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푸른 드레스를 입은 시그리드 히에르텐' — 이삭 그뤼네발드(Isaac Grünewald)가 그려낸 색채의 존재론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8-23 08:59:36

이삭 그뤼네발드의 '푸른 드레스를 입은 시그리드 히에르텐'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한 인간이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끝내 그 시대의 얼굴로 남는 경우가 있다.

이삭 그뤼네발드(Isaac Grünewald, 1889~1946)가 그런 인물이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스웨덴 예술가협회 부속 학교에서 그림의 기초를 다진 뒤, 열아홉이라는 이른 나이에 파리로 건너가 앙리 마티스의 아틀리에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그는 형태보다 색이 먼저 말을 거는 세계를 만났고, 그 세계관을 평생 붙들고 살았다.

귀국 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스톡홀름 화단에 색채 해방의 물결을 밀어붙였다. 처음엔 냉소와 조롱이 뒤따랐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지키기 위해 붓 대신 펜과 목소리로도 싸워야 했던 화가였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재능마저 의심받아야 했던 시대의 표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1918년 개인전과 함께 발표한 선언문에서 그는 그림이란 무엇보다 색과 화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기쁨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1920년대에는 오페라극장의 무대를 채색하고, 콘서트홀과 궁전의 벽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였으며, 마침내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교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의 생은 비행기 사고라는 갑작스러운 방식으로 마감되었다 — 성공의 정점에서, 예고 없이.

이 모든 이력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그는 왜 그토록 색에 집착했는가. 그 답의 실마리를 오늘 소개할 한 점의 초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시선이 머무는 자리, 몸이 말하는 언어

'푸른 드레스를 입은 시그리드 히에르텐(Sigrid Hjertén in blue dress)'은 1916~1917년 제작된 유화(115×88.5cm)로, 그림 속 인물은 그의 아내이자 동료 화가였던 시그리드 히에르텐이다. 두 사람은 1911년 결혼해 국내외 전시를 함께 하며 스웨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가 부부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예술적 동반자가 되어 국내외 전시를 함께 다녔던, 말하자면 시대를 앞서간 '셀러브리티 부부'였다. 그림은 그 관계의 한 단면을 포착한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짙은 울트라마린 블루가 장악하고, 그 위로 검은 반점과 분홍 꽃무늬가 뒤섞인 흰 숄이 대각선으로 쏟아진다. 여인은 팔걸이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젖히고, 한 손을 어깨 가까이 들어 올린 나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노란색을 머금은 머리칼과 아이보리 톤 피부는 코발트블루의 드레스, 청록빛 구두와 팽팽한 색채 대비를 이루고, 화면 오른쪽 구석에는 초록과 황금빛이 뒤엉킨 배경이 자리해 차가운 왼쪽 세계와 온도 차를 만들어낸다.

윤곽선을 뚜렷이 살리면서도 원근법을 과감히 무시한 이 평면적 구도는 파리에서 흡수한 야수파적 어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대상을 눈앞에 두고 그리기보다 기억 속 이미지를 화폭에 되살리는 방식을 즐겨 썼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그림이란 눈이 본 것의 기록이 아니라, 마음에 남은 인상의 재구성이었던 셈이다.

관계라는 이름의 증거물

이 그림이 지닌 무게는 단순한 부부 초상의 범주를 넘어선다. 화려한 숄의 무늬, 실내를 채운 소품들의 배치는 배경이 아니라 두 예술가가 공유했던 감각과 취향, 나아가 그들이 세상에 내보이고자 했던 이미지 그 자체의 언어다. 사적인 애정과 공적인 자기 연출이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지는 지점, 바로 거기에 이 작품의 진짜 가치가 있다.

동시에 이 시기는 그가 국제적 인정을 향해 나아가던 성숙기와 맞물린다. 파리에서 배운 색채 감각이 스웨덴이라는 낯선 토양 위에서 독자적인 표현주의로 발효되어 가는 과정, 그 결정적 순간이 이 캔버스 안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푸른 침묵이 건네는 위로

이 그림 앞에 서면 짙은 블루는 결코 차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오히려 팽팽하게 당겨진 현(絃)처럼 어떤 긴장을 머금고 있다. 그 위로 쏟아지듯 펼쳐진 흑백의 꽃무늬 숄은 화면 밖으로 날아오르려는 날개처럼도 보이고, 동시에 인물을 감싸 안는 보호막처럼도 느껴진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정면이 아닌 옆으로 흐르는 시선에서는 나른한 권태와 은근한 불안이 동시에 읽힌다. 화면 구석에 남겨진 따뜻한 황금빛은 차가운 파랑의 세계 너머 어딘가에 다른 계절, 다른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그림은 결국 말보다 색으로 쓰인 한 편의 서정시이며, 보는 이의 마음속에 몽환과 쓸쓸함이 뒤섞인 여운을 남긴다.

경계를 허문 자가 남긴 그림자

그는 마티스에게서 배운 색채의 문법을 스칸디나비아 땅에 최초로 이식하고 대중화시킨 인물로 기억된다. 초기 몇 해 동안 그는 동료들과 손잡고 스톡홀름의 한 화랑에서 논쟁적인 전시를 잇달아 열며, 색과 형태의 해방이라는 낯선 감각을 보수적인 스웨덴 관객들 앞에 처음 펼쳐 보였다. 비웃음과 냉대가 쏟아지던 그 시절, 그는 붓만이 아니라 말과 글로도 모더니즘을 변호하며 스스로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이후 그는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교단에 서서 다음 세대에게 자유로운 색채 실험을 독려했고, 오페라 무대와 대형 벽화를 오가며 순수미술과 공공미술, 장식미술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스웨덴 미술사는 그를 '이 나라에 모더니즘을 들여온 사람'으로 요약한다. 그의 실험은 이후 북유럽 표현주의 회화 전반에 색채 중심의 조형 언어라는 유산으로 스며들었다.

부재가 완성하는 희소성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그 가치가 선명해지는 이름들이 있다. 그뤼네발드는 오늘날 스웨덴 근대미술 경매 시장에서 가장 상업적 존재감이 큰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스웨덴의 저작권 관리 단체가 집계하는 2차 시장 통계에서 그는 스웨덴 모더니스트 화가들 가운데 해마다 가장 높은 수익을 발생시키는 이름으로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거래되는 물량과 가격 모두에서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노르딕 최대 경매사에서 그의 대표작 '서커스'는 1725만 스웨덴 크로나, 우리 돈으로 20억 원을 훌쩍 웃도는 가격에 낙찰되며 스웨덴 근대미술 부문 최고가 기록 중 하나를 세웠다. 인물화와 풍속화 계열의 유화들도 수백만 크로나 대에서 꾸준히 거래되는 반면, 소품이나 수채화, 판화, 세라믹 작업은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에서 국제 경매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의 아내였던 여성 화가의 작품 역시 최근 들어 강세를 보이며, 두 사람의 그림이 나란히 재조명받는 흐름은 북유럽 근대미술을 향한 컬렉터들의 견고한 신뢰를 반증한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