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불멸의 거장 로시니에게 바친 베르디 등 13인 작곡가의 진혼의 합창—‘Messa per Rossini’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3-20 04:57:11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1868년 11월, 주세페 베르디는 출판사 리코르디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로시니를 기리기 위해,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들이 함께 레퀴엠 미사를 작곡하고, 그의 기일에 연주하기를 바란다." 이 한 문장에서 비롯된 야심찬 프로젝트가 바로 ‘메사 페르 로시니(Messa per Rossini, 로시니를 위한 미사)’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명성을 쌓은 베르디를 필두로 당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13인의 작곡가가 레퀴엠의 각 악장을 분담하여 완성한 이 집단 창작물은, 그러나 초연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악보는 볼로냐의 도서관 서고에서 한 세기 넘게 잠들어 있었고, 1988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데카(Decca)가 2018년 발매한 이 음반은 그 부활의 결정적 증언이다. 베르디와 로시니의 정신적 고향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가 함께한 이 녹음은, 단순한 음반 출시를 넘어 이탈리아 음악사의 잃어버린 한 챕터를 복원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총 연주 시간 100분 44초, 14인의 작곡가가 빚어낸 이 장대한 레퀴엠은 19세기 이탈리아 성악 음악의 파노라마이자, 한 위대한 예술가에게 바쳐진 가장 정성스러운 헌사다.
샤이의 탁월한 조율 감각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는 볼로냐,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를 거쳐 라 스칼라의 음악감독에 오른 이탈리아 최고의 지휘자다. 그는 특히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와 종교음악의 맥락에 정통하며, 베르디와 로시니 양쪽 모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드문 지휘자다.
샤이의 해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13인의 서로 다른 개성을 하나의 통일된 진혼의 서사로 엮어내는 탁월한 조율 감각이다. 작곡가마다 문체와 화성 언어가 판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서 ‘메사 페르 로시니’는 군데군데 꿰맨 이음새가 느껴지는 패치워크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작품으로 호흡한다.
라 스칼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이 프로젝트의 장소적·음악적 정당성을 완성한다. 베르디와 로시니가 평생에 걸쳐 무대를 함께한 바로 이 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진혼의 합창은, 녹음실의 음향을 넘어 역사적 공간의 울림을 간직한다.
독창진 또한 화려하다. 소프라노 마리아 호세 시리(María José Siri), 메조소프라노 베로니카 시메오니(Veronica Simeoni), 테너 조르조 베루기(Giorgio Berrugi), 바리톤 시모네 피아촐라(Simone Piazzola), 베이스 리카르도 자넬라토(Riccardo Zanellato)—이 다섯 성악가는 이탈리아 성악 전통의 현재를 대표하는 이름들로, 각자의 악장에서 19세기 벨칸토 미학의 정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19세기 이탈리아 음악 생태계의 핵심 구성원
‘메사 페르 로시니’에 참여한 13인의 작곡가는 당시 이탈리아 음악계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인물들이었으나, 오늘날 대부분은 베르디의 긴 그림자 아래 잊혀진 이름들이다. 이 음반이 지니는 또 하나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최종 악장 '리베라 메(Libera me)'를 담당했다. 이 악장은 훗날 그의 레퀴엠(Messa da Requiem, 1874)에 재활용되며, ‘메사 페르 로시니’는 베르디 최대 종교 걸작의 직접적 씨앗이었다.
안토니오 바촐라(Antonio Buzzolla)는 베네치아 페니체 극장의 악장으로 활동한 오페라 작곡가이며, 안토니오 바치니(Antonio Bazzini)는 작곡가이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밀라노 음악원장을 역임했다. 카를로 페드로티(Carlo Pedrotti)는 당대 인기 오페라 작곡가로 베로나와 토리노에서 명성을 떨쳤고, 피에트로 플라타니아(Pietro Platania)는 팔레르모와 나폴리에서 활약한 시칠리아 출신의 대가였다.
이들 대부분은 19세기 이탈리아 음악 생태계의 핵심 구성원이었으나, 베르디와 이후 푸치니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난 작곡가들이다. 이 음반은 그 잊힌 목소리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다시 불러낸다.
봉인의 해제
당대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명성을 쌓았던 조아키노 로시니는 1868년 11월 13일 파리 근교 파시(Passy)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였다. 생전에 유럽 오페라 무대를 지배했던 이 거장의 죽음은 이탈리아 음악계 전체에 커다란 슬픔을 안겼고, 베르디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는 이탈리아의 대표 작곡가들에게 레퀴엠의 각 악장을 분담하여 작곡하고, 이듬해 로시니 기일인 11월 13일 볼로냐에서 초연하자고 제안했다. 13명의 작곡가가 동의했고, 베르디 자신은 마지막 악장 '리베라 메'를 맡았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좌초됐다. 공연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볼로냐 음악원장과의 갈등이 불거졌고, 베르디는 결국 자신의 관여를 철회했다. 초연은 영구적으로 취소됐으며, 완성된 악보는 볼로냐 음악원 도서관에 봉인됐다. 베르디는 이 미완의 프로젝트에 대해 이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악보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88년이었다. 지휘자 헬무트 릴링(Helmuth Rilling)이 이 작품을 발굴하여 슈투트가르트에서 세계 초연을 이루어냈고, 이후 산발적인 공연과 녹음이 이어졌다. 샤이와 라 스칼라의 이번 음반은, 베르디와 로시니 두 사람이 평생 무대를 함께했던 바로 그 극장에서의 연주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각별하다.
불균질함 속의 집단적 애도
‘메사 페르 로시니’는 단일 작곡가의 통일된 세계관으로 빚어진 레퀴엠이 아니다. 14인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한명의 망자를 향해 제각각의 언어로 건네는 작별 인사다. 그 불균질함이 오히려 이 작품의 진실이다.
베르디의 '리베라 메'가 묵시록적 장엄함으로 압도한다면, 다른 작곡가들의 악장들은 19세기 이탈리아 특유의 서정적 칸타빌레, 오페라적 드라마투르기, 교회 음악의 엄격한 대위법이 각기 다른 비율로 혼합된 개성적 언어를 구사한다. 이 음반을 통해 청중은 베르디 한 사람이 아닌, 19세기 이탈리아 음악 전체가 로시니에게 바치는 집단적 애도를 경험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두 번 완성됐다. 1868~1869년, 14인의 작곡가가 악보를 완성했을 때. 그리고 150년이 지나 샤이이와 라 스칼라가 그 악보에 숨결을 불어넣었을 때. 데카의 이 음반은 그 두 번째 완성의 가장 완벽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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