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무한을 향한 집념, 쿠사마 야요이의 '나비'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13 09:16:17

전위예술의 살아있는 전설, 현대미술의 아이콘 쿠사마 야요이의 '나비'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1929-)는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 현대미술가다. 1929년 나가노현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환각과 환청을 경험하며 점(dot)과 망(net) 패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인적 강박은 역설적으로 그를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간 쿠사마는 뉴욕 아방가르드 집단에서 도널드 저드, 조지아 오키프 등과 교류하며 미니멀리즘과 팝아트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1960년대 그의 '무한 거울방(Infinity Mirror Room)'과 '소프트 스컬프처(Soft Sculpture)' 작업은 앤디 워홀, 클래스 올덴버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73년 일본으로 귀국한 후에도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전 장르를 아우르며 왕성한 작업을 이어왔다.

쿠사마는 현대미술사에서 페미니즘 아트, 사이키델릭 아트, 환경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정신질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웃사이더 아트'의 대표 주자이자, 9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정신병원에 거주하며 매일 작업하는 그의 삶 자체가 예술적 신화로 자리잡았다.

점의 무한 반복이 만들어낸 생명의 형상

1988년 제작된 '나비(Butterfly)'는 쿠사마의 시그니처 기법인 '물방울 무늬(polka dot)' 패턴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강렬한 빨간색 배경 위에 불규칙한 흰색 망이 펼쳐지고, 그 위로 노란색과 녹색 점들로 이루어진 나비 형상이 중앙을 차지한다. 나비의 날개는 크고 작은 녹색 점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으며, 흰색과 검은색 점들이 윤곽선을 형성한다.

이 작품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된 판화 작품으로, 쿠사마 특유의 강박적 반복성이 기계적 재현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수백, 수천 개의 점들은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 형태를 구성한다. 배경의 빨간색 망 패턴은 마치 세포 조직이나 우주의 별자리를 연상시키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계를 허문다.

나비는 쿠사마가 자주 다루는 모티프로, 변화와 재생, 자유를 상징한다. 동시에 날개의 대칭 구조는 쿠사마의 정신세계에서 반복되는 환영의 질서를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작품 하단에는 에디션 번호와 함께 쿠사마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정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치유의 메시지

쿠사마에게 점 찍기는 단순한 조형 언어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그는 환각으로 보이는 점들을 캔버스에 옮기는 행위를 통해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나비'는 이러한 개인적 투쟁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보편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가치는 여러 층위에서 발견된다. 첫째, 동양적 사유와 서구 미니멀리즘의 독창적 결합이다. 쿠사마의 점 패턴은 서양 추상표현주의의 올오버(all-over) 기법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동양의 무한 개념과 자연관을 내포한다. 둘째, 여성 작가로서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 뉴욕에서 여성 작가로서 겪은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인정받았다.

셋째,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쿠사마는 정신병원 생활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예술의 원천으로 승인받으며, 아웃사이더 아트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나비'는 이러한 맥락에서 고통의 미학화이자, 차이를 긍정하는 현대사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무한한 우주 속 떨림, 생명의 환희와 불안

작품 앞에 서면 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수천 개의 점들은 각자의 리듬으로 진동하며, 나비는 지금 막 날개를 펼치려는 듯 떨린다. 강렬한 빨간색은 열정과 생명력을 발산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긴장감도 내포한다.

노란색과 녹색의 대비는 봄날 정원의 생동감을 전하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점의 물결은 현기증을 유발한다. 이는 쿠사마가 경험한 환각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보는 이는 무한히 확장되는 점들 속에서 자아의 경계가 흐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며, 동시에 그 속에서 우주적 일체감과 고독을 동시에 느낀다.

나비의 형상은 가볍고 우아하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수많은 점들은 집요하고 강박적이다. 이 모순된 감정의 공존이야말로 쿠사마 예술의 본질이다. 아름다움과 광기, 질서와 혼돈, 유한과 무한이 하나의 화면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감상을 마치고 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점으로 보이는 듯한, 쿠사마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 듯한 여운이 남는다.

경매시장의 블루칩,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 보유

쿠사마 야요이는 현재 생존 작가 중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2019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그의 1959년 작품 '무한의 그물(Infinity Nets)'이 710만 달러(약 85억 원)에 낙찰되며 생존 여성 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2021년에는 초기 회화 작품이 1,000만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쿠사마의 작품은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주요 경매사에서 꾸준히 고가에 거래된다. 1960년대 뉴욕 시기 작품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지만, 1980-90년대 제작된 판화와 회화 작품들도 안정적인 수요를 보인다. '나비'와 같은 1988년 작품의 경우, 에디션 넘버와 보존 상태에 따라 5만~15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쿠사마의 호박(Pumpkin) 시리즈와 물방울 무늬 작품들은 아시아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2023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는 호박 조각 작품이 400만 달러 이상에 낙찰되기도 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쿠사마는 국보급 작가로 대우받으며,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은 예약이 수개월 전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쿠사마의 작품 가치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95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하게 작업하며 전 세계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고, 루이비통, 베르사체 등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도 확대되고 있다. 쿠사마 야요이는 단순한 미술 작가를 넘어 글로벌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 투자의 가장 안전한 블루칩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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