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 '영웅', 역사적 연주의 새로운 지평...원전악기로 되살린 1803년의 혁명적 사운드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5-12-10 01:25:39
[K라이프저니 | 이여름 기자] 2016년 Alia Vox Heritage 시리즈로 출시된 조르디 사발과 Le Concert des Nations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음반은 원래 프랑스 레이블 나이브(Naive)에서 발매됐다. 사발이 자신의 레이블인 알리아 복스를 설립하면서 판권을 구입, 재발매했다.
1994년 1월 카탈로냐 카르도나 성에서 녹음된 연주는 알리아 복스가 SACD 리마스터링을 거쳐 새롭게 선보이면서, 역사적 연주 실천의 가치를 재확인시키고 있다.
이 음반의 가장 큰 의미는 베토벤이 실제로 들었을 법한 사운드를 현대에 되살렸다는 점이다. Le Concert des Nations은 19세기 초 오케스트라 편성과 동일한 원전악기를 사용했다. 거트 현을 사용한 현악기, 내추럴 호른과 트럼펫, 목관악기의 역사적 모델 등이 당시의 음색을 충실히 재현한다.
음악 평론가들은 "현대 오케스트라의 균질화된 사운드와 달리, 각 악기의 개성이 뚜렷하게 살아있다"며 "특히 호른의 거친 질감과 팀파니의 건조한 타격음이 작품의 영웅적 성격을 극대화한다"고 평가했다.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이자 고음악 지휘의 권위자인 조르디 사발은 '영웅' 교향곡을 나폴레옹 개인에 대한 헌정이 아닌, 혁명과 자유의 이상에 대한 찬가로 해석했다. 앨범 표지에 사용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이러한 해석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한다.
사발의 지휘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극적이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에서는 빠른 템포로 혁명적 에너지를 표출하고, 2악장 '장송 행진곡'에서는 절제된 감정으로 영웅의 죽음을 애도한다. 3악장 스케르초의 경쾌함과 4악장 피날레의 변주곡 구조는 명쾌하게 제시된다.
영웅 교향곡은 50분 남짓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인데, 사발은 45분 동안 연주하면서 강렬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유지해 청자의 귀를 집중시키고 있다.
1989년 사발이 창단한 Le Concert des Nations는 역사적 연주 실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앙상블로 평가받는다. 콘서트마스터 만프레도 크래머의 리더십 아래, 각 주자들은 개인의 기량을 발휘하면서도 유기적인 조화를 이룬다.
특히 현악 섹션의 투명한 텍스처와 관악 섹션의 역동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18세기 오케스트라 특유의 '대화하는 듯한' 악기 간 상호작용이 생생하게 포착됐다. 목관악기의 섬세한 뉘앙스와 금관악기의 영웅적 선언은 작품의 드라마를 극대화한다.
녹음 장소인 카르도나 성의 콜레지알레 교회는 중세 건축물 특유의 음향 특성을 지닌다. 적당한 잔향과 명료한 음상 분리는 원전악기의 특성을 최적으로 담아낸다. 니콜라스 바르톨로메와 마누엘 모히노가 담당한 녹음과 리마스터링은 악기 배치의 공간감까지 생생하게 재현한다.
음반에 함께 수록된 코리올란 서곡 Op. 62 역시 사발 특유의 극적 해석이 돋보인다. 셰익스피어가 아닌 하인리히 폰 콜린의 비극에 영감받은 이 작품은, 영웅의 내적 갈등과 파멸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7분 34초의 짧은 연주 시간 동안 펼쳐지는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는 영웅 교향곡과 완벽한 프로그래밍을 이룬다.
클래식 음악 전문지들은 이 음반을 "역사적 연주(원전연주) 실천의 모범 사례"로 평가한다. 단순히 옛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당시의 연주 관습, 템포 설정, 아티큘레이션, 오케스트라 배치까지 철저히 고증했다. 빈 고전주의 양식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사발의 학구적 태도가 예술적 감흥과 결합된 결과물이다.
음악학자들은 "이 음반은 베토벤 연주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라며 "현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사운드에 익숙한 청중들에게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1994년 녹음 당시부터 굉장한 찬사를 받았던 이 음반은, SACD 리마스터링을 통해 한층 선명한 음질로 재탄생했다. 조르디 사발과 Le Concert des Nations가 제시하는 베토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혁명적이고 전복적이다. 영웅 교향곡을 사랑하다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명반 중의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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