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첼로의 신(神)이 75년을 돌아보다…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슬라바 75’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4-19 11:00:06

슬라바 75. 고요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EMI 클래식스가 2002년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1927~2007)의 75세 생일을 기념해 발매한 ‘슬라바 75(Slava 75)’는 단순한 생일 헌정 음반이 아니다.

20세기 첼로 음악의 역사 그 자체인 한 거장의 예술적 궤적을 바흐에서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방대한 레퍼토리로 조명한, 클래식 음반 역사상 가장 충실한 아티스트 기념반 중 하나로 꼽힌다. '슬라바(Slava)'는 러시아어로 '영광'을 뜻하는 동시에 로스트로포비치의 애칭이기도 하다.

전설들의 조우 

이 음반의 연주진 목록은 그 자체로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명예의 전당이나 다름없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 참여했으며, 협연진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Sviatoslav Richter)가 이름을 올렸다. 지휘봉을 든 이들 역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베토벤 삼중협주곡)과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로, 같은 음반에서 이 네 명의 이름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오늘날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케스트라 또한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오케스트르 드 파리,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등 세계 최정상 악단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음반은 결국 20세기 중반에서 후반을 수놓은 거장들이 한 첼리스트의 생애를 중심으로 집결한 전례 없는 앙상블의 기록이다.

거대한 노래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거대한 노래'다. 그의 연주에서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음량과 음색의 스펙트럼이 경이로울 만큼 넓다는 점이다. 피아니시모에서는 속삭임보다 더 내밀한 숨결이 느껴지고, 포르티시모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압도하는 육중한 울림이 쏟아진다. 이 두 극단 사이를 로스트로포비치는 물 흐르듯 자유롭게 오간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3번에서 그 특징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바흐를 엄격한 양식미의 틀 안에 가두지 않는다. 프렐류드의 힘찬 도입부에서는 거의 오케스트라적인 밀도로 활을 밀어붙이면서도, 사라방드에서는 시간을 멈춘 듯한 정적의 호흡으로 선율을 풀어낸다. 바흐의 대위법적 구조를 논리로 해석하는 연주자들과 달리, 로스트로포비치는 그것을 감정의 건축물로 받아들인다. 이성보다 직관이 앞서는 바흐, 그러면서도 결코 자의적이지 않은 바흐다.

드보르자크와 하이든—서정과 낭만의 농도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에서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고전주의의 절제된 외형 안에 슬라브적 온기를 불어넣는다. 기술적으로는 더없이 정확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다. 카덴차에서 그의 즉흥적 호흡은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닌 내면 독백처럼 들리며, 악장과 악장 사이의 감정적 온도 차를 세밀하게 조율한다.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 연주의 본령이 폭발한다. 조국을 잃은 슬픔과 사랑의 상실이 겹쳐진 이 곡에서 그의 활은 때로 절규하고, 때로 체념하며, 마침내 체코의 대지를 껴안는다. 2악장의 서정적 칸타빌레는 첼로가 인간의 목소리와 얼마나 가까울 수 있는지를 극한까지 증명한다. 음정의 정확성과 감정의 깊이가 이처럼 완벽하게 공존하는 드보르자크 협주곡 연주는 음반 역사상 손꼽힌다.

베토벤 삼중 협주곡—세 거장이 빚은 기적의 실내악

카라얀 지휘의 베토벤 삼중 협주곡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오이스트라흐, 리흐테르와 나란히 선다. 세 사람 모두 독자적으로 음악사에 이름을 새긴 거장들이다. 이 연주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앙상블의 중심추 역할을 자임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화려한 선율을 펼칠 때 그의 첼로는 음악의 토대를 묵직하게 떠받치고, 자신의 선율 차례가 오면 낮고 굵은 음성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세 악기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빛나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실내악의 미학이 여기에 있다.

지휘봉을 든 로스트로포비치—첼리스트의 귀가 만들어낸 오케스트라 사운드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는 첼리스트 출신이라는 배경에서 그 특수성이 비롯된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휘자가 아니라, 앙상블 안에서 함께 호흡하는 음악가의 시선으로 악단을 이끈다. 현악 파트에 대한 탁월한 이해는 두말할 나위 없으며, 내성부의 움직임을 극도로 세밀하게 다루는 것이 그의 지휘 방식의 핵심이다. 글린카와 보로딘의 러시아 관현악 작품에서 이 특징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표면적인 선율의 화려함 이면에 깔린 하모니의 색채 변화를 그는 놀라운 입체감으로 구현해낸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교향곡에서 그의 지휘는 민족적 색채와 보편적 서사 사이의 균형을 탁월하게 잡아낸다. 향수와 새 땅에 대한 동경이 교차하는 이 교향곡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면서도 음악의 체온을 끝까지 유지한다. 카라얀의 정밀함과 줄리니의 인간적 온기를 동시에 참조한 듯한 해석이지만, 그 결과물은 누구도 아닌 로스트로포비치 자신의 언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c단조(Op.65)는 작곡가의 15개 교향곡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내밀한 작품으로 꼽힌다.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포성이 채 가시지 않은 소련에서 탄생한 이 교향곡은 전쟁의 승리를 찬양하라는 당국의 압력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전쟁의 공포와 인간의 고통, 그리고 체제의 폭력성을 음악으로 고발한 문제작이다. 초연 직후 소련 당국은 이 곡을 "비관주의적"이라며 사실상 금지했고, 쇼스타코비치 생전에 이 교향곡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쇼스타코비치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다. 쇼스타코비치가 그를 위해 첼로 협주곡을 헌정했고, 두 사람은 소련 체제의 감시 아래서도 음악과 우정으로 굳게 결속되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작곡가의 내면을 깊이 이해했던 로스트로포비치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를 이끌고 이 교향곡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레퍼토리 선택을 넘어선 인간적 고백의 의미를 띤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이 교향곡 해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감정의 과잉을 철저히 경계한다는 점이다. 쇼스타코비치 8번은 자칫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기 쉬운 곡이다. 그러나 로스트로포비치는 슬픔을 직접 울부짖지 않는다. 그는 감정을 압축하고 긴장을 내부에 가두는 방식으로 오히려 더 깊은 전율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음악을 쓴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작곡가 역시 체제의 검열을 피해 분노를 직접 표출하는 대신 아이러니와 냉소, 그리고 침묵으로 저항했다.

음악사, 불멸의 이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는 단순히 '뛰어난 첼리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20세기 첼로 음악 자체를 다시 썼다. 브리튼,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루토스와프스키, 피아졸라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작곡가들이 그를 위해, 혹은 그의 영감을 받아 첼로 작품을 헌정했다. 쇼스타코비치와의 깊은 우정은 소련 체제의 감시 아래서도 이어졌고, 솔제니친을 자택에 숨겨준 용기로 소련 국적을 박탈당한 그는 망명 중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밤, 그는 장벽 앞에서 홀로 바흐를 연주했다. 그것은 예술이 역사에 응답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강렬한 선언이었다.

지휘자로서도 그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를 17년간 이끌며 러시아 작품의 미국 내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유산은 첼로의 기술적 지평을 넓힌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음악이 정치적 억압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언어임을 생애로 증명한 예술가, 그것이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음악사에 새긴 불멸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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