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달빛 — 마르게리트 블라싱게임의 'Island Moon before the World'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5-08 03:34:42

하와이가 낳은 잊혀진 상징주의 화가  마르게리트 블라싱게임의 'Island Moon before the World'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달이 뜨기 전, 그림이 먼저 있었다

칠흑 같은 군청색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빛의 나선. 그 아래 황금빛 보름달이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수면에는 오로라처럼 번지는 녹색 빛이 파문을 그린다. 화면 왼쪽에는 인간의 형상을 닮은 뒤틀린 회백색 나무가 침묵 속에 서 있고, 그 발치에는 씨앗인지 영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작은 흰 형상들이 흩어져 있다. 수평선 저 너머엔 홀로 솟은 작은 빙산 하나가 묵묵히 존재를 증명한다.

1934년에 그려진 'Island Moon before the World', 즉 '세상이 열리기 전의 섬의 달'이다. 캔버스의 크기는 가로 약 152센티미터, 세로 약 102센티미터. 그러나 이 그림이 품은 세계는 그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하와이 제도가 막 탄생하던 태초의 순간, 아직 이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던 그 찰나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마르게리트 루이 블라싱게임(Marguerite Louis Blasingame, 1906–1947)이다. 41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간 하와이 태생의 미국 화가. 20세기 미국 미술사의 주류에서 오랫동안 지워져 있던 이름이지만, 오늘날 그는 하와이 상징주의 회화의 가장 빛나는 별로 재발견되고 있다.

하와이가 낳고 스탠퍼드가 다듬은 예술가

마르게리트 블라싱게임은 1906년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하와이 대학교를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28년 학위를 손에 쥐고 다시 고향 하와이의 품으로 돌아왔다.

귀향 이후 그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살았다. 낮에는 나무와 돌을 깎는 조각가로, 밤에는 신화와 상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펼치는 화가로. 그의 조각은 유연한 곡선과 단순화된 인체 형태를 특징으로 했는데, 이 조각가적 감수성은 그대로 그의 회화에도 스며들었다. 'Island Moon before the World'에서 화면 왼쪽을 지키는 뒤틀린 나무가 어딘가 살아 있는 인체처럼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의 파고 속에서 그는 미국 연방 공공사업진흥국(WPA) 예술가로 활동하며 대형 건축 패널과 벽화를 다수 제작했다. 작품의 질만큼이나 작업량도 경이로웠다. 동료 화가 매지 테넌트는 그의 사후 호놀룰루 지역 신문에 기고한 추도문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예술에 있어 젊고 불굴의 활력을 지닌 존재였으며, 그 활력은 지칠 줄 모르는 노동으로 뒷받침되었다."

1934년, 그는 이사미 도이, 매지 테넌트 등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하와이 벽화예술협회(Hawaiian Mural Arts Guild)를 공동 창설했다. 같은 해에 이 그림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조직을 만들고, 세계의 탄생을 그리던 해. 그것은 블라싱게임에게 일종의 창조의 해였다.

그는 또한 스탠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성인을 위한 미술 감상 입문'을 출간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손으로 만들고, 눈으로 그리고, 언어로 설명하는 예술가. 그는 예술의 모든 형태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1947년, 그는 멕시코 여행 중 41세의 나이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이유도 예고도 없이, 그가 그린 태초의 달빛처럼 조용히.

마르게리트 블라싱게임의 'Island Moon before the World'(부분)

미술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블라싱게임이 살았던 시대, 미국 미술의 중심은 뉴욕이었다. 하와이는 1959년까지 미국의 정식 주(州)조차 아니었다. 여성 예술가였고, 하와이 태생이었으며, 본토 화단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섬에서 작업했다는 사실은 그를 삼중의 주변부로 밀어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고립이 그를 구했다. 그는 뉴욕 화단의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좇을 필요가 없었다. 파리 살롱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었다. 그 대신 그는 태평양 한가운데, 폴리네시아 신화와 하와이 원주민의 우주론이 살아 숨 쉬는 땅에서, 자신만의 상징체계를 구축했다.

그의 회화는 유럽 상징주의(Symbolism)의 언어를 빌리되, 그 내용은 철저히 태평양적이다. 19세기 말 유럽 상징주의자들이 신화와 꿈, 영혼의 세계를 그렸다면, 블라싱게임은 하와이 원주민의 창조 신화와 마나(Mana, 영적 생명력)의 개념을 그 자리에 채워 넣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작업은 194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들, 특히 초기 마크 로스코와 아돌프 고틀리브가 시도했던 신화·의식적 회화와 놀랍도록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인다. 그러나 블라싱게임은 그들보다 10년 앞서, 뉴욕이 아닌 호놀룰루에서 이미 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역사의 조명이 닿지 않았을 뿐이다.

화폭 속으로 — 창조 이전의 언어들

'Island Moon before the World'를 다시 들여다보자.

하늘을 가르는 빛의 고리는 단순한 달의 후광이 아니다. 하와이 창조 신화에서 세상의 시작은 빛과 어둠이 나선형으로 뒤엉키는 운동에서 비롯된다. 이 고리는 바로 그 우주적 운동, 즉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에너지가 세상을 빚기 위해 허공에 그리는 첫 번째 획이다.

그 나선의 끝에서 황금빛 달이 조용히 타오른다. 이 달은 하와이 원주민의 구전 창조 서사시 '쿠물리포(Kumulipo)'에서 생명의 탄생을 이끄는 천체와 겹쳐 읽힌다. 달은 이 그림의 서사적 중심이자, 감상자의 시선이 최종적으로 닿아 쉬게 되는 고요한 정박지다.

화면 왼쪽의 나무는 조각가 블라싱게임의 감수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형상이다. 뒤틀리고 분기하는 그 윤곽선은 나무이면서 인체이고, 인체이면서 불꽃이다. 자연과 인간과 신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그 이전의 세계에서 온 존재. 조각가가 돌을 깎아 형태를 발견하듯, 블라싱게임은 이 나무를 캔버스 위에서 창조가 아닌 발굴의 감각으로 그려낸 것처럼 보인다.

나무 아래 흩어진 흰 형상들은 더욱 수수께끼 같다. 씨앗처럼 보이기도 하고, 영혼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어떤 원초적 생명의 입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생겨나기 전, 생명이 아직 형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부유하던 그 순간의 기억.

수면에 번지는 황록색 발광은 오로라를 닮았다. 그것은 동시에 하와이 제도가 막 화산에서 솟아오르던 시절, 용암이 바다에 닿아 피어올렸을 수증기와 빛의 기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 위의 작은 빙산은, 이 모든 신화적 장면에 지질학적 시간의 무게를 슬쩍 얹어놓는다.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묶는 것은 색채다. 블라싱게임이 구사하는 군청, 남색, 청록의 층위들은 단순한 밤바다의 재현이 아니다. 그 색채들은 마치 심해의 온도처럼 차갑지 않다. 그 안에 생명이 잉태되는 공간의 따뜻함이 있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의 색깔이면서,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 처음 빛이 부서지기 시작하는 순간의 색깔이기도 하다.

마르게리트 블라싱게임의 'Island Moon before the World'(부분)

시작되기 직전의 고요

이 그림 앞에 서면 이상한 감각이 온다. 무언가가 시작되기 직전의, 온 우주가 숨을 멈춘 듯한 고요함. 그것은 거대한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지휘자가 바통을 든 채 침묵하는 그 찰나와 비슷하다.

빛의 나선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달은 아직 제 이름을 갖지 못했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지, 막 땅에서 솟아오른 건지 알 수 없다. 세상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 있는 그 순간.

이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문득 하와이 창조 신화 '쿠물리포'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 빛이 생겨나고, 빛 속에서 어둠이 생겨났다." 블라싱게임의 캔버스는 바로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어둠과 빛 사이, 무(無)와 유(有) 사이, 침묵과 소리 사이. 세상이 막 열리려는, 그러나 아직 열리지 않은 그 무한한 순간.

이것은 한 편의 시다. 아니, 시보다 더 오래된 무언가, 시가 발명되기 전에 이미 인류가 어둠 속에서 달을 바라보며 느꼈을 그 근원적인 경이로움.

현대 회화에 남긴 발자국

블라싱게임이 현대 회화에 미친 영향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는 유파를 창설하지 않았고, 선언문을 쓰지 않았으며, 뉴욕이나 파리의 화랑을 통해 명성을 쌓지 않았다. 그의 영향력은 직접적이기보다는 잠재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그는 신화와 정신세계를 현대 회화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유럽 초현실주의와 별개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유럽과 미국 동부의 화가들이 프로이트와 융의 개념을 빌려 무의식의 세계를 그리는 동안, 블라싱게임은 폴리네시아 신화와 하와이 원주민의 영적 전통에서 자신만의 상징 문법을 만들어냈다.

이 작업은 이후 태평양 섬 출신 예술가들이 자국의 신화와 자연을 현대 미술 언어로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오늘날 마오리, 사모아, 피지, 하와이 원주민 예술가들이 세계 미술 무대에서 점점 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흐름 속에서, 블라싱게임의 이름은 그 역사적 기원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의 작품들이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알고리즘이 그를 발견하고, 세계의 젊은 예술 애호가들이 반응하고 있다. 91년 전 호놀룰루에서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이 2026년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수만 명의 눈에 닿는다. 블라싱게임이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희소성이 만드는 가치

예술 시장에서 블라싱게임의 위치는 현재 '재발견의 단계'에 있다. 그의 작품이 공개 경매에 출현하는 빈도는 매우 낮다. 경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낙찰 기록은 현재까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희소성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시장 가격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지금이 컬렉터들에게는 주목의 시기라는 것.

현재 1stDibs와 같은 고급 아트 플랫폼에는 그의 작품이 매물로 등재되어 있으며, 하와이 상징주의를 주제로 한 대형 유화의 경우 수천 달러에서 수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베이에서는 이 그림의 아카이브 프린트가 꾸준히 거래되고 있어, 대중적 수요가 이미 상당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특히 'Island Moon before the World'는 블라싱게임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표작으로, 만약 이 원화가 소더비, 크리스티, 또는 하와이 미술 전문 경매에 출품된다면 현재 시장 예상가를 크게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최근 수십 년간 미술 시장에서 여성 예술가, 비유럽권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와 가격 상승이 두드러진 흐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에필로그 — 세상이 열리기 전, 그림은 이미 있었다

마르게리트 블라싱게임은 41년을 살았다. 짧다면 짧고, 작품의 밀도로 따지면 결코 짧지 않은 생이었다.

그는 하와이의 밤하늘과 태평양의 신화를 캔버스에 옮기면서, 자연 풍경의 재현이 아닌 우주의 탄생 이전 기억을 그림의 언어로 번역했다. 그 작업은 당대에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고,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미술사의 주석(footnote)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그린 달빛은 지워지지 않았다. 세상이 열리기 전의 그 첫 번째 빛처럼, 그것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1934년 호놀룰루의 한 화실에서 탄생한 이 그림은, 91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화면을 통해 전 세계 수만 명의 눈에 닿고 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달빛. 그 달빛은 아직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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