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스즈키 마사아키와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78장 SACD 박스세트, 바흐 성악 작품의 완전한 집대성!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6-27 00:11:28

BIS가 출시한 'J.S. Bach: The Vocal Works'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성악 작품 전부를 하나의 박스세트로 완성한 음반이 클래식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스웨덴의 유명 클래식 레이블인 BIS가 출시한 'J.S. Bach: The Vocal Works'는 지휘자 스즈키 마사아키(Masaaki Suzuki)가 이끄는 바흐 콜레기움 재팬(Bach Collegium Japan, 이하 BCJ)의 녹음을 총 78장의 하이브리드 SACD에 담은 전례 없는 기획이다. 이 박스세트는 칸타타부터 수난곡, 오라토리오, 미사, 모테트에 이르기까지 바흐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성악 유산 전체를 단일 포맷으로 망라한 전집이다.

23년의 대장정이 이룬 결실

이 박스세트의 토대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즈키 마사아키와 BCJ는 첫 주요 녹음으로 바로크 소품집이나 친숙한 레퍼토리를 택하는 대신, 바흐의 초기 걸작 칸타타 4번 '그리스도는 죽음의 속박에 있었네'(Christ lag in Todesbanden)를 대담하게 첫 번째 음반으로 선택했다. 이는 당초부터 바흐 성악 전집 완성이라는 장기 목표를 향한 선언이었다.

이후 교회 칸타타 녹음이 2013년에, 세속 칸타타 녹음이 2017년에 각각 마무리됐고, 수난곡과 오라토리오, 미사 등 나머지 성악 레퍼토리까지 포함한 전집이 최종 완성되기까지 장장 20여 년이 소요됐다. 이번 78장 박스세트는 그 기나긴 여정이 거둔 최종 결실이다.

서양 음악사의 정점, 바흐의 성악 세계

바흐는 흔히 서양 음악의 '구약성서'로 불린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그는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면서 교회 예배를 위한 음악을 매주 직접 작곡하고 지휘하는 이중의 책무를 묵묵히 수행했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Cantor)로 재직한 약 27년 동안에만 200곡이 넘는 칸타타를 남겼으며,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B단조 미사를 비롯한 대규모 성악 작품들은 예배 기능을 훌쩍 넘어선 음악적 완성도를 갖추었다.

특히 B단조 미사는 루터교 신자인 바흐가 가톨릭의 라틴어 전례문을 토대로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종교적 경계를 초월한 보편성이 오래도록 음악학자들의 탐구 대상이 되어 왔다. 이처럼 신앙의 깊이와 대위법적 정교함, 그리고 감정 표현의 폭넓은 스펙트럼이 하나로 결합된 바흐의 성악 작품들은 단순한 종교 음악의 범주를 벗어나 인류 음악 문화유산의 정수로 자리한다.

스즈키 마사아키, 동아시아에서 정격연주의 새 기준을 세우다

스즈키 마사아키(1954년생)는 도쿄 국립예술대학에서 작곡과 오르간을 전공한 뒤 암스테르담 스베일링크 음악원으로 유학, 피트 키(Piet Kee)와 톤 쿠프만(Ton Koopman)에게 사사했다. 바로크 음악의 심장부인 유럽에서 정격연주의 이론과 실제를 철저히 체득한 그는 1990년 귀국 후 바흐 콜레기움 재팬을 직접 창단하며 아시아 고음악 연주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고음악 연주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동아시아에서 시대악기 앙상블을 이끌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바흐 해석을 구현해 낸 그의 행보는 이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스즈키가 추구하는 해석의 핵심은 '과장 없는 투명성'이다. 그는 성부와 기악 사이의 균형 잡힌 대화를 우선시하고,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음색의 균질성을 통해 바흐 음악 본연의 구조미를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 철학을 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나는 국적이나 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다성 음악에 대한 그의 통찰 역시 독보적이다. "다성 음악은 멜로디의 수평적 흐름만을 뜻하지 않는다. 벽돌과 돌로 유럽의 오래된 건물을 쌓듯, 수직적인 층이 만들어내는 심오함이 있고, 그 안에서 입체적인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바흐 콜레기움 재팬,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급 앙상블로

BCJ는 약 20명 규모의 시대악기 오케스트라와 25명 내외의 합창단으로 구성된 앙상블이다. 창단 이래 바흐를 중심으로 북스테후데, 쉬츠, 하이인리히 샤인, 게오르크 뵘 등 바흐에게 영향을 미친 독일 프로테스탄트 작곡가들의 작품에 집중하며 독자적인 레퍼토리 영역을 구축해왔다. 현재는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 런던, 뉴욕, 멜버른, 서울을 비롯한 세계 주요 공연장과 BBC 프롬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바흐페스트 라이프치히 등 유수의 음악 축제에 정기적으로 초청받는 세계적 앙상블로 성장했다. 

세계 최정상 솔로이스트들의 20년 동행

이 전집의 또 다른 특징은 수십 년에 걸쳐 BCJ와 협업을 지속해 온 세계 정상급 솔로이스트 진용이다. 소프라노에 하나 블라지코바(Hana Blažiková), 캐롤린 샘슨(Carolyn Sampson), 도로테 미엘즈(Dorothee Mields), 미도리 스즈키(Midori Suzuki) 등이, 카운터테너에 로빈 블레이즈(Robin Blaze), 요시카즈 메라(Yoshikazu Mera), 다니엘 테일러(Daniel Taylor) 등이 참여했다.

테너에는 게르트 튀르크(Gerd Türk), 마코토 사쿠라다(Makoto Sakurada), 얀 코보우(Jan Kobow) 등이, 베이스에는 페테르 쿠이(Peter Kooij), 스테판 맥레오드(Stephan MacLeod)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상당수는 1995년 첫 녹음 시작부터 20년 넘게 이 프로젝트에 동행해 온 오랜 파트너들이다. 이처럼 장기간 유지된 솔로이스트와 앙상블 사이의 신뢰와 호흡이 이 전집 전반에 걸쳐 일관된 음악적 통일성을 뒷받침한다.

국제 비평계, "시대악기 운동 50년, 여전히 생생하다"

이 전집과 BCJ의 연주에 대한 국제 음악 비평계의 평가는 일관되게 높다.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은 "BCJ 창단 30년이 지났음에도 스즈키 마사아키의 연주는 결코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그의 요한수난곡 공연을 두고 "치열하고 촘촘하게 짜인 드라마 감각이 전편을 관통했다"고 호평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대악기 운동이 태동한 지 50년이 지났건만, 이 앙상블의 연주에는 여전히 신선한 활력이 넘친다"고 썼다. 세계 최고 권유의 클래식 전문 잡지인 '그라모폰'은 음악 비평가 조너선 프리먼-애트우드(Jonathan Freeman-Attwood)의 집중 리뷰를 통해 이 전집을 상세히 조명하기도 했다.

음반사에 새겨진 기념비적 성취

이 78장 SACD 박스세트는 단순한 녹음 모음집이 아니다. 유럽 바로크 음악의 핵심 레퍼토리를 동아시아 앙상블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해 낸 23년의 기록이자, 바흐 성악 전집 디스코그래피의 새로운 기준점으로 우뚝 선 역사적 음반이다. 스즈키 마사아키와 BCJ는 이 전집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의 청중이든 바흐 음악의 감동에 다가갈 수 있다'는 믿음을 음악으로 증명해 보였다. 아시아에서 출발해 세계의 중심 무대에서 인정받은 이 앙상블의 여정은, 바흐 음악이 지닌 보편성만큼이나 국경과 전통을 초월한 예술적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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