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도이치 그라모폰(DG)이 2022년 발매한 음반 한스 로트의 교향곡 1번은 오랫동안 음악사의 각주에 머물러 온 작곡가에게 본문의 자리를 돌려주려는 시도다.
체코 출신 지휘자 야쿱 흐루샤(Jakub Hrůša)와 그가 이끄는 밤베르크 심포니(Bamberger Symphoniker)가 로트의 교향곡 1번 E장조를 중심에 놓고 말러의 '블루미네', 브루크너의 '교향적 전주곡'을 함께 담았다.
재능보다 빨리 닫힌 문, 그 앞에 놓인 음반
한스 로트(1858~1884)는 빈에서 태어나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생몰연도만으로도 그의 삶이 얼마나 짧았는지 알 수 있다. DG는 그를 프리랜서 음악가로 고전하다 정신질환을 앓은 뒤 요절한 작곡가로 소개한다. 그의 이름을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 바로 이 교향곡 1번이다.
이 음반의 가치는 작품의 위상을 다시 묻는 데 있다. 음반 해설은 이 곡을 "획기적인 음악적 아이디어와 교향곡의 발전에 대한 독창적 비전으로 가득한" 작품이라 소개하고, 교향곡 레퍼토리의 중심에 놓일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로트의 교향곡은 1989년에야 초연되었고 그 뒤에도 소수의 녹음만 이어졌다. 이 음반은 재발견의 흐름을 학계와 애호가의 영역에서 주류 음반 시장으로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우연히 클릭한 링크가 만든 운명
흐루샤와 로트의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그는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연주하기 위해 밤베르크 단원들과 준비하던 중 브루크너의 제자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로트를 처음 알았다. 링크를 따라 들은 E장조 교향곡에 매료된 그는 몇 달간 악보를 공부했고, 그 열정이 연주회와 녹음으로 이어졌다. 음반에는 흐루샤가 로트를 어떻게 접했는지 직접 밝힌 서문도 실렸다.
해석의 설계도: 흩어진 조각을 하나의 건축으로
60분에 가까운 로트의 교향곡은 자칫 방대함 때문에 산만하게 들리기 쉽다. 음반 평론이 가장 주목한 대목도 흐루샤가 이 위험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였다. 영국 온라인 매체 아르카나(Arcana)는 약 25분에 달하는 피날레가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기 쉽지만, 흐루샤가 전주·코랄·환상곡·푸가·스트레토·후주로 이어지는 형식적 얼개를 뚜렷이 들려주고 마지막까지 누적되는 추진력을 유지했다고 평했다. 같은 평은 스케르초를 가장 설득력 있는 악장으로 꼽았다. 폴카의 기운이 감도는 주제가 렌들러에서 유래한 트리오로 넓어지는 과정을 지휘자가 정확히 장악했다는 것이다.
올뮤직(AllMusic)은 말러 전문가로 알려진 흐루샤가 이 곡에 이상적인 선택이었다고 평했고, 밤베르크 단원들의 솔로 연주도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1946년 전후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 쫓겨난 음악가들이 모여 창단한 악단으로, 어둡고 풍성하며 울림이 깊은 음색으로 알려져 있다. 흐루샤는 2016년 가을부터 이 악단의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다. 이 음색은 브루크너와 말러의 세계로 이어지는 로트의 음악에 잘 맞는 재료다.
스승과 친구 사이, 세기말 교향곡의 계보
로트는 빈 음악원에서 브루크너에게 오르간을 배운 제자였고, 말러와는 같은 시기에 공부한 동료였다. 음악사에서 그의 자리는 브루크너의 웅장함과 말러의 세계관 사이를 잇는 다리로 요약된다. 아츠 퓨즈(The Arts Fuse)의 평은 로트의 음악이 브루크너풍의 장대함과 말러의 세계를 끌어안는 생동감 사이의 줄 위를 걷는다고 표현했다.
말러 본인의 증언도 있다. 말러는 로트를 두고 "내가 이해하는 새로운 교향곡의 창시자"라고 불렀다. 이 말은 DG 홍보 문구에도 인용됐다. 로트의 스케르초에서 호른이 렌들러 리듬 위로 솟아오르는 장면은 말러의 교향곡 1번을 떠올리게 하는데, 로트의 곡이 먼저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다만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확증하기 어렵다.
브람스의 거절, 그리고 기차 안의 비극
이 교향곡이 오랫동안 잊힌 배경에는 로트의 비극적인 삶이 있다. 교향곡은 1878년부터 1880년까지 작곡되었다. 완성 직후 브람스에게 작품을 보였으나 연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정신질환이 깊어지던 로트는 기차 안에서 브람스가 열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고 주장하며 총을 꺼내는 소동까지 벌였다고 전해진다. 작곡가는 생전에 자신의 교향곡이 연주되는 것을 끝내 듣지 못했고, 작품은 1989년에야 초연되어 사후 100년이 넘어서야 청중과 만났다.
숲과 산, 그리고 거대한 푸가가 그리는 것
이 곡의 정서는 자연과 초월에 대한 동경으로 요약된다. 영국 평론 사이트 '콜린스 칼럼'은 1악장에서 산행을 연상시키는 생생한 풍경을, 2악장에서 격정적인 긴장을, 스케르초 트리오에서는 숲속의 은밀한 정경을 읽어냈다. 피날레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7번을 앞서 예고하는 듯한 호른 신호와 경외감 어린 자연 묘사를 언급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로맨틱'과 닮은 대목도 있다고 짚었다.
피날레는 오르가니스트였던 로트가 즉흥적으로 펼쳤을 법한 구성을 지닌다. 아르카나는 이 대목이 서서히 쌓여 마지막의 행복한 종결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이 곡이 표현하려던 것은 젊은 작곡가가 꿈꾼 교향곡의 새로운 지평이었다. 말러의 말처럼 그가 바란 것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디를 향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는 평가다.
함께 담긴 두 곡, 하나의 대화를 위한 배치
교향곡 다음으로 말러의 안단테 알레그레토 '블루미네'(1884)와 브루크너의 교향적 전주곡 C단조 WAB 297(1876)이 수록됐다. 블루미네는 말러가 초기 판본의 교향곡 1번에 넣었다가 나중에 뺀 악장이다. 두 곡은 로트를 둘러싼 인물, 곧 스승 브루크너와 동료 말러의 음악이다. 두 곡을 함께 배치한 데에는 세 작곡가가 공유한 어법을 귀로 확인하게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클래시컬 캔더(Classical Candor)는 흐루샤의 목적이 이 세 작곡가의 글쓰기에 나타나는 유사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풀이했다. 아르카나 역시 곡목을 신중하게 골라 주 작품의 맥락을 넓혔다고 평했다.
음반 기획은 DG와 바이에른 방송의 클래식 채널 BR-KLASSIK의 공동 제작이다. 로트는 2021년 9월과 10월, 말러는 2021년 12월, 브루크너는 2022년 3월에 밤베르크 콘서트홀의 요제프 킬베르트 홀에서 녹음했다. 총 재생시간은 70분 11초다. 흐루샤가 팔짱을 끼고 미소 짓는 표지는 학구적인 무게보다 새로운 발견을 권하는 초대의 인상을 준다.
찬사와 아쉬움, 평단의 엇갈린 시선
대체로 호평이 우세하다. 올뮤직은 흐루샤가 이 교향곡이 정규 레퍼토리에 속해야 한다는 논거를 세웠다고 평했다. 아츠 퓨즈는 오랜 어둠 속에 있던 작곡가에 대한 이상적인 입문 음반이라고 썼다. 독일 매체 온라인 메르커의 딕 샤우스는 특히 로트에 관해서 이번 녹음이 기준 음반의 지위를 가질 만하다고 평했다. 밤베르크 심포니 공식 사이트에 소개된 독일 매체 클라시크닷컴 평은 흐루샤의 밤베르크 첫 녹음 프로젝트가 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콜린스 칼럼은 이 음반에 최상급 평가인 '아웃스탠딩'을 매겼다.
반면 비판적 시각도 있다. 클래시컬 캔더는 곡 자체가 다소 늘어진다고 보았고, 2악장 아다지오가 발전부에서 방향을 잃는다고 평했다. 음향에 대해서는 약간 멀리서 잡혀 부드럽고 흐릿한 느낌이 있으며 조용한 대목이 뒤로 물러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평가는 작품이 지닌 구조적 난제와 녹음 환경의 특성을 함께 보여준다.
기억의 복원, 그리고 남은 질문
이 음반은 한 작곡가를 복원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교향곡의 역사를 브루크너에서 말러로 이어지는 단선이 아닌 촘촘한 관계망으로 다시 그리게 한다. 로트가 남긴 유일한 교향곡이 훗날 말러의 세계를 예고했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그러나 이 음반이 그 질문을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자리에 놓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klifejourney2025@gmail.com
[저작권자ⓒ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