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비발디 '티토 만리오' 세계 초연 음반, 잠들었던 바로크 오페라의 부활!

고요비 기자

klifejourney2025@gmail.com | 2026-04-21 03:06:14

모도 안티쿠오와 페데리코 마리아 사르델리가 283년 만에 깨운 비발디의 잊힌 걸작 안토니오 비발디의 '티토 만리오' 사진 | CPO

[K라이프저니|고요비 기자] CPO 레이블이 2005년 발매한 이 3CD 박스 세트는 음반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원전 악기에 의한 세계 초연 녹음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가 1719년에 완성한 오페라 '티토 만리오'가 초연된 지 284년 만에,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음반에 담았다. 이 녹음은 2003년 7월 이탈리아 바르가(Barga)의 키에사 델 산티시모 크로치피소(Chiesa del Santissimo Crocifisso)에서 진행되었으며, WDR 3, CPO, 오페라 바르가 페스티벌의 공동 제작으로 이루어졌다.

비발디 오페라 전체를 통틀어도 완전한 형태로 녹음된 작품의 수가 손에 꼽힌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단순한 상업 음반이 아닌 음악학적 복원의 결실이자 역사적 문헌이다. 총 연주 시간 194분 54초, 완주하는 데만 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 대작을 원전 악기로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사실은, 바로크 음악 부흥의 긴 여정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역사적 복원과 성악적 다채로움 

지휘를 맡은 페데리코 마리아 사르델리(Federico Maria Sardelli)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지휘자이자 바로크 플루트 연주자, 그리고 비발디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이스티투토 이탈리아노 안토니오 비발디(Istituto Italiano Antonio Vivaldi)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비발디 작품 목록의 정비와 복원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로, '티토 만리오'의 세계 초연 지휘를 맡기에 이보다 적합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사르델리는 이 오페라의 방대한 악보를 현대적으로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가 이끄는 모도 안티쿠오(Modo Antiquo)는 1984년 창단된 이탈리아의 정상급 원전 연주 앙상블이다. 파비오 비온디의 연주단과 함께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복원과 연주를 이끌어온 이 단체는, 비발디 오페라의 숨결을 18세기 베네치아 극장의 공기와 함께 불러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솔로이스트 진용도 눈부시다. 티토 만리오 역의 세르지오 포레스티(Sergio Foresti)는 묵직하고 권위 있는 저음로 극의 중심을 잡고,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숄(Elisabeth Scholl)은 만리오 역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소화한다. 메조소프라노 로사 도밍게스, 콘트랄토 티에리 그레구아르, 테너 다비데 리베르모레 등 다양한 음역의 가수들이 뒤얽히는 앙상블은 비발디 오페라 특유의 성악적 다채로움을 한껏 살려낸다.

비발디 르네상스

안토니오 비발디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작곡가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빨간 머리로 인해 '붉은 신부(Il Prete Rosso)'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기악 협주곡 형식의 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사계'로 대표되는 500여 곡의 협주곡은 리토르넬로 형식을 완성시키며 바흐를 비롯한 후대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비발디는 협주곡 작곡가로만 평가받는 것을 넘어 오페라 작곡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생전에 40편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베네치아의 산 안젤로 극장을 근거지로 이탈리아 전역의 오페라 무대를 누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페라들은 18세기 말부터 급속히 잊혔다.

20세기 들어 비발디 르네상스가 일어나면서 협주곡들은 화려하게 복권되었지만, 오페라 작품들은 여전히 상당수가 미발굴 혹은 미연주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음반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그 맥락 속에서다.

5일 만에 완성한 오페라

'티토 만리오'는 1719년 비발디가 만토바(Mantova)에서 작곡한 오페라다. 당시 비발디는 만토바 궁정의 음악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 아래 있던 이 도시에서 궁정 오페라 시즌을 이끌고 있었다.

'티토 만리오'는 마테오 노리스의 리브레토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고대 로마의 집정관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발디가 이 오페라를 단 5일 만에 완성했다고 직접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는 편지에서 '5일 안에 완성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는데, 이는 바로크 오페라의 작곡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속도다.

이 같은 창작의 속도와 다산성은 비발디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했다. 초연 이후 이 작품은 역사의 먼지 속에 묻혔고, 약 300년 가까이 어떤 무대에서도, 어떤 음반에서도 완전한 형태로 살아남지 못했다.

비극적 서사의 이중주

'티토 만리오'는 법과 부성애, 국가와 개인 사이의 비극적 갈등을 중심 서사로 삼는다. 로마의 집정관 티토 만리오는 전장에서 적과 단독으로 싸운 자신의 아들 만리오를 군율 위반으로 처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아버지의 사랑과 법 앞의 평등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이 극적 구조는 이탈리아 세리아 오페라(opera seria)의 전형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구현한다.

비발디는 이 극적 긴장을 다채로운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연속으로 풀어냈다. 애끓는 사랑의 아리아, 분노와 결의의 격정적 아리아, 체념과 슬픔의 서정적 아리아가 번갈아 등장하며 청중의 감정을 쉼 없이 끌어당긴다. 특히 비발디 특유의 현악 반주는 성악 선율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협주곡 작곡가로서 연마한 리듬감과 음색의 감각이 오페라 어법과 절묘하게 융합된 지점을 보여준다.

'티토 만리오'의 완전 녹음은 이 음반이 사실상 유일하다. 세계 초연 음반이라는 성격상 직접 비교 대상이 거의 없다는 점 자체가 이 음반의 희소성을 반증한다. 황금 베네치아 가면이 장식한 표지처럼, 이 음반은 오랜 세월 가려져 있던 비발디의 또 다른 얼굴을 비로소 세상 앞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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