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600년 역사를 간직한 해미읍성, 조선시대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타임슬립!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0-13 09:32:01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자리한 해미읍성이 역사 애호가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빠져 나오면 15분 거리에 있어 교통도 편하다. 6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이 성곽은 조선시대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해미읍성은 태종 17년인 1417년 축성을 시작해 1421년 세종 3년에 완공된 평지 읍성으로, 고려 말부터 극심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성곽 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약 20만㎡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이곳에 주둔하며 서해안 방어의 핵심 거점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1418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된 이후 약 230여 년간 충청도 지역의 군사 중심지로 기능했으며, 1651년 효종 때 병영이 청주로 이전된 후에도 호서좌영이 설치되어 지속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의 지위를 유지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79년 선조 12년, 무과 급제 후 세 번째 관직으로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에 부임해 이곳 해미읍성에서 10개월간 근무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구차한 자리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상관의 부정을 발견하면 극진히 바로잡고 청렴한 자세로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았다고 전한다. 훗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의 강직한 성품이 이미 이 시절부터 돋보였던 것이다.
해미읍성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를 비롯한 천주교 탄압 시기 동안 약 1,000명 이상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해미진영은 충청도와 경기도 평택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천주교도 색출과 처벌 임무를 맡았으며, 체포된 신자들은 모두 해미읍성으로 끌려와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
성내 광장에는 당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지금도 서 있어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해미 순교자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고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하면서, 해미읍성은 세계적인 천주교 순교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실학자 정약용 역시 1791년 신해박해 때 천주교도라는 모함을 받아 이곳으로 유배되었으나, 정조의 비호로 10일 만에 풀려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해미읍성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성의 둘레에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 적의 접근을 막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탱자성'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평지에 타원형으로 축조된 해미읍성은 산성이나 강을 끼고 건설된 다른 성곽들과 달리, 평야 지대에서 최대한의 방어 효과를 내기 위한 조선 전기 축성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으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으로 쌓아 올렸다.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래 객사 2동, 동헌 1동, 포루 2동, 총안 380개소 등 매우 큰 규모를 자랑했다.
해미읍성은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청일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상당 부분 훼손되었던 읍성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1974년 동문과 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발굴 조사를 통해 객사와 아문지, 관아 외곽 석장 기지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 3대문과 객사 2동, 동헌 1동, 망루 1개소가 복원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비록 모든 건물이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600년 가까이 읍성과 함께해온 수많은 고목들이 조선시대의 풍취를 진하게 풍기며 역사의 무게를 더한다.
서산시는 해미읍성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매년 10월에는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가 개최되며, 4월부터 10월까지 전통문화공연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조선시대 의상 체험, 전통 무예 시연, 옛 관아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성곽 위를 걸으며 바라보는 서산 평야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봄에는 성벽을 따라 핀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든 고목들이 운치를 더한다. 특히 야간에는 성곽과 성문에 조명이 켜져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해미읍성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왜구를 막아낸 군사적 요충지에서 이순신 장군이 청렴한 관리로 성장한 곳, 그리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아픔이 서린 곳까지, 해미읍성은 우리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고 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600년 전 이 땅을 지켰던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연인이나 가족과 손을 잡고 성곽길을 거닐며 역사를 되새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해미읍성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시간여행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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