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에퀴녹스, 일곱 개의 붓끝이 말하는 '전환점'의 풍경은?

이주상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10-12 12:24:26

베스티브루 피카디리 갤러리 카페서 '어느 날, 메시지Ⅵ'展… 10월 12일~30일 '어느 날, 메시지Ⅵ' 포스터

[K라이프저니|이주상 기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계절의 문턱에서, 일곱 작가가 저마다의 '메시지'를 들고 관객을 찾는다.

'어느 날, 메시지Ⅵ'展이 10월 1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돈의동 피카디리 빌딩 3층 베스티브루 피카디리 갤러리 카페에서 열린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이번 전시에는 김미혜, 노재영, 송정임, 이정선, 이주희, 채선미, 하소영 등 7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오프닝 행사는 14일 수요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상반된 힘을 끌어안다, '가을 에퀴녹스의 열망'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을의 '에퀴녹스(추분)'다. 낮과 밤이 같은 크기로 맞서는 이 지점은 계절과 우주의 전환점이다. 참여 작가들 역시 상반된 힘을 끌어안은 채 저마다의 전환점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 이미 그 극적인 절정을 넘어선 듯한 작가도 있다.

스타일은 모두 다르다. 언뜻 보면 별다른 내용이 없어 보이는 화면도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 이번 전시를 읽는 방법이다.

이정선의 도시의 기록

다시 붓을 잡은 이들, 노재영·이정선

이번 전시에 처음 합류한 노재영과 이정선은 붓을 다시 잡기까지의 오랜 기다림과 열망을 화면에 담았다.

노재영은 재료의 물성 자체에 집중한다. 붓과 색채, 캔버스 천의 질감에 매혹된 작가의 시선은 '고전적 회화재료의 재구성' 등 혼합재료 작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면에는 높고 낮은 층위가 쌓여 있다. 물감덩어리를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는 중력에 저항하며 단숨에 상승하려는 붓질이 인상적이다.

이정선은 '도시의 기록-서울' 연작을 통해 도시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십수 년간 화실에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작업 속에 배어 있다. 작가는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의 집단적 힘, 그 진정성과 올바름을 믿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만든 물결과 거대한 건물 사이로 범람하는 빛의 조각들이 화면을 채운다.

자연이 빚은 영원한 소녀들, 이주희·송정임

이주희는 '바람의 언덕', '선자령' 등에서 거침없는 붓질과 녹색 그라데이션으로 바람의 속삭임과 마음의 결을 그려낸다. 파도처럼 헝클어져 눕는 언덕의 풀을 바라보고 있으면, 관객의 영혼도 바람 소리에 씻겨 나가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송정임의 '털복숭이잎', '황금깃털' 속 나뭇잎들은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선으로 채색돼 있지만, 실은 바싹 말라 오그라든 죽은 잎이다. 작가는 그 상태에서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특유의 유머를 더한다. 나뭇잎으로 이뤄진 분홍 강아지가 온순한 눈으로 딴청을 부리면서도, 바스라질 듯 조각난 꽁지 빠진 새를 받쳐 주는 장면은 해학을 넘어 한 편의 신화에 가깝다.

하소영의 본질(本質)

내면의 아이와 삶 속의 죽음, 채선미·하소영

채선미는 어린 소녀처럼 무지개 그리기에 몰두한다. 오로지 자기 내면에 집중하고 마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기로 한 듯하다. 'memory-variation' 연작에 담긴 무지개의 광휘는 어떤 상황에서도 물감의 색채와 재료의 마티에르에 황홀해하는 '내면의 아이'를 보여준다. 정갈하게 쌓인 무지개 앞에 서면 그 아이가 수호천사처럼 작가를 지켜왔다는 생각이 든다.

하소영의 붓질은 완숙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식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작가의 화면에는 깨진 화분, 부서져 내리는 흙, 뿌리를 드러낸 채 죽어가는 식물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한 줄기 초록빛 희망은 남아 있다.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송정임과 하소영은 삶 한가운데 자리한 죽음을 두려움 없이 직시하고, 깊은 절망을 회화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김미혜의 녹색광선

마지막 스펙트럼에 깃든 얼굴, 김미혜의 '녹색광선'

김미혜의 '녹색광선'은 제목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지난 개인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주제는 '얼굴'이다. 녹색과 적색, 상반된 힘이 동등하게 엉겨 붙은 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녹색 인간의 얼굴로도, 그 반대로도 읽힌다. 작가가 그리는 것은 사랑의 얼굴이자 예감의 얼굴이다.

해 질 녘 마지막 스펙트럼에서만 보인다는 녹색광선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처럼 반드시 마지막에 찾아오는 첫사랑의 얼굴과 닮았다. '과거로부터 온'과 함께 종이, 식물, 피부껍질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인 화면은 한 편의 '가을 이야기'를 완성한다.

klifejourney2025@gmail.com

[ⓒ K라이프저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