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그에게는 영혼이 있었다"…'알라바마 이야기' 그레고리 펙은 어떻게 '애티커스 핀치'가 되었나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10-11 17:56:16

영화 속의 그레고리 펙과 메리 배덤. 사진 | 미국국회도서관

[K라이프저니|이주상 기자] 1960년 여름, 앨라배마 출신의 신인 작가가 쓴 소설 한 권이 미국 문학계를 뒤흔들었다.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한국에서는 영화제목으로 ‘알라바마 이야기’를 사용했다)는 출간 몇 주 만에 초판이 동났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할리우드의 움직임도 빨랐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하마터면 전혀 다른 얼굴로 스크린에 오를 뻔했다.

'흥행 보증수표' 록 허드슨 대신 선택한 배우

스튜디오가 처음 눈여겨본 배우는 당대의 미남 스타 록 허드슨(Rock Hudson)이었다. 흥행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카드였지만 프로젝트는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로버트 멀리건(Robert Mulligan) 감독과 앨런 퍼쿨라(Alan J. Pakula) 프로듀서가 제작을 넘겨받으며 한 가지를 요구했다. 다른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멀리건 감독이 꺼낸 이름은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었다. 스튜디오는 망설였다. 출연료가 높은 데다, 영화에는 로맨스도 액션도 볼거리도 없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내를 잃은 시골 변호사가 있었고, 그는 아무도 변호하려 하지 않는 억울한 흑인 남성을 위해 법정에 선다. 제작진은 그래도 펙에게 원작 소설을 보냈다.

저녁 식사 무렵 펼친 책, 다음 날 아침 8시의 전화

펙은 저녁 무렵 책을 읽기 시작했고 밤새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8시, 그는 멀리건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애티커스를 맡길 원하신다면, 언제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에이전트도, 협상도, 조건도 없었다.

대본을 검토했다기보다 자신의 일부를 알아본 순간에 가까웠다. 작은 마을의 단단하고 암묵적인 위계, 올바른 일을 하는 데 얼마나 큰 대가가 따르는지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아버지의 모습. 캘리포니아 라호야에서 자란 펙과 앨라배마 메이콤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닮아 있었다.

실존 인물을 만나러 간 몬로빌

촬영에 앞서 펙은 하퍼 리의 고향인 앨라배마주 몬로빌(Monroeville)을 찾았다. 그곳에는 작가의 아버지 아마사 콜먼 리(Amasa Coleman Lee)가 있었다. 변호사였던 그는 딸이 오랜 시간 지켜보며 애티커스 핀치로 빚어낸 실제 모델이다. 그는 1919년 앨라배마에서 두 흑인 남성의 변호를 맡았으나 둘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 일을 끝내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병세가 깊었던 그를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배우가 먼 길을 온 것이다.

두 사람은 몇 시간에 걸쳐 법과 아버지의 역할, 모두가 쉬운 길을 가리킬 때 원칙을 택한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몬로빌에서 돌아온 펙은 한 기자에게 "애티커스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애티커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건 똥배가 아니라 연기예요"

촬영 첫날, 펙은 1910년대 의상에 회중시계와 줄을 걸치고 분장실을 나섰다. 화려한 스타일링은 없었다. 옷, 그리고 앨라배마에서 가져온 것들이 전부였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하퍼 리는 그를 보자 눈물을 터뜨렸다.

"무슨 일이에요, 하퍼?" 펙이 다가가 묻자, 작가는 웃다가 울며 답했다. "우리 아버지처럼 배가 살짝 나왔네요." 펙은 미소로 받았다. "그건 똥배가 아니라 훌륭한 연기예요, 하퍼."

물론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몬로빌에서의 시간을 통해 고인의 체형과 태도, 조용한 권위까지 몸에 스며들었다는 설명이다. 하퍼 리 역시 펙이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인물이 되어버린 결과로 닮음이 따라왔다고 훗날 회고했다.

'스카우트'와 '애티커스', 40년을 이어간 인연

애티커스의 딸인 스카우트 역에 캐스팅된 아홉 살 메리 배덤(Mary Badham)은 작품의 무게도, 미국 사회에서 막 시작되던 논의도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다. 다만 펙이 자신에게 말을 건넬 때,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가 말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은 느꼈다. 그녀는 그를 '애티커스'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는 그녀를 '스카우트'라 불렀다. 누구도 정한 적 없는 호칭이었다.

두 사람은 2003년 펙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40년간 인연을 이어갔다. 펙은 "뭐 하고 있니, 꼬마야"라며 수시로 전화를 걸었고, 만날 기회가 생기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배덤은 마지막까지 그를 애티커스라 불렀다.

아버지의 회중시계, 오스카 시상식의 턱시도 주머니 속으로

아마사 콜먼 리는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하퍼 리는 아버지가 쓰던 회중시계를 펙에게 선물했다. 펙은 몬로빌에서 함께 보낸 시간 동안 그가 시계를 만지작거리던 습관적인 손짓을 지켜봤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동작을 연기에 가져왔다. 영화 속 시계는 소품이었지만, 이 시계는 진짜였다. 펙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던 밤, 이 시계를 턱시도 주머니에 넣고 무대에 올랐다.

미국 영화사가 뽑은 가장 위대한 영웅

훗날 미국영화연구소(AFI)는 회원 투표로 미국 영화 속 최고의 영웅을 가렸다. 1위는 군인도, 전사도, 힘으로 세상을 구한 사내도 아니었다. 모두가 앉아 있을 때 홀로 일어서고, 침묵이 안전할 때 진실을 말하며,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임을 아이에게 보여준 앨라배마의 조용한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였다.

펙의 장례식에서는 영화 속에서 애티커스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톰 로빈슨 역의 브록 피터스(Brock Peters)가 조사를 낭독했다. 그는 하퍼 리의 문장을 인용한 뒤 "나의 친구 그레고리 펙, 나의 친구 애티커스 핀치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는 작별 인사를 더했다. 두 개의 이름, 한 사람이었다.

"그 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달리 없다"

하퍼 리는 생전 영화 리메이크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영화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그 역을 맡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록 허드슨에게는 멋진 외모가 있었다. 그러나 그레고리 펙에게는 저녁 식사 무렵 책을 펼쳐 이튿날 아침 전화기를 든 열정이 있었고, 죽음을 앞둔 한 남자와 마주 앉아 만들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돌아온 진심이 있었다. 하퍼 리가 그를 두고 남긴 말은 단 한 문장이다. 그에게는 영혼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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