갈루의 목소리다. 평자들은 그가 한 프레이즈 안에서 전체 음역을 힘들이지 않고 오가는 유연하고 능숙한 기교를 지녔다고 평가했으며, 고음역에서는 마치 안정된 카운터테너를 연상시키는 음색을 낸다고 짚었다.

독일 매체는 그가 모든 프레이즈를 얼마나 정확하고 밀도 있게 다듬어내는지를 들을 수 있어 즐겁다고 평했고, 아카데미아 비잔티나 역시 그런 밀도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갈루는 이미 비발디 오페라 프로덕션에서 다수의 실적을 쌓아온 성악가였지만, 이 음반은 그가 극적 표현력뿐 아니라 종교곡 특유의 관조적 슬픔까지 폭넓게 소화할 수 있는 가수임을 입증한 첫 리사이틀 무대였다.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성악 음악의 지형

음반에 이름을 올린 작곡가들은 하나같이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성악 음악의 지형을 형성한 인물들이다. 오늘날 '사계'로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안토니오 비발디는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활동하며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협주곡을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고, 오라토리오 '유디타 트리움판스'는 그의 종교 성악곡 중 정점으로 꼽힌다.

니콜로 조멜리는 나폴리 악파에서 출발해 후일 슈투트가르트 궁정에서 독일식 극음악과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를 접목시킨 개혁적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니콜라 포르포라는 무엇보다 성악 교육자로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로,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와 카파렐리를 길러냈고 후일 요제프 하이든에게도 대위법을 가르쳤다.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는 초기 바로크에서 후기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극적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양식을 정립한 선구자로 꼽히며, 안토니오 칼다라와 주세페 토렐리는 각각 빈 궁정과 볼로냐 악파를 대표하며 기악과 성악 양면에서 후대에 큰 영향을 남겼다. 조반니 로렌초 그레고리와 조반니 바티스타 브레비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이번 음반이 이들의 작품에 다시 빛을 비추는 계기가 됐다.

격정과 슬픔의 아리아

음반의 표제이자 첫 곡인 '아지타타 인피도 플라투(Agitata infido flatu)'는 비발디가 1716년 베네치아에서 작곡한 오라토리오 '유디타 트리움판스'에 실린 아리아로, 구약성서 외경 속 유디트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기 직전의 격정과 불안을 폭풍우 속에 흔들리는 배에 비유해 그려낸다. 이 곡과 짝을 이루도록 음반에 배치된 조멜리의 아리아 '프리지오니에르 케 파 리토르노' 역시 같은 유디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오라토리오 '베툴리아 리베라타'에서 가져온 곡으로, 두 작곡가가 동일한 서사를 어떻게 다른 음악어법으로 풀어냈는지를 나란히 들려주는 구성이 흥미롭다.

포르포라의 모테트 '인 프로첼라 시네 스텔라'는 별빛 없는 폭풍우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의 두려움을 노래하며, 스트라델라의 '에트 에그레수스 에스트'는 1679년 작곡된 '성 수요일을 위한 애가' 중 한 곡으로 예루살렘의 몰락을 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칼다라의 신포니아는 1730년작 오라토리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기악 서주이며, 토렐리의 칸타타 '루미 돌렌티 루미'와 브레비의 'O spiritus angelici'는 각각 슬픔에 잠긴 눈과 천상의 영혼을 향한 기도를 소재로 삼는다.

신앙과 죽음의 흔들림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제목 그대로 '동요(또는 강렬한 흔들림, agitata)'다. 폭풍, 감금, 애도, 두려움, 구원에 대한 갈망까지 — 수록곡들은 하나같이 인간 영혼이 극한의 고난 앞에서 느끼는 격정을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이 격정은 세속 오페라의 사랑과 질투가 아니라, 신앙과 죽음, 죄와 구원이라는 종교적 맥락 속에서 표현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즉 이 음반은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오페라의 극적 언어를 빌려와 신앙적 체험의 내면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냈는지를 보여주는 음악적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라모폰 수상작

'Agitata'는 2018년 그라모폰 클래시컬 뮤직 어워드(Gramophone Classical Music Awards) 리사이틀(Recital)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 음악전문지 그라모폰이 매년 시상하는 이 상은, 그해 발표된 클래시컬 음반 가운데 부문별 최고작을 선정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Agitata'는 후보작 심사 단계에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2018년 8월 31일 런던 드 비어 그랜드 코너트 룸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최종 수상작으로 발표됐다. 그라모폰은 이 음반을 희귀 레퍼토리의 보고(寶庫)라 평하며, 잊혀 있던 사크라 레퍼토리를 발굴해 매혹적이고도 새로운 발견으로 완성해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매혹적이고도 뜻깊은 결과물

그라모폰은 이 음반을 두고 칼다라, 조멜리, 포르포라 같은 '잊힌 거장'들이 최근 다시 조명받고 있지만 이들의 종교음악은 여전히 그늘 속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 음반이 그 공백을 정면으로 메운 매혹적이고도 뜻깊은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독일 매체 포노 포룸은 갈루가 모든 프레이즈를 정확하고도 강렬하게 빚어내는 것을 듣는 즐거움이 있다고 평하며 아카데미아 비잔티나의 반주 또한 그에 못지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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