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빌라-로보스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 전집 — 낙소스·내슈빌 심포니의 역작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4-16 14:17:42

케네스 셔머혼이 이끄는 내슈빌 심포니, 브라질 음악의 정수를 담아
브라질 음악을 세계 지도에 올린 거인, 에이토르 빌라-로보스
에이토르 빌라-로보스의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Bachianas Brasileiras, 브라질 풍의 바하)’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에이토르 빌라-로보스(Heitor Villa-Lobos, 1887~1959)는 20세기 남미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약 1,500편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 목록을 남긴 인물이다. 그 가운데서도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Bachianas Brasileiras, 브라질 풍의 바하)’ 전 9곡은 그의 예술적 사유가 가장 농밀하게 응축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브라질의 토속 선율과 리듬을 바흐로 대표되는 바로크 대위법 양식에 접목시킨 이 연작은, 서양 고전 전통과 라틴 아메리카 민속 음악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음악 언어의 산물이다. 2005년 낙소스(Naxos) 레이블이 내슈빌 심포니 오케스트라, 소프라노 로사나 라모사, 피아니스트 호세 페갈리와 함께 발표한 3CD 전집 음반은 바로 이 걸작 연작의 완전한 초상을 담아낸 기록으로, 레퍼토리의 충실성과 연주 수준 양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낙소스가 제시한 전집의 기준

낙소스 레이블은 20세기 후반부터 저렴한 가격에 높은 품질의 음반을 공급함으로써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선도해 온 레이블이다. 이 전집 음반 역시 그 철학의 충실한 구현체다.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 전 9곡을 3장의 CD에 빠짐없이 수록하면서도 총 연주 시간이 178분 12초에 이른다는 점은, 단순한 선집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전집 기록임을 증명한다. 

특히 이 작품군은 편성이 제각각이어서 단일 앙상블로 녹음하기 까다롭다. 첼로 앙상블(1번), 실내 오케스트라(2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3번), 성악과 첼로 8중주(5번), 플루트와 바순의 이중주(6번) 등 각기 다른 편성에 대응하는 다양한 솔로이스트와 앙상블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슈빌 심포니가 이 모든 구성을 일관된 음악적 언어로 통합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음반의 큰 성취이며, 전집 녹음으로서 레퍼런스 반열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케네스 셔머혼과 내슈빌 심포니의 역량

지휘자 켄네스 셔머혼(Kenneth Schermerhorn, 1929~2005)은 미국 지휘계의 중견으로, 1983년부터 내슈빌 심포니를 이끌며 오케스트라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이 음반은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인 2005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유작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셔머혼의 해석은 빌라-로보스 특유의 야성적이고 열대적인 에너지를 절제된 미국식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번안하는 방식을 취한다. 

과장 없이 구조를 명확히 드러내는 그의 지휘 스타일은 바흐와의 대위법적 연관성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며, 내슈빌 심포니는 앤서니 라 마르키나(수석 첼로), 에릭 그래튼(수석 플루트), 신시아 에스틸(수석 바순) 등 뛰어난 수석 주자들의 활약 속에 각 곡의 편성적 요구를 충실히 소화했다.

소프라노 로사나 라모사는 5번의 목소리와 첼로 8중주를 위한 악장들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특히 5번 1악장 '아리아'에서 허밍과 모음창으로 이어지는 독창 선율은 그녀의 풍부한 음색과 브라질 음악에 대한 자연스러운 친화력이 결합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피아니스트 호세 페갈리는 3번 피아노 협주곡풍 악장에서 기술적 완성도와 서정적 감수성을 고르게 보여주었으며, 음반의 편집과 엔지니어링에도 직접 참여해 예술적 완성에 기여했다. 녹음은 내슈빌 밴더빌트 대학교 블레어 음악대학 인그램 홀에서 2004~2005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프로듀서 리치 메이스의 세심한 작업이 DDD 규격의 선명한 음질을 완성시켰다.

바흐와 브라질 정글이 만나다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는 빌라-로보스가 1930년부터 194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완성한 연작이다. 작곡가는 이 작품들을 통해 "바흐의 음악과 브라질 민속 음악 사이에는 보편적 친족 관계가 있다"는 신념을 음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각 곡의 악장들은 바로크 양식을 지칭하는 이름(프렐류드, 푸가, 아리아, 토카타 등)과 브라질적 색채를 담은 별칭(예: 2번 4악장 '카이피라의 꼬마 기차')을 병기하는 독특한 이중 명명법을 채택하고 있다. 

1번이 첼로 앙상블을 위한 곡으로 출발한 것은 빌라-로보스가 첼로 소리에서 바흐의 영혼과 브라질 토착 현악기의 공명을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며, 이는 그의 음악적 상상력이 얼마나 고유하고 통합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번 4악장 '카이피라의 꼬마 기차(O Trenzinho do Caipira)'는 브라질 내륙을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움직임을 음악으로 묘사한 토카타로, 점증하는 리듬 패턴과 관악기의 기적 소리 모방이 생생한 기차 여행의 감각을 전달한다. 

한편 5번 '아리아'는 빌라-로보스가 가장 사랑했던 악장으로, 처음에는 기악 버전으로 작곡했다가 이후 시인 루트 코레아 지 아제베두의 시를 붙여 성악 버전을 추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곡은 현재 소프라노와 첼로를 위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퍼토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열대 자연과 바로크 영혼의 공명

전 9곡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브라질 열대 자연의 생명력과 바흐 음악의 정신적 깊이 사이의 대화다. 빌라-로보스는 정글의 밀림, 강의 흐름, 원주민의 노래, 이민자들의 애환, 도시 소음까지 브라질의 모든 소리 풍경을 바로크 대위법이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1번의 첼로 앙상블이 빚어내는 묵직한 비통함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오마주이며, 6번 플루트와 바순을 위한 이중주는 새소리와 곤충 소리를 연상시키는 원시적 생명감을 실내악적 친밀함으로 구현한다. 7번과 8번의 대편성 관현악 버전에서는 브라질 리듬의 폭발적 에너지가 전면에 등장하며, 9번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마지막 곡은 전집 전체를 관조적 침묵으로 마무리한다.

낙소스 전집의 좌표

‘바키아나스 브라질레이라스’의 음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준반은 빌라-로보스 본인이 지휘하고 소프라노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가 참여한 EMI 녹음(1950년대)이다. 작곡가 자신의 해석은 리듬과 표정에 거칠고 즉흥적인 생동감이 넘치며, 오늘날까지 원전 해석의 참조점으로 남아 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한 구 녹음들은 미국 오케스트라의 색채감을 통해 빌라-로보스를 국제 무대에 처음 소개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에 비해 셔머혼·내슈빌 반은 현대 녹음 기술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투명한 음질과 전집의 완전성에서 두드러진 강점을 보인다. 마르코폴로 레이블의 분산된 부분 녹음들이나 BIS의 선집 음반들이 갖지 못한 통일된 해석적 관점을 제공하며, 가격 대비 완성도 면에서 입문자와 전문 청취자 모두에게 권할 수 있는 전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빌라-로보스 음악 특유의 불규칙한 야생성과 리듬의 즉흥적 숨결을 보다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청취자에게는 작곡가 자신의 지휘 녹음이나 브라질 현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병행해 감상할 것을 권한다. 낙소스 전집은 이 연작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첫 번째 가이드이자, 빌라-로보스 음악의 전체 지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레퍼런스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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