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잊혀진 미국의 목소리를 깨운···에드워드 맥다웰의 피아노 협주곡 1 & 2번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5-24 14:51:59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세계 최대 음반사인 낙소스의 'American Classics' 시리즈는 유럽 중심의 클래식 음악 담론 속에서 오랫동안 주변부로 밀려났던 미국 작곡가들의 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복원하는 프로젝트다. 그 시리즈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 음반은 단순한 레퍼토리 소개를 넘어, 한 시대의 음악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 음반이 특별한 이유는 세계 초연 녹음을 두 곡이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헥센탄츠(Hexentanz, 마녀의 춤) Op.17 No.2'와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Op.35'는 이 음반이 출시되기 전까지 한 번도 정식으로 녹음된 적이 없었다. 즉, 이 CD를 구입하는 청중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초연의 순간에 동참하는 것이다.
1999년 9월 13일과 14일,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콘서트홀에서 이루어진 이 녹음은 그 자체로 에드워드 맥다웰 음악 복원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는다.
말러의 동시대인, 리스트의 피후견인
에드워드 맥다웰(Edward MacDowell, 1860–1908). 이 이름은 오늘날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조차 낯설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20세기 초, 그는 유럽과 미국 양쪽에서 가장 주목받던 미국 작곡가였다.
뉴욕 태생인 맥다웰은 10대 시절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음악적 기초를 닦은 후, 독일로 이동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칼 라이네케(Carl Reinecke)와 요아힘 라프(Joachim Raff) 아래서 수학했다. 라프는 맥다웰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에게 직접 소개했다. 리스트는 당시 20대 초반이던 맥다웰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악보를 검토한 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음반의 라이너 노트는 그를 "말러의 동시대인(a contemporary of Mahler), 라프의 제자, 리스트의 피후견인"으로 소개한다. 이 세 줄의 묘사만으로도 맥다웰이 유럽 음악계의 중심부에 얼마나 깊숙이 연결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1888년 미국으로 귀국한 그는 보스턴을 거쳐 1896년 컬럼비아대학교 음악학과 초대 학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작곡 커리큘럼을 구축하며 미국 음악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대학과의 갈등, 그리고 1905년 마차 사고로 인한 뇌 손상으로 인해 그의 삶은 급격히 내리막을 걸었고, 1908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절의 비극은 그의 음악이 더 넓은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가로막았다.
음악사적으로 그는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어법을 체득하면서도 미국적 서정성을 추구한 첫 번째 세대 미국 작곡가로 평가된다. 드보르자크, 엘가와 같은 국민악파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며, 19세기 말 서구 음악의 다양한 조류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토양에서 어떻게 발화(發花)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다.
수록곡의 탄생 배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a단조 Op.15
이 협주곡은 맥다웰이 독일 유학 시절이던 1882년, 22세의 나이에 완성한 작품이다. 리스트가 직접 검토하고 격려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탄생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가진 화려한 기교와 극적 구조의 영향이 작품 곳곳에서 느껴지며, 동시에 슈만적 서정성도 공존한다.
1악장 '마에스토소 – 알레그로 콘 푸오코(Maestoso – Allegro con fuoco)'는 웅장한 서주 이후 불꽃처럼 타오르는 피아노가 등장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2악장 '안단테 트란퀼로(Andante tranquillo)'는 고요하고 내성적인 서정으로 1악장의 긴장을 풀어낸다. 3악장 '프레스토(Presto)'는 빠르고 경쾌한 추진력으로 협주곡 전체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d단조 Op.22
1884년에서 1885년 사이에 작곡된 이 협주곡은 제1번보다 훨씬 성숙하고 원숙한 음악 언어를 보여준다. 맥다웰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작품으로, 초연 후 유럽과 미국 양쪽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1악장 '라르게토 칼마토(Larghetto calmato)'는 13분 35초에 달하는 긴 호흡으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풍부한 대화를 나누며 후기 낭만주의 협주곡의 정수를 보여준다. 2악장 '프레스토 지오코소(Presto giocoso)'는 장난기 넘치는 스케르초로 숨 고르기를 제공하며, 3악장 '라르고 – 몰토 알레그로(Largo – Molto allegro)'는 장엄한 도입부 이후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이 협주곡은 브람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완성도를 지녔음에도, 작곡가의 이른 죽음과 미국 음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오랫동안 레퍼토리에서 사라졌다. 이 음반은 그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다.
헥센탄츠 (마녀의 춤) Op.17 No.2 — 세계 초연 녹음
독일어로 '마녀의 춤'을 뜻하는 이 소품은 맥다웰이 독일 유학 시절에 작곡한 피아노 소품을 오케스트라 편곡한 것이다. 북유럽 민담과 낭만주의 시대의 환상적 세계관이 맞닿은 이 작품은 생동감 넘치는 리듬과 강렬한 색채로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요괴적 분위기를 압축해 담아낸다.
이 음반에 사용된 오케스트라 연주 악보는 'Safe Music'에 의해 준비·편집되었으며, 이 녹음이 세계 최초 오케스트라 버전 레코딩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외젠 그라세(Eugène Grasset)의 '세 여인과 세 마리 늑대(Three Women and Three Wolves)'는 이 곡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대변한다.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Op.35 — 세계 초연 녹음
이 로망스 역시 이 음반이 세계 최초로 녹음한 작품이다. 첼로의 따뜻하고 깊은 음색을 최대한 살린 이 소품은 맥다웰의 서정적 면모를 가장 순수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기교보다 노래하는 선율에 집중한 이 작품은 4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두드린다.
현란한 피아니즘과 서정적 멜로디의 교차
맥다웰의 음악에는 두 가지 세계가 항상 공존한다. 하나는 독일 낭만주의에서 흡수한 웅장함과 극적 긴장감이고, 다른 하나는 그 틀 안에서 끊임없이 분출하는 개인적 서정성이다. 그의 두 피아노 협주곡은 "현란한 피아니즘과 서정적 멜로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교차(alternate dazzling pianism with lyrical melody from beginning to end)"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맥다웰의 음악은 유럽의 언어로 미국의 감성을 말하려는 최초의 진지한 시도 중 하나다. 그는 드보르자크처럼 명시적으로 민요 선율을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이 가진 솔직한 낭만성, 자연에 대한 시적 경외, 그리고 판타지적 상상력은 유럽의 어느 작곡가와도 구별되는 뚜렷한 미국적 기질을 품고 있다.
'마녀의 춤'이 유럽 민담의 환상적 세계를 탐구한다면, '첼로 로망스'는 그 모든 외향적 드라마를 걷어내고 오롯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두 협주곡이 청년의 야망과 성숙한 성찰을 담은 것이라면, 소품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맥다웰이 가장 맥다웰다웠던 순간을 포착한다.
지휘자·오케스트라·솔로이스트
지휘자 아서 페이건(Arthur Fagen)은 미국 출신으로 유럽 오페라 및 심포니 무대에서 경력을 쌓은 지휘자다. 이 음반에서 그는 맥다웰의 음악이 가진 후기 낭만주의의 밀도와 미국적 서정성 사이의 균형을 능숙하게 잡아낸다. 낭만의 과잉화 없이 악보에 충실하면서도 음악적 생동감을 유지하는 그의 해석은, 이 낯선 레퍼토리를 처음 접하는 청중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입문로를 제공한다.
아일랜드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Ireland)는 더블린을 근거지로 한 아일랜드의 대표 오케스트라로, 이 녹음에서 탄탄하고 균형 잡힌 앙상블을 선보인다. 특히 두 협주곡에서 피아노와의 대화 및 반주에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피아니스트 스티븐 프루츠만(Stephen Prutsman)은 맥다웰의 두 협주곡을 맡아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기교적 화려함이 요구되는 대목에서도 결코 독주자적 과시에 빠지지 않고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를 유지하며, 서정적인 악절에서는 진정성 있는 노래하는 터치로 맥다웰 음악의 핵심에 닿는다.
첼리스트 에슬링 드루리 번(Aisling Drury Byrne)은 '첼로 로망스'에서 악기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음색을 십분 살려, 세계 초연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잊혀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맥다웰은 47년의 짧은 삶을 살았다. 그의 음악은 20세기를 지나며 점차 잊혔고, 오늘날 그의 이름은 뉴욕의 한 예술가 레지던시 — 그의 아내가 남편을 기려 세운 맥다웰 콜로니(MacDowell Colony) — 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 음반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잊혀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리스트가 감탄했던 그 음악, 말러와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그 선율이 더블린의 무대에서 다시 살아났고, 지금 이 CD 안에 담겨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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