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가 1913년 페마른 섬에서 완성한 유화 '해변의 목욕하는 사람들(Badende am Strand, Fehmarn)'은 20세기 초 유럽 회화가 인간의 몸과 자연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재 베를린 국립미술관(Nationalgalerie, Staatliche Museen zu Berlin)이 소장하고 있는 76×100㎝ 크기의 캔버스화는, 키르히너가 여름마다 찾았던 발트해의 작은 섬 페마른에서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문명 바깥에서 발견한 화가, 브뤼케의 심장
키르히너는 1905년 드레스덴에서 프리츠 블라일, 카를 슈미트로틀루프, 에리히 헤켈 등과 함께 '브뤼케(Die Brücke·다리)'를 결성하며 독일 표현주의의 첫 장을 열었다. 이들은 아카데미 미술의 관습을 거부하고 반 고흐와 뭉크의 격정적 붓질, 아프리카·오세아니아 원시미술의 조형언어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 내면의 감정을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직접 토해내는 화법을 추구했다.
1911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이후 도시의 소외와 불안을 그린 '거리 풍경' 연작으로 정점에 이르렀지만, 그에 앞서 1907년부터 1914년까지 모리츠부르크 호수와 페마른 섬에서 여름마다 그려낸 누드 목욕 연작은 그가 도시적 신경증과 대비되는 원초적 자유를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축이다. 미술사는 키르히너를 브뤼케를 넘어 독일 표현주의 전체를 대표하는 화가로, 나아가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해체된 인체, 파도가 되어 흐르다
화면 왼쪽에는 한 사람이 홀로 모래사장에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세 사람이 손을 맞잡은 채 초록빛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인체는 해부학적 정확성 대신 몇 개의 굵은 윤곽선으로 압축되어 있으며, 팔다리는 관절의 구속을 벗어난 듯 길게 늘어나거나 각지게 꺾여 있다. 피부는 주황과 갈색의 거친 붓질로 처리돼 마치 대지의 색과 몸이 하나로 녹아든 듯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파격적인 것은 바다의 표현이다. 실제로는 푸른색이어야 할 파도가 짙은 녹색으로 뒤덮여 있고, 물결은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리듬, 살아 움직이는 곡선의 덩어리로 화면을 지배한다. 이는 색채를 대상의 고유색이 아니라 감정과 운동의 표현 수단으로 쓴 포비즘적 태도이자, 키르히너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즉흥적인 화법이 정점에 이른 순간이다.
문명 이전의 낙원을 그리다
이 작품이 지니는 미술사적 가치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름 풍경화라는 데 있지 않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1910년대 독일에서, 키르히너와 브뤼케 동료들에게 페마른과 모리츠부르크의 누드 목욕(해수욕) 장면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 인간, 자연과 완전히 합일된 몸에 대한 유토피아적 갈망을 담은 도상이었다.
손을 맞잡고 파도 속으로 들어가는 인물들의 형상은 공동체적 결속과 자유,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동경을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이 시기의 작업은 이후 폭발적으로 전개될 '거리 풍경' 연작의 형태 해체와 색채 실험을 예비한다는 점에서, 그의 화업 전체를 잇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다.
파도 소리 대신 들려오는 침묵
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초록으로 굳어버린 바다는 소리를 삼킨 채 그저 거대한 숨결처럼 부풀어 오르고, 손을 맞잡은 인물들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두려움이나 환희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않는다. 이 팽팽한 침묵과 망설임,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작음과 그럼에도 놓지 않는 서로의 손.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해방감이라기보다, 문명을 등지고 원초로 돌아가려는 자의 조심스럽고도 절박한 걸음걸이 같은 것이다.
표현주의에서 오늘의 회화로
키르히너의 왜곡된 인체와 격정적 색채는 이후 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화가들, 특히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거꾸로 뒤집힌 인물화나 프랭크 아우어바흐의 두터운 물감층에 직접적인 자양분이 됐다. 장 미셸 바스키아 역시 원시적이고 즉흥적인 조형언어에서 키르히너와 브뤼케의 유산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형태의 왜곡을 두려워하지 않고 화면에 쏟아내는 이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구상회화가 사진적 재현을 넘어설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로 거론된다.
표현주의 시장의 정점
경매시장에서 키르히너는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비싼 화가 중 한 명이다. 2006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베를린 거리 풍경(Berliner Straßenszene, 1913~14)'이 3810만 달러(한화 약 380억 원)에 낙찰되며 그의 최고가 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당시 독일 표현주의 회화 경매 최고가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2021년 크리스티 런던에서 '판토마임 라이만: 무희의 복수(1912)'가 600만 파운드(한화 약 100억 원)에, 2022년 소더비 런던에서는 초기 자화상 '파이프를 든 자화상(1907)'이 800만~1200만 파운드의 추정가로 출품되는 등 그의 작품은 꾸준히 수십억 원대에서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베를린 거리 풍경 연작과 1907~1915년 사이 제작된 초기 브뤼케·베를린 시기 작품이 시장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데, '해변의 목욕하는 사람들' 역시 바로 이 황금기, 1913년에 제작됐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나 시장가치 면에서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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