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상실을 노래하는 목소리, 죽은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가 부르는 말러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9-25 10:15:30

Baritone as Requiem: A Voice for Mahler's Songs of Grief 안드레아스 슈미트의  'Songs of a Wayfarer·Kindertotenlieder·Rückert-Lieder' 고요비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K라이프저니|글·사진 고요비 기자] 1991년 미국 신시내티 뮤직홀에서 녹음되어 텔락(Telarc)이 발매한 말러 가곡 음반 'Songs of a Wayfarer·Kindertotenlieder·Rückert-Lieder'는 1904년 완성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와 1901년의 뤼케르트 가곡(Rückert-Lieder), 그리고 1885년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를 한 장에 묶은 음반이다.

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Andreas Schmidt)와 헤수스 로페스코보스(Jesús López-Cobos)가 이끄는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Cincinnati Symphony Orchestra)가 함께했다.

세 개의 노래, 하나의 생애

이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은 곡의 배열 자체에 있다. 실연에 좌절한 청년의 방랑을 노래한 초기작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응시하는 중기 걸작, 그리고 세상과 조용히 작별하는 후기 가곡을 한 장에 나란히 담음으로써, 청자는 사랑의 상실에서 존재 자체의 상실로,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소음을 벗어난 고요에 이르는 하나의 정서적 여정을 통째로 경험하게 된다. 개별 명곡의 모음이 아니라 '상실과 초월의 3부작'으로 설계된 편집이라 할 만하다.

절제된 목소리가 빚어내는 비극

이 음반의 중심에는 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가 있다. 이 레퍼토리는 이미 지난 세기 최고의 성악가들이 정전(正典)으로 남겨놓은 곡들이어서, 새로운 목소리가 그 무게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럼에도 슈미트의 중음역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윤기 있는 음색으로 시작부터 청자를 사로잡으며, 곡이 전개될수록 자신만의 표현으로 개성을 확립해간다.

특히 빛을 발하는 대목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에서의 해석이다. 이 곡들이 품은 감정은 자칫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 만큼 압도적일 수 있는데, 슈미트는 감정을 절제하고 자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쌓아올린 긴장은 결정적 순간에 비극이 터져 나올 때 오히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등불이 꺼졌다는 첫 곡의 마지막 구절과 그 뒤에 이어지는 '기쁜 빛으로 오라'는 대목의 잔혹한 아이러니를 섬세하게 그려내는가 하면, 두 번째 곡의 결말부 높은 음역에서는 도약하는 성량과 함께 별을 노래하는 순간을 아름답게 완성한다.

뤼케르트 가곡 중 가장 유명한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에서는 슈미트의 저음역이 첼로를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음색으로 이 곡 특유의 몰입감 있는 친밀함에 이상적으로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마지막 곡 '한밤중에(Um Mitternacht)'에서 금관 합주와 맞서 최대 성량을 요구하는 마지막 곡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음색이 다소 날카로워지는 순간도 있어, 모든 청자의 취향을 만족시키지는 못할 수 있다.

섬세하게 물러서는 동반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로페스코보스와 신시내티 심포니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성악가를 세심하게 감싸는 반주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목관 파트의 섬세한 울림이 특히 인상적이며, 타악기의 미묘한 질감과 첼로 피치카토가 여는 서정적 순간들을 정교하게 포착해낸 녹음 자체의 완성도도 돋보인다. 이 조합은 이후에도 말러의 교향곡들을 잇달아 녹음하며 미국 중서부에서 이른바 '말러 르네상스'를 이끈 팀으로 기억된다.

교향곡의 씨앗이 된 가곡들

구스타프 말러는 후기 낭만주의와 20세기 모더니즘을 잇는 교량으로 평가받는 작곡가다. 그의 가곡은 단순한 부수적 작업이 아니라 교향곡 세계 전체의 씨앗이었다.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첫 교향곡과 실제 주제 선율을 공유하며, 세상에서 잊혀졌다는 고백의 노래는 다섯 번째 교향곡의 유명한 아다지에토와 정서적 짝을 이룬다. 반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이런 방식으로는 쉽게 자리매김하기 힘든 독보적인 작품이다. 상실에 대한 극도로 고통스럽고 내밀한 탐구를 표현하기 위해 작곡가는 사실상 새로운 음악 언어와, 실내악처럼 섬세하고 투명한 관현악 기법을 스스로 창안해야 했다. 이는 그가 왜 20세기 음악어법의 선구자로 꼽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래가 태어난 자리: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예감된 비극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말러가 1884~85년 무렵 카셀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일하며 만난 소프라노 요한나 리히터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 속에서 쓴 곡이다. 반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가 자신의 두 자녀를 성홍열로 잃은 뒤 쓴 400여 편의 애도시 가운데 5편을 골라 작곡한 것으로, 말러 자신도 이 곡을 완성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1907년 장녀 마리아 안나를 성홍열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예술이 삶을 예감한 듯한 이 일치는 이후 말러 연구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대목이다.

노래가 붙잡으려 한 것: 사랑, 상실, 그리고 초연함

세 가곡집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결국 인간이 상실 앞에서 취하는 세 가지 태도라 할 수 있다.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실연이라는 개인적 고통과 방랑을 통한 도피를 그린다면,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픔과 체념, 그리고 아이가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환상 사이를 오가는 심리를 섬세하게 좇는다. 마지막 '뤼케르트 가곡'은 그 슬픔을 넘어선 자리,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물러나 고요와 초월에 이른 정신 상태를 노래한다. 세 곡을 이어 들을 때, 이 음반은 단순한 가곡 모음집을 넘어 상실을 통과하는 인간 정신의 한 지도가 된다.

정전(正典)에 도전하는 담대한 목소리

이 음반은 이미 거장들이 남긴 명연들과 끊임없이 비교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다. 그러나 절제와 섬세함으로 쌓아올린 슈미트의 해석과, 성악가를 조용히 떠받치는 오케스트라의 균형 잡힌 반주, 그리고 미세한 질감까지 살려낸 녹음의 완성도가 어우러지며 이 레퍼토리를 한 장으로 소장하고자 하는 청자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선택지로 남았다. 이후 같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레이블의 조합이 말러의 여러 교향곡으로 이어지는 녹음 시리즈를 완성해갔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하나의 여정이 시작된 지점으로도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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