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숲속에 잠든 관능, 낭만주의가 신화로 감춘 욕망 — 리처드 웨스톨 '님프와 큐피드들'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8-01 08:46:48

리처드 웨스톨(Richard Westall)의 '님프와 큐피드들(Nymph and Cupids)'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영국 낭만주의 회화의 한 자락을 채우는 화가 리처드 웨스톨(Richard Westall, 1765~1836)의 '님프와 큐피드들(Nymph and Cupids)'은 신체의 환상적인 묘사로 유명하다.

1793년경 완성된 것으로 짐작되는 이 작품은 현재 런던 월리스 컬렉션에 소장돼 있으며, 신화라는 외피와 관능적 육체 표현이 맞물린 영국 회화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은세공 견습생, 왕립 아카데미로 향하다

웨스톨의 출발점은 화단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문장(紋章) 은세공 견습생으로 일하며 그림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었다. 출생지를 둘러싼 기록도 엇갈려서, 헤트포드셔 헤퍼드라는 설과 노퍽 리팜이라는 설이 함께 전해지는데, 노리치의 한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기록을 근거로 후자에 무게가 실리는 편이다. 1779년 은세공사의 견습생으로 들어간 그는 1785년이 되어서야 왕립 아카데미 부속학교에서 정식으로 미술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화업의 전환점은 이후 동료와의 인연에서 마련됐다. 1790년대 초, 웨스톨은 훗날 왕립 아카데미 원장에 오르는 토머스 로렌스와 소호 인근에서 세를 나눠 살며 나란히 화실 문패를 걸었다. 두 사람은 1792년 준회원, 1794년 정회원으로 함께 왕립 아카데미에 이름을 올렸고, 같은 해 로렌스는 국왕의 궁정화가로 임명된다. 웨스톨 역시 왕실과 인연을 맺어, 훗날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기 전 첫 미술 스승이 되는 이력을 남긴다.

문인들과의 교류도 그의 화업을 풍부하게 했다.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초상을 세 차례나 그렸고, 바이런은 자신의 시집에 실린 웨스톨의 삽화를 두고 붓이 언어를 앞질렀다는 취지의 극찬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픽처레스크 미학의 이론가였던 후원자 리처드 페인 나이트 또한 그를 당대의 뛰어난 화가로 평가했다.

불투명 안료가 빚어낸 몽환의 숲

이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흥미를 끄는 지점은 웨스톨 특유의 화법에 있다. 그는 풍경화에서 토머스 거틴이 이끈 기법 혁신과 나란히, 인물화 영역에서 유사한 변화를 주도한 화가로 꼽힌다. 당대 관객들이 그의 채색을 새롭고 파격적으로 받아들인 배경에는 불투명 안료를 과감하게 끌어들인 시도가 있었다.

화면 구성은 명확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비너스로도, 님프로도 읽히는 여성 인물이 숲속 임시 침상에 나른하게 몸을 뉜다. 커튼처럼 드리운 나무줄기 곁에는 날개 달린 세 명의 큐피드가 장난스럽게 얽혀 있고, 그중 하나는 활시위를 당겨 사랑의 화살을 겨눈다. 화살의 표적은 그림 밖 사냥꾼이거나 우연히 숲을 지나던 나무꾼으로 짐작될 뿐, 확정된 서사는 없다. 빛을 발하듯 밝게 처리된 여체와 짙게 우거진 숲의 명암 대비는 공간 전체에 신비로운 정취를 부여하며, 이는 낭만주의가 즐겨 다룬 '마음의 신비'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제목과 판본을 둘러싼 사정도 제법 복잡하다. 1794년과 1795년 왕립 아카데미 전시에는 각각 '님프와 큐피드들', '숲의 님프와 큐피드들'이라는 제목의 유사 작품이 출품된 기록이 남아 있고, 판화가 F. 스크린이 이를 판화로 옮기며 붙인 제목은 또 '비너스'다. 즉 웨스톨은 이 무렵 비슷한 도상을 여러 차례 되풀이해 그렸고, 오늘날 남은 판본들 사이에는 제목의 혼선이 뒤섞여 있다.

리처드 웨스톨(Richard Westall)의 '님프와 큐피드들(Nymph and Cupids)'(부분)

귀족의 침실을 장식한 신화

이 그림이 놓였던 자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월리스 컬렉션 소장본은 3대 허트포드 후작 프랜시스 시모어-콘웨이가 사들여 자신의 침실에 걸어두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화적 누드가 공적인 응접실이 아니라 사적 공간을 장식하는 은밀한 취향의 산물로 소비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신화라는 안전한 틀을 빌려 관능적 육체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당시 아카데미 회화가 즐겨 쓴 전략이었고, 웨스톨의 이 작품 역시 그 계보 안에 있다.

잠과 깨어남의 경계, 그림이 붙잡은 순간

그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감정은 나른함과 정적인 긴장감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어깨너머를 응시하는 여인의 시선은 관람자를 향한 것도, 완전히 잠에 빠진 것도 아닌 그 경계의 한순간을 붙잡고 있다. 흘러내리는 흰 천과 어두운 숲의 명암 대비는 그림 한 편이 서정시로 옮겨진 듯한 느낌을 준다. 천을 장난스레 끌어당기는 큐피드들의 몸짓은 정적인 장면에 은근한 유머와 생동감을 얹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늘 진지하지도, 늘 가볍지도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신화적 알레고리를 빌려 욕망과 순수를 동시에 은유하는 이 방식은 낭만주의 특유의 시적 정취라 할 수 있다.

바이런의 화가, 그러나 미술사의 곁줄에 남은 이름

웨스톨이 후대에 남긴 자취는 다소 이중적이다. 그는 분명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군에 속하며, 특히 바이런의 문학 세계를 시각화한 삽화가로서 문학과 미술이 맞닿는 지점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생전 왕립 아카데미에 313점, 영국 협회에 70점을 출품할 만큼 활동량도 왕성했고, 밀턴과 셰익스피어 갤러리 같은 당대의 대형 삽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로렌스나 터너 같은 동시대 거장들과 비교하면, 그는 미술사의 중심 서사에서는 한 걸음 비켜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존재감은 후대 화가들의 계보를 형성했다기보다, 낭만주의 시대의 삽화 문화와 감성적 신화화 전통을 증언하는 위치에 더 가깝다. 빅토리아 여왕의 첫 미술 스승이었다는 이력은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그가 안정된 궁정화가로서의 위상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리처드 웨스톨(Richard Westall)의 '님프와 큐피드들(Nymph and Cupids)'(부분)

경매 시장에서는 '중견 컬렉터블'

미술시장에서 웨스톨의 위상은 어떨까. 그의 작품은 크리스티, 소더비, 본햄스 같은 주요 경매에 꾸준히 등장하지만, 초일류 거장들의 몸값에는 미치지 못한다. 2024년 올림피아 경매에 출품된 소품 수채화 한 점의 추정가는 500~700파운드 수준에 그쳤다. 그의 작품 다수—특히 소품 수채화나 삽화용 드로잉—가 수백에서 수천 파운드대의 '중견 컬렉터블'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보존 상태가 좋고 도상적으로 중요한 대형 수채화는 가격대가 크게 뛴다. 한 미술상이 내놓은 1794년작 '비너스'—월리스 컬렉션 소장본과 매우 닮은 도상을 지닌 작품—에는 1만8500파운드(한화 약 4600만원)의 판매가가 책정된 바 있다.

교과서 첫머리는 아니지만, 지나칠 수 없는 이름

종합하면 웨스톨은 미술사 교과서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 영국 회화의 발전과 낭만주의적 감수성의 확산 과정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님프와 큐피드들'은 그 시대의 감수성—신화의 외피를 두른 관능, 사적 공간을 장식했던 귀족적 취향, 그리고 시와 그림이 서로를 비추던 낭만주의의 정신—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창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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