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영국의 유명 클래식 레이블 찬도스(Chandos)가 발매한 에설 스미스(Dame Ethel Smyth, 1858–1944)의 '더 프리즌(The Prison)' 세계 초연 음반은 단순한 '발굴 녹음'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1930년에 완성되고 1931년 에든버러에서 초연된 이 64분짜리 성악 교향곡은, 놀랍게도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음반화되지 않았다. 제임스 블래클리가 이끄는 익스피리엔셜 오케스트라 앤드 코러스가 마침내 이 공백을 메운 것은, 한 세기 가까이 잊혀 있던 여성 작곡가의 마지막 목소리를 역사의 침묵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었다.
소프라노 세라 브레일리와 베이스바리톤 대션 버튼이 솔리스트로 참여한 이 음반은 2020년 8월 발매됐고, 공교롭게도 미국 수정헌법 제19조(여성 참정권) 통과 100주년과 시기를 같이했다—여성참정권 운동가로서 옥살이까지 겪었던 스미스의 생애를 떠올리면 결코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 배치다.
두 개의 목소리, 하나의 영혼 — 솔로이스트의 내면 연기
이 작품의 성패는 전적으로 두 솔로이스트의 어깨에 달려 있다. 감옥에 갇힌 사형수 '죄수(The Prisoner)' 역의 대션 버튼은 단순히 절망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평자들은 그의 노래를 두고 리트(예술가곡) 가수에 견줄 만한 섬세한 텍스트 해석력을 지녔다고 평했는데, 실제로 그는 두려움과 불면,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를 웅장한 성량이 아니라 내밀한 호흡의 떨림으로 전달한다. 힘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평가가 뒤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영혼 역을 맡은 세라 브레일리는 정반대의 질감으로 응답한다. 황금빛 음색으로 묘사되는 그녀의 소프라노는 인간의 육체를 초월한 존재—죄수를 이끄는 내면의 인도자—를 체현하며, 특히 한 악장에서 스미스가 그녀의 선율을 거의 단일음 위에 고정시켜 놓고 오케스트라가 그 주위로 화성을 휘감게 만든 대목은, 브레일리의 안정된 음정 통제력이 없었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순간이다.
제임스 블래클리는 이 두 목소리 사이의 팽팽한 대화를 브람스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두텁고 유기적인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싸 안으며, 1부의 금관과 타악기가 빚어내는 어두운 긴장과 2부의 공기처럼 가벼워지는 음향을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합창단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목소리이자 천상의 증언자로 기능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여성 작곡가로 산다는 것
에설 스미스는 20세기 초 영국 음악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궤적을 그린 인물이다. 라이프치히에서 수학하며 브람스, 클라라 슈만, 드보르자크와 교류했고, 1903년에는 그녀의 오페라 '숲(Der Wald)'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이는 이후 한 세기가 넘도록 메트에서 공연된 유일한 여성 작곡가의 오페라로 남을 만큼 드문 기록이었다.
그러나 스미스의 음악적 성취는 종종 그녀의 젠더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논의되었고, 그녀 스스로도 평생 자신의 음악이 '작품 자체'로 평가받기를 갈망했다. 동시에 그녀는 여성참정권 운동의 최전선에 서서 1912년 의원의 자택 창문에 돌을 던진 혐의로 실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칫솔로 창살 사이 동료들을 지휘하며 자신이 작곡한 '여성의 행진(The March of the Women)'을 함께 불렀다는 일화는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더 프리즌'은 바로 이런 생애의 궤적 끝에서, 청력을 잃어가던 노년의 작곡가가 남긴 사실상의 유작이자 유일한 교향곡이다.
벗의 죽음이 남긴 악보
이 작품의 뿌리는 스미스의 오랜 벗이자 정신적 동반자였던 철학자 헨리 베넷 브루스터(H. B. Brewster)에게 있다. 두 사람은 1882년 피렌체에서 만나 평생에 걸친 지적 교감을 나눴으며, 브루스터는 스미스의 오페라 '난파선(The Wreckers)'과 '판타지오(Fantasio)'의 대본을 직접 쓴 협력자이기도 했다. 1908년 브루스터가 세상을 떠난 뒤, 1929~1930년 무렵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던 스미스는 그가 1891년에 출간한 철학적 대화록 '더 프리즌: 어 다이얼로그(The Prison: A Dialogue)'를 다시 읽게 된다.
원작은 사형을 앞둔 한 무명 죄수가 남겼다고 알려진 글을 두고 네 명의 친구가 초자연주의,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실증주의라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토론을 벌이는 플라톤식 대화 형식이었다. 스미스는 이 철학적 주석들을 걷어내고, 죄수와 그의 영혼이 직접 나누는 대화만을 남겨 대본으로 재구성했다. 청력을 거의 잃어가던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벗을 향한 오마주이자 자신의 작곡 인생 전체에 바치는 고별사로 이 곡을 완성한 것이다.
자아의 감옥, 영혼의 해방
'더 프리즌'은 표면적으로는 사형을 앞둔 죄수의 이야기지만, 그 감옥은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자아라는 감옥을 가리킨다. 1부 '자유에 가까이(Close on Freedom)'에서 죄수는 불면과 공포, 자신이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2부 '해방(The Deliverance)'에 이르러 그의 영혼은 그를 이끌어 자아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욕망의 굴레로부터 풀어내는 길로 인도한다.
그가 도달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 극복이 아니라, 죽음과 화해하고 내면의 평정에 이르는 상태다. 평자들이 이 작품을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에 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종교적 도그마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영적인 구원의 서사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아 있다. 청력을 잃어가며 창작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 있던 스미스 자신의 처지가 이 죄수의 이야기와 무섭도록 겹쳐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뒤늦은 인정 — 그래미가 도착하기까지
이 음반은 2021년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클래시컬 솔로 보컬 앨범(Best Classical Solo Vocal Album) 부문을 수상했다. 이는 에설 스미스의 음악이 받은 최초의 그래미 상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 속 여성 작곡가에게 수여된 최초의 그래미이기도 했다—그해 이전까지 이 부문에 후보로 오른 역사적 여성 작곡가는 에이미 비치가 유일했다. 지휘자 블래클리는 수상 소감에서 스미스의 음악이 너무 오랫동안 저평가되어 왔으며, 이번 수상이야말로 그녀가 수십 년간 받아 마땅했던 인정이라는 취지의 소감을 전했다. 같은 해 이 음반은 그라모폰 클래시컬 뮤직 어워드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평단이 들은 것
발매 직후 이 음반은 뉴욕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그라모폰 등 영미 주요 매체로부터 폭넓은 호평을 받았다. 그라모폰은 블래클리의 새로운 악보 교정판으로 연주된 이 음반이 아름답게 구축되어 있으며 스미스의 과거 작품들에 대한 인용과 암시로 가득한 깊이 있는 곡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평자는 블래클리와 오케스트라가 음악의 도도한 에너지를 정확히 포착해냈다고 짚으며, 브레일리의 소프라노가 확신에 찬 광채를 내뿜고 버튼이 사색적인 죄수 역을 탁월하게 그려냈다고 썼다. 스미스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청자라면 이 작품에서 출발하기를 권한다는 평도 있었는데, 이는 이 녹음이 단지 학술적 복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감상 가능한 음악적 완성도를 지녔다는 방증이다.
잊혀진 것을 복원하는 일
찬도스는 오랫동안 영국의 저평가된 혹은 잊힌 작곡가들을 발굴해 대중 앞에 소개하는 것을 레이블의 본질적 사명으로 삼아왔다고 밝혀왔다. '더 프리즌'은 그 철학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지휘자 블래클리는 이 작품에 대한 작업을 2015년부터 시작했으며, 스미스가 남긴 원 악보를 새롭게 교정하는 방대한 편집 작업을 거쳐 이번 초연 음반을 완성했다. 5.0채널 서라운드로 24비트/96kHz 사양으로 녹음된 하이브리드 SACD 포맷 역시, 이 작품이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스미스가 구상했던 웅장한 음향적 스케일을 최대한 복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여성필하모닉애드보커시(Women's Philharmonic Advocacy)와 앰바체 자선신탁(Ambache Charitable Trust)의 후원이 이 음반에 명시된 것 또한 상징적이다—이는 단순한 음반 제작을 넘어, 역사에서 지워질 뻔한 여성 작곡가의 유산을 되살리는 문화적 복원 작업으로서 이 프로젝트가 기획되었음을 보여준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그림] 바다 앞에 선 인간, 문명 이전의 몸을 그리다···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https://klifejourney.com/news/data/2026/09/25/p1065573780715661_739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