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집중분석] ‘디거(DIGGER)’①, 세상 구하겠다는 괴짜 재벌의 ‘삽질’…톰 크루즈와 이냐리투 감독의 대재앙 블랙코미디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10-01 22:28:06
[K라이프저니|글·사진 이주상 기자] 영화 ‘디거(DIGGER)’가 오는 3일 관객과 만난다.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디거’는 꼰대 괴짜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 분)의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발생한 작은 균열이 전 세계를 뒤흔들 역대급 대재앙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 호텔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는 크루즈가 참석해 작품의 의미와 촬영 뒷이야기를 전했다.
‘파느냐, 죽느냐’…작은 균열이 부른 지구적 재앙
주인공 ‘디거 록웰’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세계 각지의 시추 시설로 막대한 부를 쌓아온 석유 재벌이다. 대저택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그는 듣기 싫은 옳은 말을 하는 상대는 무시로 일관하는 안하무인이지만, 반려묘에게만큼은 무엇이든 최고의 대접을 해 주려는 괴짜 면모도 지녔다. 어느 날 그린란드 빙하에 균열이 생겼다는 직원의 보고를 받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결국 빠른 두뇌 회전과 화려한 언변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서게 된다.
예고편에는 이 소동의 온도가 압축돼 있다. 디거는 빙하가 1.5미터 움직였다는 보고에 “이 책상이 그것보다 크겠다”고 일축하고, 10억 달러짜리 시추 시설을 폐쇄하라는 말에 발끈한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는 뭐지?”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18조 달러입니다”다. 급기야 “55분 전 우리 시추탑이 폭발했다”는 보고와 함께 대규모 쓰나미가 예고되고, “오빠 때문에 유럽 절반이 물바다가 됐는데 어쩔 거야?”라는 대사까지 터져 나온다. “디거가 판 구덩이는 디거가 메워야지”, “끝까지 파거나 죽거나”, “큰 힘에는 큰 오리발이 따른다” 같은 카피는 영화의 블랙코미디 톤을 짐작하게 한다.
탐욕·권력·책임…웃음으로 파고든 인간의 민낯
연출을 맡은 이냐리투 감독은 ‘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인간의 욕망과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온 거장이다. 그는 이번 영화로 ‘탐욕, 권력 그리고 책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던진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 끊임없이 땅을 파고, 막강한 권력을 쥔 뒤에는 자신이 만든 결과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모순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다만 묵직한 화두를 심각하게만 풀어내지 않는다. 세계의 종말을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과, 그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스스로 구원자를 자처하는 아이러니가 예측 불가능한 웃음을 만든다. 크루즈 역시 이 영화를 “거칠고, 웃긴 영화”라고 표현했다. ‘디거’는 이냐리투 감독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이후 약 10년에 걸쳐 품어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독은 현실의 특정 사건을 옮기기보다 상상력으로 인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택했고, 그 결과 재난 영화의 스케일과 블랙코미디의 부조리, 사회 풍자가 뒤섞인 독특한 장르 세계가 만들어졌다.
‘세상을 구하는 남자’의 유쾌한 전복…톰 크루즈의 파격 변신
가장 큰 볼거리는 크루즈의 변신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 ‘탑건: 매버릭’의 ‘매버릭’으로 수없이 세상을 구해 온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일으킨 재앙을 스스로 수습하며 “자신이야말로 인류를 구할 유일한 사람”이라 확신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오랫동안 구축해 온 ‘세상을 구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유쾌하게 뒤집는 셈이다. 배불뚝이 백발노인으로 변신한 비주얼에 고집불통과 욕망으로 가득한 다층적 면모가 더해졌다.
크루즈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영화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만든 모든 영화에서 얻은 지식이 필요했다”며 이번 작품을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진정한 도약”이라고 표현했다. 이냐리투 감독은 “그가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를 온전히 구현해 내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 없는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디거 록웰’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면서 누구보다 앞장서 해결에 나서는, 선악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모순적 인물이다.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는 미장센…아카데미 제작진 총출동
‘디거’는 할리우드 최고 제작진이 총출동한 작품이다. ‘듄’ 시리즈와 ‘레버넌트’의 의상 디자이너 재클린 웨스트가 인물의 성격과 배경을 의상에 녹여냈고, ‘수어사이드 스쿼드’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받은 알레산드로 베르톨라치와 ‘다키스트 아워’, ‘밤쉘’로 같은 상을 받은 카즈 히로가 크루즈의 파격적인 변신을 완성했다. ‘007 스카이폴’, ‘블레이드 러너 2049’, ‘1917’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스 가스너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세트 데코레이터 애너 핀녹이 공간의 개성을 불어넣었다.
크루즈는 “렌즈부터 메이크업의 색, 카우보이 부츠의 색, ‘디거’의 반바지, 심지어 세트의 색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려되었다”며 “디테일, 기술, 그리고 영화의 여러 층위에서 느껴지는 깊이에 압도될 것”이라고 말했다.
1954년 비스타비전과 맞춤 제작 렌즈…‘스크린 속 또 다른 스크린’
촬영은 ‘그래비티’, ‘버드맨’, ‘레버넌트’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맡았다. 촬영팀은 디지털 대신 1954년 탄생한 35mm 필름 포맷 ‘비스타비전’을 택했다. 필름을 수평으로 이동시켜 더 넓은 면적에 이미지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높은 해상도와 풍부한 디테일이 장점이다.
영화 전체를 이 방식으로 촬영했고, 이번 작품을 위해 기존에 없던 광각 빈티지 라이카 렌즈까지 새로 설계했다. 광각 이미지 덕에 관객은 화면 중심뿐 아니라 프레임 곳곳에 숨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를 얻게 된다. 크루즈는 “우리가 직접 만든 렌즈가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손으로 빚어낸 듯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고 했고,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에는 스케일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강조했다.
앙상블: 산드라 휠러·존 굿맨·리즈 아메드
배우 라인업도 탄탄하다. 산드라 휠러는 디거의 동생 ‘에마’로 출연해 크루즈와 처음 호흡을 맞췄다. 휠러는 ‘토니 에드만’,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존재감을 입증했고 지난 2월 ‘로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주연상을 받았다. 존 굿맨은 디거의 사업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대재앙의 책임과 대처를 디거에게 떠넘기려는 ‘컴슨 대통령’을, ‘사운드 오브 메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리즈 아메드는 디거 앞에서 움츠러들면서도 입바른 소리를 참지 못하는 환경안전보안 책임자 ‘니라브 가네쉬 박사’를 맡았다.
흥행 포인트와 관건
흥행 포인트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액션 아이콘 크루즈의 180도 다른 얼굴 ▲이냐리투 감독과 제작진이 만든 시각적 완성도 ▲재난과 코미디를 오가는 새로운 장르적 재미 ▲환경 재앙과 권력자의 책임을 건드리는 시의성 ▲관객이 자기 해석을 얹을 수 있는 풍자의 여백이다. 여기에 할리우드 배우 최다 기록인 13번째 내한으로 쏠린 관심도 더해졌다. 상영시간은 128분,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가 배급한다.
관건은 입소문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연 뒤 외신에는 호불호가 엇갈린 첫 반응이 쏟아졌다. 크루즈의 연기와 시각적 야심에는 호평이 많지만 풍자의 톤과 서사에는 평가가 갈린다는 것이다. 미국 매체 퍼크(Puck)는 2일 북미 개봉 주말 성적을 1,900만 달러 안팎으로 전망했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 세계와 크루즈의 새 도전이 한국 관객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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