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사랑하는 여인에게 만 붙일 수 있는 이름···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의 '꽃 중의 꽃(A Flower among Flowers)'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5-24 13:46:26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의 '꽃 중의 꽃'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짙은 녹음의 숲 속, 흰 드레스를 입은 한 소녀가 야생화 사이에 조용히 서 있다. 손끝으로 작은 꽃 한 송이를 가만히 쥔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화면 밖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수줍지도, 당당하지도 않다 —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젊음이 거기 있다. 이 그림이 탄생한 것은 1870년, 프랑스 바르비종 숲의 여름이었다.

이 작품을 남긴 화가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Nicolae Grigorescu, 1838–1907)는 루마니아 회화사에서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 '루마니아 근대 회화의 창시자.' 왈라키아(현재 루마니아) 남부 피타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고, 수도원 벽화를 그리며 인정받아, 마침내 장학금을 얻어 파리로 건너간 청년. 그리고 그가 파리에서 만난 세계는 그를, 그리고 루마니아 미술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바르비종과 인상주의의 접점에서 

1861년 가을, 스물세 살의 그리고레스쿠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했다. 그는 세바스티앵 코르뉘(Sébastien Cornu)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했는데, 그의 동문 중에는 훗날 인상주의의 거장이 되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가 있었다. 두 청년은 같은 스승 아래 같은 시대를 호흡하며 각자의 길을 열어나갔다.

그러나 그리고레스쿠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아카데미의 교실이 아니라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Barbizon)이었다.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는 '야외 사생(en plein air)'을 실천하던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세계는 그에게 계시와도 같았다. 그는 밀레(Jean-François Millet),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등과 어울리며 자연의 빛과 색을 캔버스에 담는 법을 체득했다.

그리고레스쿠는 바르비종의 철학을 흡수하면서도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그는 루마니아의 농촌 풍경과 민중의 삶, 그리고 루마니아 여인들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으며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했다. 미술사적으로 그는 바르비종파와 인상주의 사이의 교량적 존재로, 서유럽의 회화 혁신을 동유럽에 이식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출품, 1868년 파리 살롱 전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재출품 등 그의 국제적 활동은 루마니아 화가 최초의 서구 무대 진출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림 속으로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리고레스쿠의 붓이 얼마나 자유롭고 감각적인지 바로 느껴진다.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 흰 드레스의 소녀는 거의 빛 그 자체처럼 처리되어 있다. 아이보리에 가까운 흰색 의상은 단색으로 평탄하게 칠해진 것이 아니라, 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밝아지고 어두워지며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아카데미 회화의 정밀한 음영법이 아니라, 바르비종파 특유의 빛에 민감한 붓터치다.

배경의 숲은 짙은 녹색과 황록색, 청록색이 층층이 쌓이며 깊이를 만들어낸다. 인상주의 직전 단계의 이 필치는 각각의 잎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빛과 공기 속에 녹아 있는 숲의 인상을 포착한다. 그 앞으로 분홍, 흰, 파랑의 야생화들이 마치 숲 바닥에서 솟아오르듯 생동감 있게 배치된 세 번째 이미지의 클로즈업은 이 그림의 하반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정물화임을 보여준다.

소녀의 얼굴 표현은 이 작품에서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부분이다. 붉게 상기된 두 볼, 눈가의 미묘한 표정, 살짝 다문 입술 — 이 모든 것이 어떤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내면의 울림을 전달한다. 갈색 머리카락을 땋아 올린 소박한 헤어스타일은 이 소녀가 파리의 귀부인이 아닌, 자연 속의 소녀임을 말해준다.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의 '꽃 중의 꽃(부분)'

숨겨진 이야기 — 밀레의 딸과 청년의 비밀

이 그림에는 그림 자체보다 더 아름답고 더 슬픈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모델은 바르비종파의 거장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딸이다. 그리고레스쿠가 바르비종에 머물던 시절,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훗날 그리고레스쿠의 오랜 친구였던 루마니아 작가 알렉산드루 블라후체(Alexandru Vlahuță)는 이 비밀을 세상에 전했다.

"나는 다시는 바르비종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레스쿠는 어느 날 그늘진 표정으로 블라후체에게 말했다. "나는 밀레의 딸 중 한 명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나도 그녀에게 무관심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녀는 위대한 화가의 딸이었고, 나는 세상에서 사회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를 나의 궁핍함과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부정직한 사람의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작업으로 스스로를 치유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고,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 알렉산드루 블라후체, '화가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 부쿠레슈티, 1910

이 고백은 이 그림을 단순한 초상화나 풍경화가 아닌, 말하지 못한 사랑의 기념비로 만든다. 그가 붓으로 담아낸 것은 한 소녀의 얼굴이 아니라, 포기함으로써 지켜낸 감정의 초상이었다.

캔버스 앞에 서서 

이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소녀가 화면 밖의 관람자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바라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눈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순수하다.

흰 드레스는 꽃들 사이에서 스스로도 하나의 꽃이 된다. 제목 '꽃 중의 꽃'은 이 역설을 담고 있다 — 소녀는 꽃을 꺾으러 온 것인지, 꽃이 되러 온 것인지. 그리고 화가는, 사랑을 고백하러 온 것인지, 사랑을 잊으러 온 것인지.

숲의 빛은 소녀를 감싸며 보호하듯 흐른다. 이 빛은 신화 속 아르테미스의 숲처럼 신성하고, 동시에 어느 여름날 오후처럼 일상적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이 그림은 봄날의 설레임이 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련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루마니아 미술을 넘어 

그리고레스쿠의 영향은 루마니아 회화의 경계를 훌쩍 넘는다. 그는 동유럽 최초로 바르비종의 철학과 인상주의의 감각을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완전히 소화해낸 화가로서, 이후 루마니아 화단 전체의 방향을 결정했다.

그의 야외 사생 방식, 빛의 포착, 농촌과 여성을 바라보는 온화하고 서정적인 시선은 루마니아 근대 회화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이온 테오도레스쿠-시온(Ion Theodorescu-Sion), 루치안 그리고레스쿠(Lucian Grigorescu) 등 후대 루마니아 화가들은 직접적으로 그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그리고레스쿠는 서유럽의 회화 혁신이 어떻게 주변부 국가의 민족적 정체성과 결합하여 독자적 예술 언어를 탄생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의 작업 방식 — 서구의 기법 습득, 자국 문화의 주제 발굴, 두 세계의 창조적 종합 — 은 현재도 여러 비서구권 국가의 화가들에게 하나의 모델로 기능한다.

루마니아 미술의 왕좌

경매 시장에서 그리고레스쿠의 위상은 루마니아 미술계 전체를 통틀어 독보적이다. 그는 루마니아 화가 중 역대 최고 낙찰가 기록을 보유한 작가로, 그의 주요 작품들은 국내외 경매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루마니아 현지 경매에서 그의 중소형 작품들은 통상 수만 유로에서 수십만 유로 사이에서 거래된다. 중요한 시기의 대표적 주제(루마니아 농촌 여인, 풍경, 독립전쟁 장면 등)를 담은 작품들은 경우에 따라 수십만 유로를 상회하기도 한다.

'꽃 중의 꽃'처럼 바르비종 시기라는 작가 전성기, 서사적 에피소드가 결합된 작품이라면, 유사 규격과 시기의 그리고레스쿠 작품 중 상위권 가격대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 작품은 루마니아 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 of Art of Romania, Bucharest)에 소장되어 있어 공식적으로 시장에 유통되지 않는다.

국제 경매 무대에서는 아직 그리고레스쿠의 인지도가 서유럽·러시아 작가들에 비해 제한적이지만, 동유럽 예술에 대한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재발견과 재평가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리고레스쿠의 작품이 국제 시장에서 아직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발견의 여지'가 있는 영역으로 보고 있다.

숲은 아직 거기 있다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는 1907년 루마니아 캄피나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사랑했던 바르비종의 숲도, 그가 끝내 말하지 못했던 감정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캔버스 위의 흰 드레스 소녀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다. 손끝에 작은 꽃 한 송이를 쥔 채로.

어쩌면 이것이 회화의 힘이다. 말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사라진 것을 붙들고, 잊힌 이름들을 빛 속에 남겨두는 것.

니콜라에 그리고레스쿠의 '꽃 중의 꽃(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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