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붉은 불꽃 속의 귀환 — 로푸호프의 '핀란드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탄 레닌'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2-25 00:41:05

혁명의 밤을 달리는 기관차,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포착한 역사의 한 장면
화가 알렉산드르 로푸호프, 소련 선전미술의 충실한 증인
알렉산드르 M. 로푸호프의  '1917년 4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핀란드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탄 레닌'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알렉산드르 M. 로푸호프(Aleksandr M. Lopukhov)는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 전통 안에서 활동한 화가로, 스탈린 시대 후기인 1940~50년대에 주로 활동했다. 그는 레닌과 볼셰비키 혁명을 소재로 한 역사화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남긴 화가로 평가받는다.

로푸호프는 서방 미술사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작품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련 체제의 붕괴와 함께 이 시대의 수많은 '공식 화가'들이 일괄적으로 미술사의 각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로푸호프는 그 거대한 익명성의 구조 속에서도 탁월한 극적 구성력과 빛의 연출로 동시대 선전화가들 중에서도 한 단계 위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술사적으로 그는 소련 미술아카데미가 규정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역사적 필연성의 시각화, 영웅적 인물의 기념비적 묘사,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에 충실하면서도, 19세기 러시아 이동파(Peredvizhniki)의 사실주의 전통과 드라마틱한 빛의 처리를 계승한 화가로 분류된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불꽃과 의지 

작품 '1917년 4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핀란드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탄 레닌'은 1917년 4월, 10년 가까운 망명 생활을 마치고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하는 레닌이 기관차 안에 서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봉인 열차(sealed train)'로 불리는 이 귀환은 10월 혁명의 완성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화면의 지배적 색채는 석탄 연소의 오렌지-적색이다. 화면 왼편에는 두 명의 철도 노동자가 용광로에 석탄을 퍼 넣고 있고, 화면 오른편에는 검은 코트와 납작한 모자 차림의 레닌이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청백색 빛을 받으며 우뚝 서 있다. 창밖으로는 폭풍우 치는 어둠—그것은 혁명 전야의 러시아를 상징한다—이 펼쳐진다.

구도는 철저히 레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문의 빛을 등진 레닌에게 집중된다. 빛의 방향은 두 가지다. 왼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용광로의 붉은 불빛은 노동자의 얼굴을 드라마틱하게 조각하고, 오른쪽 창문의 차가운 청백광은 레닌의 옆모습을 신성(神聖)에 가까운 아우라로 감싼다. 이 두 빛의 충돌이 그림 전체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로푸호프의 필치는 인상주의적 터치와 사실주의적 묘사가 절충된 형태로, 인물의 표정과 자세는 정확하게 포착하면서도 배경과 빛의 처리에서는 분방한 붓질을 허용한다. 이러한 기법은 냉엄한 역사적 사실성과 혁명적 감동을 동시에 전달하는 효과를 낳는다.

혁명으로 향하는 기대와 긴장감

이 그림이 제작된 1953~54년은 스탈린이 사망(1953년 3월)하고 흐루쇼프의 해빙(解氷) 시대가 막 열리려는 전환의 시점이었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레닌 숭배는 국가 종교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레닌의 귀환 장면은 소련 공식 미술에서 가장 빈번히 반복되는 도상 중 하나였다.

로푸호프의 이 작품은 그 긴 레닌 도상학(iconography)의 계보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른 많은 레닌화가 연설하거나 군중을 이끄는 모습을 그린 것과 달리, 이 그림은 도착 직전의 찰나—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이루어질 예감이 팽팽한 순간—를 선택했다. 그것은 역사적 결과보다 역사적 의지를 강조하는 선택이며, 그 점에서 이 그림은 단순한 기록화를 넘어 예언화(豫言畵)의 성격을 띤다.

또한 레닌을 노동자들과 같은 공간에 배치하되,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함께 달리는 존재로 묘사한 것은 당의 공식 이념—인민과 함께하는 지도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림 앞에 서면

이 그림은 보는 이를 기관차 안으로 끌어들인다. 석탄 냄새, 쇠 냄새, 그을음이 화면 밖으로 스며 나올 것 같다. 용광로의 붉은 빛은 단순한 열원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의 불꽃이고, 역사가 달아오르는 소리다.

레닌은 창밖을 본다. 그 시선에는 두려움이 없다. 어둠과 폭풍 속을 향해 고개를 드는 그 자세는 기묘하게도 선지자나 항해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등 뒤에서 석탄을 퍼 넣는 노동자들의 손이 없다면 기관차는 달릴 수 없다. 로푸호프는 그 관계를 화면 한 장에 담았다. 의지와 노동, 이념과 현실, 지도자와 민중—이 그림은 그 모든 긴장을 붉은 빛 속에서 한순간으로 응축한다.

창밖의 청백색 빛은 차갑고 불확실하다. 페트로그라드는 아직 멀었고, 혁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긴박한 여백이 이 그림을 단순한 선전화 이상으로 만든다.

소련 선전미술의 두 얼굴 — 대중을 움직인 힘과 그 이면의 폭력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선전미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조직적으로 기획된 미술 운동의 하나였다. 1934년 소련 작가동맹 제1차 대회에서 공식 채택된 이후, 모든 회화·조각·문학·영화는 사회주의 건설과 당의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했다.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소련 선전미술은 문맹률이 높은 광대한 영토의 민중에게 이미지라는 보편 언어로 혁명의 가치와 노동의 존엄을 전달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노동자와 농민을 영웅으로 그린 수천 점의 그림들은 기층 민중에게 자신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또한 이 시기 소련의 포스터·벽화·공공조각은 순수한 조형적 완성도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으며, 그 영향은 멕시코 벽화 운동, 미국 WPA 미술 등 20세기 공공미술 전반에 광범위하게 미쳤다.

그러나 그 이면은 어둡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강제는 예술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했다. 당의 노선에서 벗어난 화가는 전시 기회를 박탈당하고, 강제 노동 수용소(굴라크)로 보내지거나 생존 자체가 위협받았다. 추상화, 표현주의, 형식주의로 분류된 모든 현대 미술 경향은 '부르주아 퇴폐'로 낙인찍혀 금지되었다. 화가들은 자유로운 창작 대신 국가가 요구하는 도상을 반복 생산하는 장인으로 전락했으며, 그 과정에서 소련은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과 수십 년의 단절을 겪었다. 레닌과 스탈린을 그린 수만 점의 초상화는 예술이 아니라 우상 숭배의 산물이었고, 그 우상이 부서진 뒤 이 미술들은 집단적 수치의 유산이 되어버렸다.

로푸호프의 이 그림 역시 그 모순의 산물이다. 탁월한 회화적 역량과 이념적 강제 사이에서 탄생한 작품—그것이 소련 선전미술이 남긴 복잡한 유산이다.

경매 시장에서의 소련 선전미술 — 이념에서 컬렉터블로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은 한동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도 외면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 장르는 미술 시장에서 급격히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Christie's), 소더비(Sotheby's), 본햄스(Bonhams) 등 주요 경매하우스들은 '러시안 아트' 전문 세일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소련 시대 회화의 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왔다.

이 장르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작품들은 알렉산드르 데이네카(Alexander Deineka), 유리 피메노프(Yuri Pimenov),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Alexander Gerasimov) 등 소련 아카데미의 핵심 화가들의 대형 유화로,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된 사례가 있다. 레닌을 주제로 한 역사화는 특히 러시아 민족주의 정서와 결합되어 국내 컬렉터들의 수요가 높다.

로푸호프 자신은 소련 화단에서 중견급 위치에 있었으며, 그의 작품 거래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러나 이  '1917년 4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핀란드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탄 레닌'처럼 드라마틱한 구성과 역사적 서사성을 갖춘 주요작이 경매에 출품될 경우, 현재 시장 흐름을 고려하면 수만 달러에서 십수만 달러 사이의 낙찰가가 예상된다. 소련 선전미술에 대한 서방 컬렉터들의 관심은 냉전의 기억이 역사화되면서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 그림이 지닌 정치적 상징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그 가치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붉은 불꽃 속을 달리는 기관차는 멈추지 않는다. 로푸호프가 포착한 그 순간—1917년 4월의 어둠 속, 창밖을 향해 고개를 든 한 사내의 결의—은 한 체제의 선전 도구였지만 동시에 한 화가의 진지한 역사 해석이기도 했다. 그 이중성이야말로 이 그림을, 그리고 소련 선전미술 전체를 단순히 폐기하거나 단순히 찬미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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